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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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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온유 작가가 쓰는 소설의 서사, 가까웠던 친구와 서먹해지고 그런 사건의 발단은 부모의 욕심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신뢰했던 가까운 어른(부모)에게서 '당신만큼은 그러지 않았어야지' 그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 뻔하면서도 극적인 전개가 좋다.

 

  『페퍼민트는 코로나19 시대의 초기와 어쩌면 미래의 모습까지도 보여줬다. 해원의 엄마는 프록시모 바이러스 슈퍼 전파자였고 시안의 엄마는 이에 감염되어 몇 년째 식물인간이다.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해원의 가족은 재난의 시작점 취급을 받았고 그들이 다닌 경로 등으로 신상이 탈탈 털렸다. 결국 원래 살던 데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이사해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죄책감 때문인지 그 사건은 해원의 가족에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해원 앞에 시안이 나타났을 때 해원은 달갑지 않았으니까. 시안은 엄마를 간호하느라 보통 열아홉 살이 겪는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 학급에서는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가고 싶은 학과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고. 언제부턴가 엄마의 사소한 움직임을 보고도 식물인간에서 벗어날 거란 희망도 버렸다. 각자의 아픔이 있는 시안과 해원이 다시 만났을 때 둘은 전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다가도 가슴 한편에는 아픔이 남아있었다.

  시안의 엄마가 식물인간에 걸렸다는 걸 모르고 살아온 해원이 해원의 엄마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해원의 엄마는 감염되어 증상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긴 이유가 딸과 아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고, 해원은 엄마의 변명에 질려 했다. 어쩌면 야만적이라고 느꼈으리라. 어른의 잘못된 판단에 간언할 줄 아는 해원. 사리 분별할 줄 알아서 다행이다.

  시안은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살피지만 이러한 삶이 평생이 될까 봐 부담스러웠나 보다. 해원에게 산소통 밸브를 잠가 달라고 요청한다. 무거운 부탁이었다. 해원은 시안의 부탁을 들어주면 죄책감이 사라질 줄 알았다. 산소통 밸브를 잠근건 시안의 아빠. 시안의 아빠를 문 뒤에서 지켜본 해원이 그의 행동을 막아낸다. "20대 때는 네가 우리 옆에 묶여 있지 않았으면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시안의 아빠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시안이 해원에게 그만 만나자고 한다. 괜찮아진 것 같으면서도 서로 마주할 때마다 지난날이 생각나고 복수심이 살살 들끓는다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거다. 해원은 과거를 잊기는 어렵지만 아픔을 견디고 개명하면서까지도 잘살아 보려고 하고, 시안은 엄마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아직 꿈꾸지 못한 장래를 그릴 수도 있고 말이다. 둘이 헤어지게 된 건 아쉽지만, 서로를 위한 선택이었다 싶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게 나았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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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ㅅㅎ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조금 사소하고 쓸 데 많은 제주 산호에 관한 거의 모든 것
녹색연합 외 지음, 박승환 사진, 조인영 감수 / 텍스트CUBE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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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다이빙을 취미로 하는 직장동료가 있다. 그가 경험한 바다를 이야기하면 '산호'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제주 우도 바닷속이 정말 깨끗해요. 산호도 정말 많아요."


  그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대꾸해 주지 못한 거다. 산호가 어떤 바다에 서식하는지 관심이 없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산호는 깨끗한 물에 산다는 정보를 기억저장소에 투입했다. 내 입에서 우와 와 같은 감탄사가 나오기를 바란 것만 같은 그는 눈을 끔뻑끔뻑하며 나를 살폈다. 그제야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아……." 뱉었다.


  동료가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만난 해양생물을 경이로워할 때면 그가 말하는 바닷속이 궁금했다. 산호는 같은 바다를 다음에 또 찾게 했다. 깨끗한 물에 사는 그 생명체가 고귀해 보였다. 마침 창작과비평에서 산호와 관련된 책 <ㅈㅈㅅㅎ>를 제공 받았다. 산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였다. 이 책을 읽은 후 동료가 산호를 이야기했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가 만족할 반응을 해줬을 텐데.


  프롤로그부터 찬찬히 읽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전 준비단계에서 초조한 설렘을 느꼈고, 사진 자료를 보면서 나도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쳤다. 넓게 펼쳐진 산호군락이 환상적이다. 합천 황매산에서 철쭉군락을 보는 것과 같을까. 진주 남강유등축제처럼 형형색색일까.

<백화 현상>을 읽고 산호의 생존력에 감탄했다. 수온이 높아지면 산호에게 대규모 백화 현상이 일어나는데 다행히 일시적이다. 환경이 좋아지면 공생 조류가 다시 산호 안으로 들어가서 산호가 회복되기도 한다. 산호는 단번에 죽지 않는다. 산호의 변화는 바닷물의 건강을 보여주는 신호다. 회복력이 있다고 오늘은 지구를 막 쓰고 내일은 아끼면 산호의 자연치유능력마저 줄어들 테다. 산호군락 전체가 하얗게 변해버리는 날에는 유골을 보는 기분이 들 거다. 참혹할 거다.


