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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요즘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조국 후보자와 그의가족 이야기를 보면 '중산층이 어떻게 상류층으로 진입하는가'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다. 상당히 재밌고 흥미롭다. 왜냐면 보통 '이미 상류층으로 진입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볼 수 있기 때문. 조국 후보자는 흔치 않게 '진입하는 과정'에 위치하고 있다. 드문 케이스.
또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강남좌파'라는 말이 재밌고 인상적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강남좌파'란 뜻은 <계층은 중산층이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 한다. 과연, 그러할까. 내가 생각할 때는 강남좌파는 <나와 우리 가족은 대대손손 대한민국 1%의 고학력과 부를 대물림해서 살 것이지만, 나의 생각과 의지는 '내가 편입될 일이 없고', '결코 내 자식도 편입되어서는 안되는 노동자 계층'을 위한다>로 이해된다. 그렇지 않으면 조 후보 부부와 조부모가 조 후보 딸 진학 문제로 그토록 애를 썼겠나 싶다. 암튼 근래 들었던 말 중에서 강남좌파란 말이 웃기고, 제일 위선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산층 부모들은 조국 후보처럼 되길 꿈꿀 것이다. 그들은, 정치 성향에 따라 조국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고,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층 상승 욕구는 조 후보와 동일할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저 위로, 저 위로... 가능하다면 꼭대기까지 대대손손 대대로!! 계층 상승을 위한 방법(정보), 능력(권력과 재력)만 된다면 보통의 중산층 부모들은 조 후보 부부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DJ 이후 몇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계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계층 이동이 줄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엘리트들이 대거 중산층으로 진입했고(1950~80년대까지만 해도 가난한 엘리트들이 많았다), 한번 중산층에 편입하자 최상류층까지 올라갈 방법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국 후보자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한 모습일 뿐이고, 그들은 대체로 이러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나라 계층 이동성은 더욱 위축되고, 활력없고 비능률적인 사회가 될 거라 예상한다. (중산층 계급에 속한 언론인들, 교수들은 말이나 글로만 계층 이동성을 주장할 것이다. 실제 행동은 조국 후보자처럼 계급 이동성을 저해하는 행동을 매번 할 것이다. 본인의 기득권과 이익을 놓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이 쓴 책이다. 그는 귀족이나 젠틀맨 계층이 아닌 영국의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가 공부를 잘했고, 좋은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저자의 아버지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친구들 대부분이 살게 될 인생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분이 좋지 못했으나 일단 좋은 학교에 들어가니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도 좋은 교육을 받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저자도 아버지처럼 좋은 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옥스퍼드를 나왔다. 직장 역시 영국의 세계적인 싱크 탱크 기관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그는 영국 신분제 사회에 염증을 느꼈고,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는 미국은 평등한 사회인 줄 믿었다.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이민한 후 미국 사회에 편입해 보니, 되려 미국이 영국보다 계층 이동성이 더 낮았고, 공고히 계급이 유지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미국에 신분제는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명백히 계층이 나뉘어 있다. 간단하게 최상류층 > 중상위층 > 중하위 > 하위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당연히 위가 뾰족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진다.
보통 미국의 공화당은 최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한다 생각하고, 진보적인 민주당은 최상류층을 공격 대상으로 삼으며 중산층부터 그 아래로의 계층을 다 포섭하고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민주당이 결코 그렇지 않다며 주장한다. 그들은 1%의 최상류층을 비난하지만, 철처하게 자신이 포함된 중상류층(상위 20%)의 이익을 대변한단다. 말로는 하위 계층을 위하고 계층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나, 그들은 결코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철옹성을 짓는다. 자신들이 저 밑의 계층으로 떨어지지 않게 <유리 바닥>을 설치하는 것이다. 자식이 좀 능력이 없더라도, 계층이 하락하지 않도록 보호막을 만드는 것이다. 이 유리바닥은 일단 결혼에서부터 출발한다. 먼저 결혼 전부터 엄청난 노력을 한다. 임신해서 태교할 때도 철저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양육할 때도 온갖 지극정성이다. 좋은 과외는 물론이고 자녀들과 대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한다. 학교는 비싼 사립이거나, 우수한 공립학교에 보낸다. 우수한 학교에 다니면 그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또 좋은 대학을 나오면 또 그만큼 좋은 직장을 얻을 확률도 높다. 하청업체나 비정규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직장으로. 그들은 평등할 수 없는 게임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이다.
갈수록 계층 이동성이 경직되어 가는 미국. 하지만 우리나라도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걸 느꼈지만, 소위 좌파라 주장하는 조 후보자 가족들이 자녀 교육과 진학에 보인 행태는 이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미국 중상위층의 모습과 동일하다.
지금 포스트는 조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글이 아니다. 이 책, 미국의 중상위층을 다룬 책을 읽었고, 우리나라 중산층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이다. 중산층 엘리트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주장을 하든 간에 그들은 결코 그들의 이익은 놓지 않는 한에서 중하위 계층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대입 관련 어떤 정책을 내든, 노동자를 위해 어떤 정책을 내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vs80의 사회』 이 참 시의적절한 책이 아닌가 싶다. 2017년에 미국에서 출판됐는데, 그때보다 지금 2019년 우리에게 더 적절하게 와닿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이 특히 인상 깊은 건, 저자가 엘리트층에, 남부러울 것 없이 돈을 잘 버는 중상위층 사람이면서도, 사회의 역동성과 능률을 위해 자신가 속한 중상위층 사람들(그는 '우리'라고 지칭했다)에게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자고 말한다(스스로 하기 힘든 주장 아닌가?! 책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야 미국은 좀 더 건전하고 건강하며 능률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부모 덕에 대학 잘 가고, 좋은 직업 가진 사람 중에 능력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며 이들이 사회의 능률성을 갉아 먹는다고)
지금 우리도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책도 재밌고(저자가 글을 정말 재밌게 잘 쓴다), 내용도 정말 좋아서 강추한다. 일독을 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