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경제위기가 시작됐다 - 위험한 미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정인호 지음 / 메이트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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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만에 읽은 경제책.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재밌게 잘 읽었다. 내가 알고 싶은 내용들이 담겨 있어 좋았던 걸지도. 확증 편향에 의존한 경제학 책 읽기.


이 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와 그를 찍어준 유권자들을 다루고, 트럼프의 사람들... 선거운동 때 핵심 인물, 백악관 입성 후 최측근들, 그리고 물갈이 되어 날아가 버린 자들과 트럼프에게 현재 신임 받는 인물들을 분류하고, 분석한다. 트럼프 주위 인물들을 크게 ① 미국 국가주의자, ② 유대인, ③ 미국 전통 부자, ④ 공화당 주류 정치인, ⑤ 군인들로 나누는데 뉴스나 신문으로 봐오던 사람들을 이렇게 분류해서 보니 좀 색다르고, 그 사람의 특징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특히 폼페이오가 웨스트포인트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것에 깜짝 놀람. 어딜 봐도 군인 느낌이 안 나던데. 그리고 군인 시절 사진 보고 더 놀람) 


저자가 트럼프 주위 사람을 분류하고 분석한 이유는 트럼프가 지향하는 바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짜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트럼프의 핵심 인물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지만, 세세한 배경까지는 잘 접하기 힘드니까, 책의 내용이 내겐 유익했다. 



그다음에는 1929년 대공황, 2차 세계대전 이후 초호황, 오일쇼크 이후 불황, 신자유주의, 2008 금융위기에 대해 다루고, 지금 세계 경제 흐름과 트럼프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경제성장률은 2008년 금융위기가 오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현재도 장기적 성장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구조적 장기 침체', 이것이 미 주류 경제학자의 생각이다. 요즘 미국 뉴스에 미국 고용 시장이 완전고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고령자와 여성 중심으로 고용이 좀 늘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 연준은 긴축정책을 취하려 하나, 트럼프 정부는 재정확대를 하면서 국채 발행 증가를, 국채 발행 증가는 금리를 올릴 수 있으므로 연준과 반대로 양적 완화에 해당해 현재 미국 경제 정책은 혼란스럽다고 진단한다. 


현재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첫째 세계 교역 룰을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고, 다시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을 치는 것. 


이는 곧 경제와 정치가 맞물린다는 말이인데 정치와 맞물린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저자는 투자에 관해서는 '보수적인 접근'을 추천한다. 또 일본을 참고해 볼 만한 것으로 일본을 꼽는데 그들이 그랬듯 안전하게 은행에 묶어두던지, 아니면 해외자산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말이다.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았어도, 경제 위기가 올 거란 말은 계속 나왔을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정치도 뭔가 더 복잡해졌다. 아니, 트럼프는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아니지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내일 딴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게 문제인데, 가끔 생각하면 트럼프의 이런 면이 세계 불안요소이나,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요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지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는 못하니까. 


어쨌거나 경제의 호황과 불황은 반복된다. 다만 어떤 원인으로,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누가 기쁨을, 누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가 다를 뿐이다. 경제가 누군가의 예상대로 흐르긴 힘들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을 듣고, 본인 스스로가 흐름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트럼프 정부와 앞으로의 경제가 어떨지 관심 있으신 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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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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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가장 고통스럽고도 기쁘게 만드는 일은,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는 일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해 밤늦게, 새벽까지 읽어 끝을 본 뒤 어디로든 힘껏 달려가고 싶은 기분에 빠진다. 책 한 권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처럼, 지저분한 방을 싹 뒤엎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보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온통 뒤범벅이 된다. 있는 힘껏, 내가 무엇이 될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 아주 좋은 책과 아주 좋은 여행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 126쪽, 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의 나를 가장 고통스럽고도 기쁘게 만드는 일은,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는 일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해 밤늦게, 새벽까지 읽어 끝을 본 뒤 어디로든 힘껏 달려가고 싶은 기분에 빠진다. 책 한 권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처럼, 지저분한 방을 싹 뒤엎고 새로운 무언가를 도모해보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다혜 기자의 신간. 이번에는 글쓰기 책이돳! 


