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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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스미스의 사계절 연작 중 첫 번째 작품, 『가을』


​네 개의 계절 중 가을은 곡식과 열매를 수확하는 풍성한 계절이면서 나뭇잎이 물이 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계절, 춥고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계절이다. 분주하고 기쁨이 있는 계절이지만, 쓸쓸함과 고독함도 있는 계절이다. 제목이 『가을』인 이 책은 무엇을 다루었을까.


이 책은 '최초의 포스트 브렉시트 소설'이라고 평을 받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으로서 브렉시트의 중요성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알지 못하겠다. 나에게는 유럽이 원래부터 쪼개지고 짜개졌던 소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대륙으로 보인다. 한때 알렉산더 대왕이 속전속결로 유럽과 아시아를 통합하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지만, 알렉산더가 죽자 제국은 흐지부지되고 다시 잘게 쪼개졌다. 그다음 로마도 몇 세기 간 번창했지만, 아시아에서 도미노 효과처럼 밀려온 이민족에게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유럽연합은 무엇인가.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낭만주의가 정신과 육체에 밴 20세기 정치 원로들이 구상해 냈다. '분열된 나라들을 한데 통합하자' 이런 구상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사지로 몰아넣은 제1, 2차 세계 대전 속에서 피어났다. 그래서 나는 유럽연합이라는 기구가 어딘지 낭만적이다. 분열되고 피비린내 나며, 비인간적인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유럽의 각 나라와 서로 미워하는 국민들을 통합하고, 화합해 평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느껴지는데.


세상에 존재한 지 100년도 안 된 유럽연합이어서, 사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난다고 했을 때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지는 몰랐다. 단지, 유럽 대륙과 오가는 게 힘들겠네, 정도로만 인식했다. 하지만 영국을 비롯해,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상황이 꽤나 심각했다. 단지 유럽연합을 떠나는 문제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자존심의 문제, 신념의 문제, 역사관과 가치관의 문제였던 것이다.




앨리 스미스의 『가을』은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가 쓴 소설로 영국 사람들의 분열된 정신과 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은 아니라서, 기본적인 영국의 상황과 현대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영국인 특유의 언어유희도 많다. 우리 말로는 그 언어유희의 느낌을 살려내기가 힘든데, 번역가분이 고생 고심 많이 하셨을 것 같다. 또 우리에게 낯선 인물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폴린 보티라고, 영국 팝 아트의 히로인 같은 인물이다. 이 사람의 작품이 『가을』에서 많이 언급된다. 화가, 폴린 보티는 당시 영국에서 유명세를 치르긴 탔지만, 여자라는 한계 특히 너무나 예쁜 여성이라는 것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시대를 풍자한 문제작을 많이 제작했으나 폄하되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미국 팝 아트의 아류로 취급받음). 아무튼 우리에게 낯선 인물과 그 사람과 관련한 저작들이 『가을』 안에서 느닷없이 곧잘 등장해 곤혹스럽게도 하고 그랬다.



화가, 폴린 보티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실제 앨리 스미스의 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폴린 보티처럼 자신의 소설도 콜라주 형식으로 그려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처음 읽으면 전체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난해하고 어렵지만, 일단 전체 모습과 작가의 제작 의도만 이해하면 부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앨리 스미스의 『가을』은 일회독으로 덮을 책이 아니라, 재독을 해야 하는 책이다.


또 각 장이 읽고 나면 전체적으로 이어진 느낌이 드나, 그럼에도 분열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현재 영국의 분열된 상태를 묘사한 것이려나. 그런데 이 분열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도 분열되고 쪼개져 있다. 하나에 깊게 집중하는 사람이 드물며, 보통의 집중은 몇 분 간만 지속되며 오래 지속되어도 한두 시간을 넘기 힘들다. 그런 상태를 작품의 '형태'로 조각해 내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현재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과거로, 더 과거로 같다가, 오늘 있었던 조금 전의 과거로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또 겪지도 않은 미래도 생각한다. 어쨌거나 우리의 의식이 그렇고, 기록되는 역사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그래도 작품으로 읽기에는 벅참 ;ㅅ;)


앨리 스미스의 『가을』은 소녀와 노인의 존재의 연결을 나타내었다. (어느 글에서 '우정'이라고 표현되었던데, 사실 '우정'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소녀는 노인을 사랑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존재의 사랑이라고 할까, 좀 흔히 사용되는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이다)