  둔한진총산호가 인상적이었다. 이 산호는 촉수를 감춰 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먹이를 사냥할 때는 촉수를 펼쳐 화려한 색을 보여준다. 이름과는 달라서 더 호기심을 자아냈다. 책에 있는 제주바다 산호지도에서 둔한진총산호가 살고 있을 섬을 체크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Ⅱ급이라고 한다. 인간이 해양생물 보호를 위해 힘쓰겠지만 산호도 너만의 생존력으로 오래오래 버텨주기를 바란다.



★창비와 텍스트큐브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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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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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스릴 있는, 그리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었다.

영어덜트 장르는 대부분 최신 경향을 반영하여 흥미롭고 작품 선택에 실패가 없는 것 같다. 교육적인 면에서도 깨닫게 하는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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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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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의 책소개를 먼저 접했다.

'서점의 서가를 거닐다 보면 지혜를 선사한다는 책들은 대개 죽은 남성 철학자의 의견으로 채워져 있다'로 시작했고 읽으면서 나는 크게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철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뼈대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 과목을 배울 때도 여성 철학자는 배워보지 못했다. 아마 아주 먼 옛날에는 여자 철학을 하는 게 금기시됐기 때문에 교과서에 남은 여성 철학자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책소개를 주욱 읽어나가니 '만약 살아 있는 여성들이 일상의 문제에 도전한다면 그 책은 무엇을 말하게 될까?'가 눈에 띄었다. '맞아. 여성도 철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던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왠지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펼칠 것 같은 책의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당장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 <놀이> 파트가 흥미로웠다. 작가는 '우리에게 놀이를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라고 화두를 던진다.

우리에게 놀이를 허락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책에서 소개한 '놀이'가 필요한 이유를 공감한 것들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놀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활동으로, 이를 통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둘째, 놀이는 건강한 자아 감각 형성에 도움을 준다. 능동적인 행위자가 될 필요가 있다.

셋째, 놀이를 경험하는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생겨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여기서 놀이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는 스튜어트 브라운에 따르면 '우울'이라고 한다. 놀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데, 만약 이런 기술이 결핍되어 있다면 개인의 건강과 생존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95면).

넷째, 놀이는 비판적 성찰과 의미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놀이는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세계관을 형성하여 자신의 능력치를 측정해서 필요시 개선할 수 있고, 이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행위의 주체자가 되게 된다. 자기 판단하에 자기 역량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도 생기고, 혹시라도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를 잘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놀이를 할 줄 모르는 성인은, 위니콧에 의하면, 상상으로, 창의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억압되거나 제거된 사람들을 말한다고 한다(82면). 다행이다. 나는 가능성이 낮은 확률의 것들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상상할 줄 안다는 것은 꽤 창의적인 것 같기도 하며, 혹시 창의적이지 않더라도 창작 활동을 좋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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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그날 - 6.10민주항쟁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유승하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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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현대사 비극이자 민주화운동 네 장면을 창비에서 만화로 기획했다. 김홍모 『빗창』은 제주 4·3을, 윤태호 『사일구』는 4·19혁명을, 마영신 『아무리 얘기해도』는 5·18민주화운동을, 그리고 유승하 『1987 그날』은 6·10민주항쟁을 다룬다.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의 용기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했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변모를 이끌었다.

민주화운동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민들이 부당함을 표현하고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달라고 외치는 것과 세력 유지를 위해서 무력으로 국민에게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몇몇이 희생된 것도 알고 있다.

현대사 비극을 접할 때마다 내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어. 이게 내가 태어나기도 고작 몇 년 전에 일어났다고?'다. 현대에 발생한 유혈 사태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

 

 

『1987 그날』의 배경은 6·10민주항쟁이다.

이 만화를 통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만큼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간절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모습은 이랬다. 1987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 제7주기 미사에서 故 김수환 추기경의 추도미사뿐만 아니라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은 조작되었다고 언급하면서 정부의 잘못을 꼬집은 것. 석박사 대학원생도 다 모여 시위를 하고, 택시운전사는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경적을 울렸으며 여성 단체는 스카프를 흔드는 등 자기가 맡은 지역에서 잘 버텨 경찰력을 분산시켜 민주화를 외쳤다.

6·10국민대회 행동요강을 보니 전 국민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전국적으로 동시간대에 민주화에 대한 외침이 일어났을 것을 생각하니 그들의 열망이 느껴지면서 내 몸에 전율이 일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붉은 악마 응원가를 외치는 영상을 볼 때마다 닭살이 돋는 것처럼.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도 역대 대통령의 업적 평가만큼이나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 살고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그 당시 사람들이 부당함을 외치고 희생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역사로 우리가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우리 세대와 미래세대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량을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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