이다혜 님은 기자 일도 하시고, 팟캐스트에 출연도 하시고, 강좌도 여러 개 하시고, 책도 내시고... 이 분의 하루는 72시간으로 흐를 것 같다. 내 하루는 12시간 같아서, 시간에 쫓겨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데. 어쨌든 일도  많이 하는 사람이 많이 하고, 글도 많이 쓰는 사람이 많이 쓰는구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작법 원칙이나 작법 요령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고, 글쓰기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의 경험과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 생각이 강하게 배어 있다. 그리고 아쉽게도 작법 책이라고 하기엔 구성이 산만하고, 글의 내용도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고, 글로 먹고사는 사람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경험, 글쓰기 예시를 보기엔 좋다. 




내가 느끼는 이다혜 기자만의 문체가 있는데, 이 책에도 있다. 문체는 사람의 목소리와 같아서 그 사람만의 고유 리듬, 억양, 높이가 있다. 한 번 정착되면,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아, 내가 지금 이다혜 기자의 글을 읽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이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고, 좋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내가 이다혜 기자의 글을 꾸준히 읽는 건, 사실 글의 내용보다도 군데군데 언급되는 영화나 책 이야기가 좋아서다. 내가 몰랐던 영화와 책이 많이 나온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도 많이 언급돼 반가웠다. 호기심 돋는 책과 영화는 메모했고, 하나씩 볼 계획이다(이 생각만으로 설레고 기분 좋다). 또 공감되는 단락들이 글 중간중간 뿌려져 있어 좋다(내가 책을 읽는 이유로, '공감 가는 내용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8 할이다). 요 단락들도 메모메모.


좋은 예술작품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리라 예상하지만, 생각을 풍부하게 만드는 작품이 그렇다. 선악이 단순하거나 호오가 간단히 갈리지 않으며, 작품의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해 이야기나 정서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면, 내가 본 것이 무엇이며 내 경험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위한 탐색 과정으로 글쓰기가 필요해지기도 한다. -74쪽, 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음...?! 발췌문의 문장 호응이 이상하지만, 아무튼 좋은 예술작품에 대한 생각에 공감한다. 생각을 풍부하게 하는 작품, 선악이 단순하게 나뉘지 않고,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품, 그래서 내 생각과 감정을 쿡쿡 쑤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본다. 책, 영화, 미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처음부터 걸작을 만드는 사람도 없다. 그냥, 뭔가 하고 싶다면 하면 된다. 그것이 글이면 글을 쓰고, 영화 만들기면 영화를 만들면 된다. 그것도 열심히.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건, 이다혜 기자의 글쓰기 조언보다 이다혜 기자의 경험이었고, 뭐든 스스로 부딪혀 경험해 봐야 한다는 진리였다(뭐가 됐든 '경험'이라는 진리로 돌아오지만). 글쓰기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없으니, 꾸준히, 그냥 써야 한다는 것. 그렇게 경험을 쌓다보면, 이다혜 기자님처럼 글 쓰기 책도 내고, 강좌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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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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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한 어른이 되는 법에 관한 책. 

한때 우리나라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썼다. 『미움받을 용기』를 안 읽어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마흔에게』를 읽어보니 어떤 느낌의 책일지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 책은 병과 인지 장애로 편찮으셨던 부모님을 모셨던 때의 일, 그때 저자가 깨달았던 점, 그리고 본인이 큰 병을 겪고 죽을 고비를 겪으며 느꼈던 점과 깨달음에 대해 쓰고 있다. 이제 애 키우기에서 벗어난, 그래서 부모님의 노후를 처음 겪어야 할 마흔 즈음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부모님의 노후와 본인의 노화에 대해 쓴 글로 '사노 요코의 에세이'와 '가쿠다 미쓰요의 에세이'가 떠오른다. 사노 요코 씨나 가쿠다 미쓰요 씨나 모두 전문 작가이기 때문에 심각하고 당황스러울 만한 일화도 재밌고, 가볍게 풀어써서 상당히 즐겁게 읽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는 그런 에세이와 다르게 좀 푸근하고, 인생의 선배가 후배에게 다정다감하게 조언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본인이 아팠던 때의 일과 부모님의 말년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저자가 슬기롭게 잘 대처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 가족'에 대해서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고, 옛날 생각에 눈물이 나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나는 저자처럼 내가 죽을 병에 걸린다면, 부모님이 병이나 인지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아직 내가 젊다고 생각하는 건지, 병에 걸릴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병에 걸리면 그냥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닥쳐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만, 일단 지금의 나, 이 나이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엄청난 것임을 알고 있어서 진짜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면 지금의 내 생각도 바뀔 거라 보지만. 