노인은 소수자의 상징이다. 소녀의 엄마는 노인을 편할 대로 이용하면서도 편견을 놓지 않고 노인이 없는 곳에서 비난하고 딸에게 편견을 주입하는데, 나중에 소녀의 엄마는 변한다. 난민을 비롯한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거의 투사급 인물로 변하는데(부당한 공권력에 기압계 힘껏 던지기 ㅋㅋ), 소녀의 엄마가 바로 영국의 일반 국민을 상징한다. 소녀는 소수자와 편견을 가진 일반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Winter is coming을 예고하나, 동시에 희망도 흩뿌려 놓았다.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한 계절 쉬지 않으면 식물은 웃자라기만 하고 실속은 없을 것이다. 겨울은 힘듦의 계절이자 동시에 희망의 계절이다. 영국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저자 앨리 스미스의 바람처럼 소수자를 포용하고 인정하는 그런 길을 선택해 따스하고 행복한 봄을 맞이할지 궁금하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9세기 낭만주의가 다시 한 번 부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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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 :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 2019
최인철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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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게(덴마크)나 라곰(스웨덴) 등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 관련 책을 읽으면, 그 나라 국민에 관한 행복 기관이 상당히 많이 언급된다. 행복 조사 기관이 그 나라 국가 기관이나 대학 부속 혹은 사기업 연구소인지, NGO 단체 같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은, 국민 행복에 관해 상당히 관심이 많고 오랜 기간 심혈을 쏟고 있는 게 느껴진다. 복지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거둔 세금을 어디에 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국민 행복과 국민 만족에 쓰고자 행복 조사 기관이 발달한 것으로 내 맘대로 추측해 본다.


어쨌든 북유럽 관련 행복 관련 책이나, 그 책에 등장하는 행복 연구소를 접할 때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연구하고 국민 만족과 행복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국가적, 사회 조직적 노력 덕분에 북유럽 사람들이 다른 지역 국민들보다 더 행복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정말 절대적으로 북유럽 사람들이 행복한 지는 사실 긴가민가 잘 모르겠다. 그들은 어느 지역 사람보다 모델처럼 키 크고 늘씬하고, 감각적인데 그러면서도 북극에서 불어오는 얼음 바람에 얼어버린 것인지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딱딱하다. 말투나, 행동도 그다지 유연하지 않다. 타인과 외지 사람들에게 개방적이기보다 폐쇄적이다. 자살률도 상당히 높다. 남의 시선, 남의 말에 상당히 많이 신경 쓴다. 어쩌면 진심 행복해서 행복 체크 리스트에 체크를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다만, 사회 안전망이 촘촘하고, 튼튼하게 발달해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분노는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런 안전망이 없다면, 그 긴 어둠과 그 긴 추위와 그 긴 눅눅함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두운 방에 홀로 촛불 하나에 의지해 술만 마셨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북유럽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만족과 행복, 의미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북유럽에만 행복 관련 보고서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 같이가치'가 공동으로 대국민 행복 측정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녕 지수를 조사한 프로젝트다. 사실 UN에서 '세계 행복 보고서'를 발표하지만, 거시적인 측면이 강하고 디테일하지 못하다. 나라별, 지역별 비교 분석이 가능하지만 세계 기구에서 한 만큼 보다 우리 국민의 행복도를 파악하는 데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해당 프로젝트를 행한 것이고 『ABOUT H』는 프로젝트 결과의 정리 물이다.


우리 국민은 얼마큼 행복하고 불행할까.


조사 결과 보통 수준이다. (와,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불행하다고 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냥저냥, 10점 만점에 5점 언저리. 그럼 어느 나이대가 제일 행복할까. 10대와 60대가 제일 행복하다. 그러면 제일 불안하고 우울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세대는? 20대와 30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보고서에는 한때 유행어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또 언급된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육체적 독립을 하고 자립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집을 마련하고, 이 모든 일이 행복한 일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가 보다. (현 정부에서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행복지수가 출렁거렸다. 특히 집을 마련해야 하는 세대에서는 그 출렁거림의 정도가 매우 컸다!) 40대를 거쳐, 50대에 이르면 뭔가 자극에 무반응인 초탈한 사람들이 되고, 60대로 넘어가면 다시 삶에 활력을 느끼고 행복과 만족감이 높아진단다(그래도 돈이 있을 경우에 그렇지, 돈 없는 어르신들은 매일 불안일 것이다).


