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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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20일~31일
/주제 분류/ 국내 에세이
/읽은 동기/ 어딘가에서 읽은 이 책의 리뷰를 보고 마음이 동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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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책 한 번 오래 읽었다. 근 열흘간 읽었는데, 열흘 내내 이 책만 붙들고 있은 건 아니고 그간 좀 아프고 그간 좀 사람을 만나고 그간 설이 끼어 있었다. 그랬더니 열흘 동안 읽은 것이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이 책에 대한 리뷰. 

저자, 이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티비에서 언젠가 본 분 같은데 정확히 뭐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고,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단지 얼굴만 얼핏 기억나는 바로 그런 분이었다. (생각해보니 목소리도 떠오르는구나... 아니, 왜?! 내가 이 분 목소리를 기억하지?!) 이 책을 읽으니 대충 프로필이 나온다. 젊었을 땐 출판사에서 일했고, 시를 써서 시인으로 등단, 지금은 칼럼을 쓰고, 라디오를 진행, 그리고 강연을 해서 밥벌이를 하고(사실 밥벌이보단, 취미생활을 영유하고...), 나머지 시간엔 이 작업실을 꾸려가는 분이셨다. 

보통 작업실이라 하면, 뭔가를 만들고, 그 생산품을 내다 팔거나 자기만족으로 간직하거나 혹은 뭔가를 연습(노래든 그림이든) 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김갑수 씨의 작업실은 다른 작업실과 다르다. 이 작업실은 오로지 취미를 향유하는 곳이다. 온전히 음악만 듣고, 자주 커피를 내려 마시고, 종종 손님이 찾아오고, 뜨문뜨문 책을 읽는 그런 장소... 무언가를 '만든'는 보통의 작업실과는 다른 곳. 

김갑수 씨는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서 옛 선비가 떠올랐다. 입신양명엔 관심 없고 방에만 틀어박혀 글만 읽으며 세상을 여행하거나, 금강산 그림을 보고 금강산을 유람했다고 우기는 옛 선비처럼 김갑수 씨도 어두컴컴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음악을 들으며 유유자적하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온 세상을 여행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긴다. 

이 작업실을 꾸리게 된 첫 이유는 바로 음악. 취미라고 해야 하나, 기벽이라고 해야 하나. 좋아하는 음악, 아니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아서 후들거릴 만큼의 엄청난 돈을 쓰는 것도 모자라, 이런 작업실까지 마련하는 열과 성은, 혀를 내두른다. 

어쨌거나, 이 정도 경지까지 밀어붙여야 진정한 오덕일 것이다. 이름을 따서, 갑덕이라 부르고 싶다. 그래, 뭔가를 좋아하고 즐긴다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죽을 때 인생에 미련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련없이 돈도 팡팡 쓰면 되는 거다. 엉뚱한 데 말고,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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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퓨처 - 2030 LG경제연구원 미래 보고서
LG경제연구원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2017년 1월 12일~28일
/주제 분류/ 경제전망, 미래예측
/읽은 동기/ 국내든 국제든, 경제든 정치든, 사회이든 기술이든 이 모든 게 불확실한 이때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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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 상당히 좋다. 다른 사람들도 꼭 한 번 읽으면 좋겠다. 책이 두껍고, 우리 기억이 그리 믿을만한 건 아니니까 이 두꺼운 책을 집요하리만큼 꼼꼼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충이라도 한 번은 꼭! 기필코 꼭! 훑고, 읽어서(여러 번이라면 더 좋고) 앞으로의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다들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우리 사회가 내년 2018년을 기점으로 인구 절벽, 초초초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때 꼭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은 LG경제연구원에서 여러 연구진이 함께 쓴 책이다. 다루는 분야는 기술, 환경, 경제, 우리 사회를 다루고 있는데, 그중 기술 분야에 제일 많이 할애하고 있다. 아마도 3차 산업혁명(IT 혁명 -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누구나 '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으니까 제일 중요하게 다룬 것 같다. 어쨌거나, 스마트폰 시장도 예전처럼 매일 같이 놀라움을 선사하던 시기는 지났고, 성장이 주춤해졌을 뿐만 아니라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로 급격히 발달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전, 우리나라에서 크게 이슈가 되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졌고, 그 외 다른 것들도 SF 영화나 SF 소설로 많이 다뤄졌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이, 뭔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미래 이야기, 한낱 소설 같았던 이야기가 이제는 진짜 실현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아니지, 아니야. 이미 실현되었지만, 상용화, 범용화가 될 됐을 뿐 보통 사람들이 관심 없을 때 4차 산업혁명의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이제 곧 우리가 서 있는 역에 도착하려면 얼마 남지 않았다. 주저주저하고, 외면하다가는 그냥 이대로 기차를 놓치고 낙오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낙오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고 경제적,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전락한다는 의미다. 꼭 아등바등 살아야 하느냐, 이렇게 시대 흐름에 떠밀린 채로 허둥지둥 살아야 하냐는 반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20년 전, 50년 전의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고, 그때 그 사람들이 그 시절의 삶 방식만을 고수하며 지금까지 살았을 때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시대 추이 대로 살 것인지(먼저 발 빠르게 준비하여), 별생각 없이 하루하루 때우는 삶을 살 것인지. 어쨌거나 지금 시기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기이고, 나중이 되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더 좁아진다. 시대 추이를 읽되,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어쨌거나 시대 추이대로 살지,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두려워하며 불만을 품고 살지는, 제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항상 선택해야 했던 문제다. (2차, 3차, 4차 산업혁명으로 갈수록 이 선택의 시기가 자꾸 짧아지고 있는 것뿐) 


