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 디자인이 매끈하게 잘 빠져서 읽고 싶었던 책. 참고로 표지 얼굴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의 인격을 스포하고 있다. 베일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주인공의 얼굴. 유일하게 또렷이 보이는 한쪽 눈동자처럼, 초점 없이 날카롭게 쏘아보는 그 눈빛이 주인공의 진짜 내면을 드러낸다.


이 책은 '야도노 카호루'가 쓴 미스터리 장르로, 서간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설명으로 '복면 작가'라고만 적혀 있어, '야도노 카호루'라는 이름도 가명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책은 가볍고, 각 페이지마다 아래쪽 여백이 넓어 분량이 얼마 안 된다. 마음잡고 읽으면 1~2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 게다가 서간체 형식이다 보니 인사말이 많고, 옛날에 있었던 일을 회고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쓴 부분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책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책은 광고 카피 그대로 막판에 '반전'이 나온다. 하지만 반전이 있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듯, '반전이 있다'란 카피는 그 자체로 언제나 '스포일러'가 된다. 나도 반전을 즐기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처음부터 반전을 뒷받침할 부분을 체크하며 읽었고, 그래서 마지막 반전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반전을 읽고, 앞부분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아 구멍 난 퍼즐처럼 느껴졌던 부분을 다 찾았다 정도?!


이 책은 반전보다, 끝부분에 드러나는 막장 십이지장 같은 내용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성(性)진국 일본의 성(性)스러운 문화와 그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달까. 일본 사람들의 성에 대한 기본 생각이 우리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 책 하나 읽고, 일본이란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성에 대한 가치관을 규정할 수는 없으나, '아, 역시 일본은 이렇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의 반전 장치보다 그들의 성에 대한 생각에 놀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 인물 설명 │

미즈타니 가즈마 : 현재 50대 남성. 중학생 때 부모님을 여의고, 고모부 집에 들어감. 새고모가 데려온 유코와 약혼. 졸업 직전 진심으로 사랑하는 다카오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유코와 파혼한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다카오가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빠진다. 30년 후 그는 용기 내어 다카오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다.


​다시로 미호코 : 미즈타니 가즈마의 대학 후배. 연극부원으로 활동하며, 미즈타니 가즈마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즈타니 가즈마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고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다가, 2년 후 3번째 메시지를 받고 답장을 시작하며, 옛날에 있었던 풋풋했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낸다.


​다카오 : 미호코와 고등학교 동창. 대학 연극부도 함께 활동. 미호코와 함께 사귀었다는 소문이 돈다.


​미야와키 : 연출 보조. 미즈타니 가즈마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연출 보조. 그러나 연극 스폰서 받은 거액의 돈을 들고 사라졌다.


​유코 : 미즈타니 가즈마의 여동생. 고모부가 고모와 이혼하고 재혼한 여성이 데리고 온 아이. 스페인+일본인의 2세대 혼혈이라 남다르게 아름다움. 미즈타니를 무척 좋아해 부모님께 졸라 약혼한다.


미즈타니 가즈마의 고모부 : 아내와 이혼해서 미즈타니 가즈마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인물이지만, 오갈 데 없는 미즈타미를 거둬 키워준 인물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위의 인물 설명만으로도 막장적 요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집이 파산해 대학 진학이 불투명해졌던 미호코가 무슨 일을 했는가인데, 미호코는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과 상관없는 관계도 다채롭게 맺었다는 게 좀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미호코의 생각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무수한 남성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거는 그냥 몸의 관계일 뿐이고, 미즈타니와의 관계는 사랑의 행위였다고 하는 게 좀 요상했고, 또 그러면서 자기가 그런 일하는 줄 알고 있었으면 자기에게 알은체도 안 하고, 화도 안 낸 미즈타니에게 어쩌면 그럴 수 있냐고 오히려 화를 낸다. 본인이 그런 일을 하는 걸 미즈타니에게 말하지 않은 건 당연한 것처럼 말하면서... 그리고 연극부 남자들도 그렇고 스폰서도 그렇고 다 이해불가. 유코도 고모부도 마찬가지고, 피해 의식 때문에 괴물이 되어 버린 미즈타니도 도저히... @ㅅ@


​작가가 극적 반전 혹은 자극적 반전을 위해 일부러 이런 요소를 넣었는지, 아니면 원래 성에 대해 작가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읽고 나서 '역시나 일본은...'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


전반적인 느낌은 결혼식 당일 갑자기 사라진 예비 신부를 30년이 지나서도 잊지 못한 한 남자의 연서(戀書) 읽히지만 끝부분은 막장 십이지장이 되니, 궁금한 분들은 읽어보시길! 참고로 끝부분이 자극적이지만, 자극적인 '묘사'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