다른 이야기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불만족스러워하는 요일은 언제일까? 월요일? 일요일? 정답은 목요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공부했는데, 놀 수 있는 주말이 이틀이나 남았쒀.' 이런 박탈감 때문일 끄나. 월요일과 월요일을 코앞에 둔 일요일도 불만족스러움이 올라갔지만 목요일은 진짜 예상도 못 했는데 높았다. 참, 이 리포트에는 나오지 않지만 불만족이 높은 목요일에 스트레스받아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경찰과 소방 공무원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경우도 이때가 많은지 조사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떤 연구든, 연계성을 띠고 하는 것이 사회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니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라는 빅 이벤트로 국민은 즐거웠고, 명절은 분명 일을 쉬긴 쉬지만, 결코 몸과 정신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그다지 행복한 공휴일이 아니다. ;ㅅ; (이런 연구로 상담 센터 직원일 한시적으로 이때 많이 배치하는 것도 좋을 듯)


이 외에도 우리 국민이 언제 행복하고, 언제 불행해 하는지 자세히 나와있다. 보고서 형식이지만, 결코 전문 보고서가 아닌 국민 누구나 재밌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보고서이므로 삶의 만족도를 좀 더 높이고, 행복을 어떻게 관리할지 관심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좀 사람들은 '행복'이란 단어를 좋아하면서도 많이들 싫어한다. 정형화되고 상투적인 단어라서 그런 걸까. 어쨌거나 싫어하든 좋아하든 만족스럽게 사는 건 좋고, 옳은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좀 불만족은 피하고 만족은 좀 더 누릴지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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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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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흐의 서간집을 읽었다. 시기별로 편지의 느낌과 내용이 달라 읽는 내 마음도 균일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읽는 내내 '놀라움'을 느껴졌다. 고흐의 드라마틱 한 삶에서 도출되는 고흐의 이미지와 편지에서 느껴지는 고흐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만 간략하게 들으면, 그는 상당히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사람 같다. 하지만 고흐의 편지에서 느껴지는 고흐는 그와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차분하고 똑똑하며 논리적이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믿음과 철학이 있었다. 고흐의 서간집을 읽으면 그의 그림은 더 이상 예전의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여울 작가의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여행 에세이집이다. 고흐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고흐의 그림, 저자의 감상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저자의 인생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삶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무리해서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빚을 내어 떠난 여행. 출발 전부터 중압감과 회의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반 고흐를 만났을 때 중압감과 회의감은, '여기 오길 잘 했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저자에게 빈센트 반 고흐는 더없이 특별한 존재가 된다.

반 고흐 역시 여행으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에는 반 고흐 인생이 변곡점이 되는 부분을 잘 정리해 놓았다.

빈센트는 무전여행을 하면서 체력의 끝, 감성의 끝, 절망의 끝가지 가보았던 것 같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찾은 듯하다. 그는 광부나 직공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을 그려봐야겠다는 의미심장한 결심을 하게 된다. (- 78쪽)



이런 마음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고단한 사람들의 모습을 고흐는 자신이 본 대로,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객관적 사실 그대로의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그림보다도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는 아직 미숙하고 서툴지만 '빈센트적인 것'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자칫 칙칙하고 어둡게만 느껴질 수 있는 사물들 안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포착해 내는 날카로운 관찰력, 화려한 인공적인 색감이 아니라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는 소박한 색감 속에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능력, 정지된단 하나의 장면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그린 서사적 힘까지. 이 그림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몸짓 속에 그가 살아온 인생의 파란만장한 굴곡까지 녹여내는 야심찬 기획이 담겨 있다. (- 87쪽)

"등불 아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를 향해 뻗은 손은 바로 그들이 밭을 갈아 감자를 캐내던 바로 그 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 87쪽) 고흐의 편지 재인용

고흐의 편지도 그렇고 그의 그림과 고흐라는 사람 그 자체가 특별할 수 있는 건 바로 고흐의 '진정성'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진정성, 진심 어린 마음이 보통 사람의 방식과 달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괴로워하면서도 고흐는 자신의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요새 나는 정말 신들린 것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말없이 그저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발작이 낫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들라크루아가 한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이빨이 빠지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림다운 그림을 찾아냈다고." (- 125쪽) 고흐의 편지 재인용