나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기술 파트'도 인상 깊었지만, 뒤로 갈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 기술 분야는 정말로 곧 도래할 사회이긴 한데, 내일이 아니라 그래도 조금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와 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다른 '경제'와 '사회'는 바로 내일의 문제처럼 피부에 직접 와 닿았다. 기술이라는 건, 여전히 '추측'의 여지가 크지만, 내가 10년 후에 10살을 더 먹고, 우리 부모님이 10살을 더 먹는다는 건 추측이 아니라 '완벽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바뀔 인구 구조, 경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거나 관심 가져야 할 분야 리스트도 생각해 두었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게 아니라면, 내가 살고 싶고,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살기를 선택했으니까, 그것도 '잘' 살기를 선택했으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이거다. 10년 뒤 바뀐 우리 일상생활. 눈 뜨자마자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사물인터넷이니 뭐니가 우리 몸 상태를 체크하고, 혈당이나 컨디션에 따라 레시피를 달리하여 음식이 제공되는 사회, 인간은 차 안에서 인터넷이나 업무 처리를 하고, 자동차는 자율 주행으로 차가 스스로 알아서 목적지까지 간다.... 나는 이런 사회가 전혀 반갑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꼭, 우리 인간이, 주인이 모든 걸 다 챙겨주는 반려견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인공지능이 조물주였던 인간에게 우쭈쭈 거리며~ 건강 상태 봐가며 밥 주고, 운동 시키고, 훈련 시키고, 배변 상태 체크해 주는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 같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인간이 염원하던 세상, 인간이 꿈꾸던 존재는 바로 개 같은 존재였나 싶다. 그냥 개는 아니고, 반려견, 반려묘. 

그러나,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이 인간에게 모든 걸 다 해주는 사회는 도래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할 것이긴 하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정말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는 문제.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살 수 있기 위해서는 계속 지금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시대에 떠밀리지 않고, 기술과 변화에 떠밀려 소외당하지 않고, 기만 당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지금과 미래를 똑똑히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한다. 

