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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평점 :
기상천외한 판타지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인 소설
세상 궁금한 게 많고 실험 정신이 투철한 아오야마는, 자기만의 <관찰 노트>를 갖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다. 어느 날 등교를 하다 주택가 공터에 나타난 수십 마리 펭귄을 목격하게 된다. 학교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은 놀랐다. 사람들 의견은 분분했지만 동물원에서 탈출했으려나 짐작한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주택가에 나타난 펭귄은 분명 이상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펭귄을 연구, 관찰키로 결심한다. 그래서 프로젝트 하나를 수립하는데,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펭귄 하이웨이>. 바다에서 올라온 펭귄이 뒤뚱뒤뚱 걸으며 자기 서식지로 갈 때 어떤 길을 따라 걷는데 이 길 이름이 '펭귄 하이웨이'다.
아오야마는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펭귄 하이웨이'그뿐만 아니라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여러 개였다. 친구 우치다와 마을 작은 수로의 수원을 찾는 '아마존 프로젝트', 어딘지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는 치과 누나를 관찰하는 프로젝트 등 동시에 진행하는 연구가 많았다.
우치다와 아마존 프로젝트를 할 때 반에서 황제 노릇을 하는 스즈키와 그의 일행을 만나게 되고, 호되게 당한다. 우치다는 도망, 아오야마는 자판기에 묶긴 채 혼자 방치된다. 치과 누나가 아오야마를 풀어주고, 마침 아오야마의 흔들리는 이를 빼게 된다. 이가 생각대로 잘 안 빠지자, 누나는 아오야마의 흔들리는 이에 실을 묶고 아오야마의 시선과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콜라캔을 힘껏 하늘로 던진다. 그 순간 콜라캔이 펭귄으로 변한다. 마을에 나타나 한바탕 소란을 피웠던 펭귄은 바로 치과 누나가 '사물'로 만든 것이었다. 프로젝트 두 개(펭귄 하이웨이, 누나 연구)가 동시에 갱신됨.
이런 일이 있었지만 마을의 일상과 아오야마의 일상은 별일 없이 무난히 흘러가고,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하마모토가 아오야마와 우치다를 데리고 자기만 아는 비밀의 장소, 숲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초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 초원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구(球)로 된 바다가 떠 있다. 그렇다, 진짜 바다다.
아이들은 물로 된 구를 '바다'라고 부르며 '바다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하마모토의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바다는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가끔 프로미넌스라는 현상(프로미넌스는 태양 코로나에서 생기는 불기둥이다)을 나타낸다. 이 구로 된 '바다'가 '작은 바다'를 뱉어내는 것.
너무나 신기하고 희한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니, 아오야마는 모든 프로젝트가 너무 어렵고,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때 아오야마의 아버지가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주신다.
"네 연구가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전에 한 말 기억하니?"
"문제란 무엇인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란 무엇인가."
"몰라요. 문제가 여럿 나타났어요. 모두 다 어려워요."
"그건 해결에 다가가고 있다는 징표일지도 몰라."
"왜요?"
"그 문제들은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지."
나는 노트를 꺼내서 '그건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반복해서 생각해봐야만 한다. 펭귄 하이웨이 연구와 '바다' 연구는 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 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잘 생각해볼게요."
"매일 발견을 기록해둘 것. 그리고 그 발견을 복습해서 정리할 것."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마셨다.
- 254쪽에서
아버지의 조언대로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로 잇고, 추론을 하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바다, 펭귄, 재버워크(펭귄을 잡아먹는 괴물), 누나, 흰긴수염고래, 모두 이어져 있다!
소설은 바다의 크기를 조정하고 수선하던 펭귄이 재버워크에 잡아먹혀 줄어들자, 초원의 바다는 하염없이 커지게 되고 결국 마을과 마을 사람까지 위협하게 된다.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와 함께 펭귄 군단을 이끌고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 바다를 터트려 없앤 뒤 마을의 소동은 일단락된다. 그리고 아오야마가 좋아하던 치과 누나도 사라진다.
한 소년의 성장담
많은 부분이 판타지적 설정이나, 주인공 아이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마을 숲에 초원과 바다가 나타났다가 없어진 일도, 펭귄과 괴물(재버워크)가 나타났던 일도 그냥 마을에 축제나 신기한 일이 한 번 벌어진 것과 비슷하다. 이벤트지만 다음날이면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크게 별일 아닌 일.
하지만 이런 일들이 한 소년의 성장담이 되고 모험담이 된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몰랐던 소년은 자기 마음에 싹튼 감정을 깨달은 것이다. 헤어진 치과 누나와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무척 일찍 일어나서 이제 막 날이 밝은 거리를 홀로 탐험한다. 그럴 때, 우리 도시는 텅 비어 있어서 나는 당장이라도 세계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세계의 끝을 향해 매우 빠르게 달려갈 작정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세계의 끝으로 통하는 길은 펭귄 하이웨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다. 나의 신념이다.
오늘 계산해봤더니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3000하고 748일이 남았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의 나보다 계속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면 내가 얼마만큼 훌륭해져 있을지 짐작도 안 간다. 나는 분명 밤이 되어도 졸리지 않는, 하얀 영구치를 갖춘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키도 클 거다. 근육도 충분히 붙어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전철을 타고 해변의 도시로 갈 것이다.
전철에서 나는 누나에게 여러 가지에 대해 얘기해줄 생각이다. 어떻게 펭귄 하이웨이를 달렸는지. 누나와 헤어진 후 내가 탐험한 장소와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눈으로 본 것들, 내가 스스로 생각한 모든 것들. 그래서 누나를 다시 만나는 그 순간까지 내가 어떻게 얼마만큼이나 어른이 됐나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얼마나 누나를 좋아했나 하는 것.
얼마만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나 하는 것.
- 421쪽
우주를 담고 있는 소설
이 소설은 우주에 대해 꽤 많은 것이 나온다. 상대성이론, 블랙홀과 화이트홀, 접혀 있는 우주, 과거로 이동, 시간의 갈라짐 등. 우주 이론을 소설에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일처럼 자연스럽게 녹여 냈기 오히려 난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모르고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펭귄 하이웨이>를 보신 분들 중에서, 이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다룬 것인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많다.
우주론은 뉴턴의 이론처럼 완벽하게 검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칙(ex. 가속도법칙)'이라 불리지 않고 '이론(ex. 상대성이론, 다중우주론)'으로 불린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직 '상대성법칙'이 아니라 '상대성이론'으로 불리는 것은, 그만큼 인류가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펭귄 하이웨이』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거창하거나 스케일 크게 풀어놓지 않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는 영미 작가들은 자기만의 우주를 구축하기 위해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펭귄 하이웨이』는 일상에 작가가 상상한 우주를 끌고 오기 때문에, 그래서 난해하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취향은 『펭귄 하이웨이』! 작은 마을에 외계인이 아무도 모르게 침공했다가 사라진 이시쿠로 마사카즈의 일상물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느낌도 들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