올해 초 한동안 내 삶은, 소위 '삶의 기로'라는 것에 멈춰 있었다.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 선택을 해야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요즘은 짧은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감정이 느껴진다.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막막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질렀다.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우왕좌왕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비난이든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수하겠다는 심정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나의 마음은, 고흐의 마음이나 혹은 고흐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은 정여울 작가의 마음과 비슷할까. 내 선택의 끝이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의 논리에 따라서, 그리고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까지 고흐처럼 휘둘리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요즘 들어 내 삶이 의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는데, 그 말과 꼭 같다. 죽음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죽음이 언제나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뉴스에 흉악 범죄가 일어나면 이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내 마음속에 품은 그 한 가지는 꼭 이루고 싶다. 그다음 삶이야, 개의치 않는다.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로맹 가리의 마지막 등 모든 게 겹쳐 떠오른다. 어쨌거나 길을 간다. 고흐는 고흐대로 걸었던 길, 정여울 작가님 대로 걸었던 길, 그리고 나의 길.

'비로소 그림다운 그림' 

'비로소 삶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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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도리스 되리, 김라합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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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피맛 감도는 달콤 쌉쌀한 이야기



나는 대부분의 현대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죽었다고 하면 읽어볼만 하다. 죽은 후에도 계속 출판될 정도라면, 작품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생각은 옳다. 요즘의 소설들은 너무 가볍거나 작가의 철학적 이상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형이상학적이어서 나에게 그런 책들은 무의미하다. 매번 냉소적으로 책을 덮는다. 좋은 작가가 등장했다고 해도 아껴두고 작가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한다. 죽은 후에 출판될 때까지. 물론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고, 지금처럼 책을 읽을 수 있는 건강한 눈과 책에 대한 호기심, 열망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읽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는데 푹 빠져 읽었다. 한 장 한 장 읽는 게 아까울 정도. 이렇게까지 현대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나 싶었다. 한 인간의 감정과 마음, 관계에 대한 생각이 날것 그대로, 현실적이었고 사실적이다. 허구의 소설일 뿐인데 진정성이 느껴진다. 모든 소설은, 이런 사실적 느낌과 진정성이 느껴져야 작품(作品)이라고 본다.


책 내용이 조금은 오래되었다. 휴대폰이 아니라 전화기를 사용한다. 국제 통화를 할 때는 전화 교환원이 등장한다. 그래서 원서가 언제 쓰였는지 찾아보니까 1991년이다. 28년 전의 작품인데, 몇 몇 소품을 제외하면 상당히 감각적이고,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좋은 소설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1991년이면 28년 전이긴 해도, 세기로 따지자면 한 세기 전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도 고전소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당히 현실감각이 넘치는 고전소설. 정말 마음에 들고 좋다.




이 책은 총 1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하지만 파니 핑크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의 이야기들이 시간 순으로 배치된 연작 단편들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조각으로, 조각들을 이어붙이면 하나의 조화로운 조각보가 탄생하듯 이 단편집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장편소설 느낌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때그때 기억나는 것들로 우리 삶을 규정하고,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아왔어'라고 말하듯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단편들은 이어지지 않고 조각나 있지만, 등장인물이 겪었을 특정 경험, 특정 감정들로 소설 속 파니나 안토니아, 샤를로테 그리고 그녀들과 만났던 남자들의 모습이, 그들의 인생의 전체적 윤곽이 그려진다.


사실 이 소설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화 <파니 핑크>의 원작 소설이다. 감독과 소설 저자가 같은 사람이다. 도리스 되리. 나는 독일인은 뭔가 무뚝뚝하고, 자기 감정은 억누르고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이런 생각/편견이 깨졌다. 상당히 섬세하다. 도리스 되리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간직해 있다가 그걸 풀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사소한 감정도 작가가 그걸 온전히 느끼지 않았다면 결코 쓸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부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나만 느낀 게 아니구나라고 위로되는 그런 느낌. 나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끼는 구나 싶어 안심이 되는 그런 부분이 있다.