이래 살든, 저래 살든 살긴 사는 것인데, 결국 어떻게 살지, <주인과 노예>의 문제이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문제이다. 주인으로 살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2017년 새해, 미래를 생각하고 그 미래에 비추어 올해를 계획하시는 분들, 그리고 오래오래 아니 단 10년 후에도 이 세상을 살아갈 것 같은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여러 명의 연구원이 쓴 보고서 같은 글이라, 저자의 가치 판단이 많이 배제되어 있다. 단, 같은 내용, 비슷한 내용이 여러 군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게 단점. 하지만 이건 귀찮다 여기지 말고 이 책에 많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일 수록 중요한 문제이거나, 미래에 도래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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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그리다 - 올드독 작가 정우열과 반려견 소리 그리고 풋코의 동고동락 10년
정우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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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23일
/주제 분류/ 국내 에세이 (개 사진 듬뿍 사진집 + 카툰 덤!)
/읽은 동기/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누군가도 느끼고 그것을 어떤 창작물로 표현한 것을 보고 싶을 때가요. 굳이 꼭 글이 아니어도 됩니다. 사진도 되고, 그림도 되고, 카툰도 됩니다. 무엇이 됐든 그걸 보면 내 마음은 편해지고 혼자가 아닌 느낌을 받아요. 외로울 때, 누군가에게 감정이입하고 싶고, '내 마음이 딱 이래!'라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꺼내 들었어요.  이런 마음이 들 때, 정우열 씨나 홍인혜 씨의 책만한 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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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살짝 두툼합니다. 하지만, 책의 대부분이 개사진과 정우열 씨의 카툰들입니다. 그래서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빈약하냐, 그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개를 사랑하고 포괄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개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정말 어렸을 때부터 개를 좋아했습니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이 책이 어떻게 와 닿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보는 동안 정말 행복했고, 가슴이 따뜻해졌고, '그래, 그렇지'라고 하며 고개 끄덕끄덕, 엄마 미소를 지으며 이 책을 보았습니다.


소리와 풋코(정우열 씨의 반려견)의 사진을 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졌고, 간간이 삽입된 정우열 씨의 카툰은 짧지만 섬세하고, 개와 좋은 추억이 있는 분들은 누구나 공감할 내용들로 꽉 채워져 있거든요.


이 책은 여백이 많습니다. 정우열 씨의 카툰 스타일도 그렇지요. 손으로 직접 쓴 글과 그림들은 참 깔끔하고 심플합니다. 짧은 글에 담아 쓴 정우열 씨의 생각은 어딘가 여백으로 남아, 저에게 여운을 던져줍니다. 그래서 정우열 씨의 작품에서 여백을 보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은, 정우열 씨가 소리와 풋코와 인연을 맺게 된 그 시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끝은 담겨 있지 않아요.... (끝 이야기는.... 2014년에 예담 출판사에서 나온, 『올드독의 제주 일기』를 보시면 알아요.) 소리와 풋코의 성장 이야기, 함께 여행과 캠핑을 떠났던 이야기, 그리고 편안한 집에서 함께 한 두 반려견의 사진들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개와 함께 하고, 혹은 옛날 언젠가 개와 좋은 추억을 함께 한 분들이라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참으로 좋을 거예요. 전혀 작위적이지 않은, 편안한 행복감, 기쁨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개는 사랑입니다. 존재 자체로 나와 우리를 기쁘게 해주니까요. 이런 제 생각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동물 학대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인간들에게 '사랑'이  부족해서 겠죠. 과도한 사랑도 문제지만, 부족한 사랑도 큰 문제예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가까운 개와 고양이에게서도 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행복이 우리 인간에게 요원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 바로 손만 뻗으면 느낄 수 있는 쉬운 것임을 방증하는 건데 말이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인간, 반려견, 반려묘,  그리고 우리 인간과 가깝지는 않더라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공존공생하며 좀 더 사랑이 가득한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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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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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시간/ 2017년 1월 18일~19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일본)
/읽은 동기/ 사람들이 먹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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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미식 수업은 때때로 독자를 열받게 할 때가 있고, 글쓴이에 대한 반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 꺼려지시는 분들은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먼지잼 주 :-p]

187쪽 │ 어쩌면 저란 인간은 밉살스런 인간일지도 모르겠네요.

네, 그럴지도요, 후쿠다 가즈야 선생님.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자신이 밉살스런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물리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솔직하게 적어나가던 것이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역시, 직업을 평론가로 선택하신 것이 상당히 적절했다 봅니다. 다른 직업은 뭐가 어울릴까요... 딱히 떠오르는 직업이 없네요. 사람들의 감정에 상처라도 줄까 전전긍긍하며 둥글둥글 에둘러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평론가로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죠. 

제가 생각하기에, 어떤 분야든 평론가(비평가)라는 사람은 자기가 평론하는 분야의 지식이 상당하고, 그 지식 외에 다른 잡식에도 꽤나 소양이 깊은 것으로 압니다. 보통은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혹은 역사 등 요런 고매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더군요. 때때로 과학이나 기계(컴퓨터나 음향기기)에 대한 지식을 뽐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여러 연유가 있겠지만, 지식을 쌓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이를 말로, 글로 설명하는 데 취미가 있어서 택했을 것이겠죠. 이런 분들에겐 날카로움은 기본, 통찰력은 덤, 그리고 까탈스러운 취향이 따라옵니다. 특히 이 까탈스러운 취향이, 평론가라는 직업인을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까탈스럽고, 집요하고, 모든 걸 비교/연구하겠다는 포부!! 보통 사람은 '비교할 걸 비교해라'며 그냥 넘어가는 것들도 평론가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죠. 좀 더 깊이 알고자 발악하며, 다른 사람들은 음미하지 않는 것도 음미하는 변태 끼도 당연 옵션! 이런 희한한 사람들 덕분에, 그전에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것에 어떤 지식이 쌓이고, 하나의 분야가 생겨나고, 그것이 확산되면 문화가 되고, 좀 더 오래 지속되면 역사로까지 등극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취미에 의해서든, 정리 강박에 의해서든, 혹은 사명감에 의해서든 이렇게 극성맞은 사람들 때문에 인류가 향유했던 무언가가 이렇게 문화, 역사가 되어 기록되나 봅니다. 

선생님은, 문학평론에서 나아가, 매일매일 먹는 음식까지, 문학을 평론하는 것 마냥 음미하고, 분류하고, 순위를 매기고, 오직 먹고 평가하기 위해서 비행기 표를 끊어 프랑스로 잠깐 갔다 오기도 하는 참 극성맞은 분이올시다.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 덕분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무언가가, 하나의 '분야'가 되고, 연구의 대상이 되고, 인류의 소중한 무언가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것과 저것의 다름, 그 차이, 그 차이의 연유, 그리고 그 자체를 음미하고 분석하고 기록에 남기는 것, 누군가는 극성맞아 보이고 쓰잘 데기 없는 짓,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걸 비교하는 억지스러운 인간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어느 면에서 인간의 문화는 당신네들 같은 극성 취미자, 섬세하고 까탈스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다듬어지고, 우대되고, 때로는 유네스코 유/무형 문화유산에까지 올라가나 봅니다. (인간을 재발견했다는 르네상스도 다 이런 극성맞은 사람들 덕분 아니었겠어요?!)