이 소설은 대부분 관계의 이야기다. 대체로 여주인공과 그 여주인공이 만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도리스 되리는 여성의 심리도, 남성의 심리도 잘 그려냈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간과 시대를 통찰하는 거창한 뭔가는 없지만, 개인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현미경처럼 잘 드러냈다고 본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파니(그런 만큼 쉽게 떠나는 파니),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곧잘 넘어가고, 욕정에 못이겨 여성들에게 집적거리는 남자들이나, 남자들의 관심을 싫어하는 않는 여성들, 이제 드디어 사랑을 만났다고 느끼고 진짜 사랑을 하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싸우고, 실컷 울다가 곁을 떠나지 않고 자기를 위로해 주는 상대방에게 더없는 사랑과 위로, 안정감을 느끼고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되는 사람, 그런데 이런 만족감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고독과 외로움은 더 커져서, 더 자주 싸우고 더 심하게 폭력적이 되어가고 더 많이 울어야 하는 비극의 반복이 지속된다. 짧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불행과 비참함을 끌어들이는 사람들.


피맛이 약간 감도는 달콤쌉싸름한 인생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1991년에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감각적이고, 좋다. 새삼 도리스 되리의 감각에 감탄한다. 사랑과 남여의 관계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념에 회의를 품고 있는 사람,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사실적으로 풀어 쓴 글을 좋아하는 분들께 강추한다. 오래도록 아끼고픈 책이다. 강추!



+ 국내 출판된 도리스 되리의 책들이 다 절판된 상태인데,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를 펴낸 김에 문학동네에서 도리스 되리의 다른 책들도 다 재출간해주면 좋겠다.


+ 개인적으로 번역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번역한 '김라합' 번역가님의 책을 되는 대로 다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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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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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죽다 살아났다.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버렸던 것. 감기 몸살 걸린 이유는 알 것 같다. 몇 주 동안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잠도 잘 못 잤다. 그러다 어제 당일로 서울에 갔다 왔다. 잠을 4시간 자고, 새벽에 일어나 기차를 탔으니, 면역력이 떨어질 만도 하다. 기차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폐쇄적이다. 밀폐된 곳에 많은 사람이 있으니 공기의 질은 나빴을 것이다. 올라가는 기차에서부터 상태가 이상했다. 점점 머리가 아팠고,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냥 전날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해서 회의실에 앉아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코에선 물 같은 콧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너무 거침없이 흐르길래 처음엔 코피인 줄). 몸은 으스으스, 뼈마디가 산산조각 날 듯 쑤시고 팠다. 이후로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떻게 마치고, 어떻게 역에 갔는지, 또 어떻게 기차를 타고 왔는지. 비몽사몽. 밤에 부산에 도착해, 겨우 문 열린 약국에서 몸살 감기약을 사 먹고 나니 그나마 살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욱신욱신 아프다.


스트레스, 고민, 부족한 잠. 게다가 1주일 정도 내 생활 패턴은 완전히 무너졌었다. 그래서 몸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근데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 몸살이 걸리면 왜 아픈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 느끼는 통증은 원래 인간이 느껴야 하는 통증인 걸까, 삶의 무게인 걸까. 건강할 땐 인식하지 못하다가 왜 면역력이 무너지면 느끼게 되는 걸까.


그동안 내가 예민한 거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감기 몸살 걸리기 전에 이 책도 읽었다. 『둔감력 수업』


나 같이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 조금 둔감해지면 삶이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책.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잘 안되는 말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날 선 마음을 둔감하게 만들려고 한다. 노력해 본다.


둔감해진다는 것은, 바보 같아져라는 말이 아니다. 날을 뾰족 세우고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진 말라는 뜻하다. 진짜 매진해야 할 것에만 집중해 매달려라고 한다. 그 외의 사람들의 말,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하거나 둔감해지라고 한다. 그러면 삶이 홀가분해진다고, 좀 더 행복해진다고. 쓸데없는 것에 둔감해지면 지금 내려야 하는 판단에, 결단력도 높아진단다. 보다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으니, 이런 일에 스트레스받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도 된다고.


과연 맞는 말이다. 실천이 잘 안돼서 문제지. ;ㅅ; 세상에서 마음대로 제일 잘 안되는 게 내 마음이 아닐까. 그래도 노력해 본다. 지금 이렇게 감기 몸살에 걸린 건, 몸이 '좀 둔감해져봐'라고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내 몸과 나 자신이라고.


그래, 좀 둔감해져 보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타인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기 보다, 타인의 행동엔 둔감하고, 나 자신에게 민감해지기로 해본다. 몸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니까 내 몸의 말을 따라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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