152쪽 │ 왜냐하면 모든 가치 판단은 결국 우열의 판단이고 그런 판단의 축적을 통해 가장 뛰어난 것을 찾아내고 동시에 자신이 그렇게 판단을 내린 배경과 근거를 계속 고민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153쪽 │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 즉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시대, 작품, 작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153쪽 │ 이런 질문은 난센스처럼 보이지만 문화를 생각할 때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물음 자체가 무리가 있는 탓에 그 사람의 편견이 나타나고 맙니다. 편견은 마이너스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편견을 통해서 사물을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문화적인 사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이 뭔지를 알고 그 편견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최고인가를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이 우열 판단에, 뒷목 잡거나 선생님께 반감을 가지실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길을 가야죠. 그래야만 하죠. 그것이 우리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겁니다. 설사 인류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사실 도움 안 될 확률이 더 높죠), 그냥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좋죠. 이런 성격이라면. 어쨌거나, 선생님의 프랑스 요리의 편애,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싸온 도시락을 "그런 장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정이 가득한 물건을 들고 올라타는 건 곤란한 일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태도가 저는 좋았어요. 이건, 제가 선생님 생각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선생님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듣는 게 저는 좋군요. "아, 세상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지요. 그게 억지스러운 생각이 아니고, 그냥 단순히 세상과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라, 당신 본인의 논리대로, 차근히 생각한 후에 저런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저는 좋았습니다. 더치페이에 관한 생각도, 프랑스 요리에 대한 생각도 다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만의 논리를 가지고, 요모조모 미식에 대한, 의견을 펼치신 게 참 좋았어요. 이런 분들 덕분에, 이 세상이 좀 더 다채로워지고 풍성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같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날카롭게 비교/분석/음미하시는 분들 덕분에, 뭔가 취향이랄지 지식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좀 더 넓게 보아 우리 인류 문화까지 깊어지고 넓어진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그냥 단순히 미식의 차원이 아니라,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어요. 나는 무엇에 취향과 취미를 두고, 그것을 음미하고 분석해서, 미약하나마 우리 '문화'에 격을 높일지...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 밤잠을 설쳤습니다.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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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식탁 - 사치와 평온과 쾌락의 부엌일기
이주희 글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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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17일~18일
/주제 분류/ 국내 에세이 (음식)
/읽은 동기/ 제목이 나를 끌어당긴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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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출간된, 음식 에세이 및 글쓴이만(?!)의 레시피를 전수하는 책! 
도톰한 책이지만, 레시피를 소개하는 부분에선 한 페이지엔 사진, 한 페이지엔 레시피 소개라 그렇게 많은 양이 담긴 책은 아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음식 에세이!

하지만 이 책은 호불호가 강하게 나뉠 것 같다. 글쓴이의 문체가, 섹스 앤 더 시티의 말투 같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전문직 독립(혹은 독거) 여성의 칼럼 같은 문체. 취향 확실, 자기 주관 확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섹스에 빗대어 설명한다(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주제마저도). 글쓴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고 읽었다면, 아마도 번역 에세이인 줄 알았을 것. 조금 검색해 봐도 이 책 리뷰에, 문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글이 좀 눈에 띈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문체 취향은 뒤로하고 어떤 책이든 웬만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다 읽기로 했으니, 나는 이 책을 완독했다!! 그리고 문체도 나에겐 그리 큰 부담이 없었고, 다양한 문체를 접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리고 내 친구 중에 분명 부산 토박이인데 서울말을 쓰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대화하면 내가 곧 서울에 있는 느낌이 든다. 부산인데도!!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도 뭐랄까, 분명 한국에서 한국 사람과 대화하는데 꼭 미국 뉴욕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구성은, 글쓴이가 음식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겪었던 일 혹은 어떤 단상을 음식과 엮어서 칼럼 형식으로 쓰고, 그와 관련한 음식 레시피를 싣는 형식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좋았던 것이 이 분의 라이프 스타일을 살짝 열볼 수 있었다는 게 좋았다(관음증이긴 관음증인데, 그래도 남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궁금한 건 '건전한 관음증'이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집에 혼자 살면서(주인장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좁아터진 원룸이 아니라는 말), 혼자 음식을 해 먹거나, 애인, 혹은 여러 명의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하고, 와인도 나눠 마시며 파티나 소소한 모임을 가진다는 것, 뭔가 서양스러운 삶의 방식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 분은 8년 전에 이미 하셨다. 게다가, 책을 낸 게 8년 전이니 그보다 더 전부터 이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셨겠지. 어쩌면, 유행에 민감하고 유행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는 광고업에 종사하던 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정말 글에 쓴 대로 일을 그만두시고 카페를 차리셨는지 궁금) 

어쨌거나, 누군가의 음식에 대한 생각, 음식에 담긴 추억, 자기만의 주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즐겁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따라 할 리는 없지만 그들의 레시피를 한 글자 한 글자 꼬박꼬박 따라 읽어가는 것도 즐겁다. (이건,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 나왔던 미테랑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책을 아주 특이하게 편집하고 책 한가운데, 연필을 꽂을 수 있게끔 구멍을 <빵!> 뚫어 놓은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달까. 나는 제일 처음에 구멍 뚫린 거 보고, 파본이나 누군가 펀치로 일부러 구멍을 뚫어놓은 건 줄 알았다. 어쨌거나 소소한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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