부모님의 노후는... 글쎄,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늙음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 나는 할머니를 정말 안 좋아했는데, 할머니의 험한 말과 정 없는 마음, 막무가내의 행동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은 늘 고통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화가 나 있던 사람이라 걸핏하면 동네 사람들과 싸웠다. 그리고 정말 옛날 사람이라, 본인의 삶의 방식에 나를 꼭 맞추었는데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살면서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머리에 기름 바르고, 꽁지는 꽉 묶어 조선시대 사람 같이 다닌 초등학생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물이 귀한 때 살았던 분이라 씻지도 못하게 했다. 집에서는 할머니께 구박받고, 학교에서는 별나고 가까이하기 싫은 아이로 늘 혼자였다. 어쨌거나 내 기억 속의 늙음, 노인은 고집스러움과 아집, 분노, 성마름으로 기억된다. 엄마에게 시집살이도 많이 시켰는데, 어쨌거나 나에게 노인은 싫은 존재다. 나에게 아버지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서, 종종 걱정이 된다. 책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도 아버지가 사이가 극단적으로 안 좋았던 적이 있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에게 잘해 준 기억이 나 그런 감정들이 서서히 없어지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좋았던 기억, 나에게 잘해 주었던 기억이 정말 단 1도 없어서 안 될 것 같은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기시미 이치로가 꼽은 <어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이었다. 요건은 이렇다.


첫째,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기. 

둘째, 결정은 스스로 내리기. 

셋째,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두 번째 요건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결정이든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 기시미 이치로는 무조건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그러해야 한다고 하니까 싫어도 부모님에게 억지로 잘해주거나,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한다. 이게 나에게 적잖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기시미 이치로도 직접 부딪히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듯, 나도 내가 경험해야 할 몫이 있을 것이고, 직접 경험해야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긴 인생을 사는 동안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되고 

겪고 싶지 않은 것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 251쪽, 솔론의 말 재인용



기시미 이치로는 어느 나이의 사람, 어떤 경험을 하고 자란 사람인지에 따라 읽히는 바가 다를 것이다. 나도 저자처럼 사람 좋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안다. 나는 저자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것과 좋은 기억을 살릴 수 없다는 것. 저자가 깨달았던, 모두가 좋고 좋은 깨달음은 얻을 수 없다는 것. 어쨌거나 결정은 나 스스로 내려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질 것이다. 내 책임에서 도망갈 생각은 없다. 그리고 옛 기억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원망할 생각도 없다. 


이 책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고 있어 좋았고, 참고가 되었다. 이 책은 나이 든 부모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책은 아닌데, 그냥 좀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과 연결되어 이쪽으로 집중해서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물렁하고 갈등하던 내가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덧 │ 나이가 들어도 외국어를 공부하고, 원서로 쓰인 책을 읽는다는 것. 이건 정말 좋았다. 이 책 원래 한국 번역 제목이 『어머니는 병상에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다 했다』였는데, 나도 이 마음으로 앞으로도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 


아들러가 말하는 진화는 위가 아니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즉, 누군가와 비교하여 '위냐, 아래냐'라는 기준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현상을 바꾸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이죠. - 40쪽.

외국어 공부든 그 무엇이든, 위가 아니라 '앞으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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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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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판타지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인 소설


세상 궁금한 게 많고 실험 정신이 투철한 아오야마는, 자기만의 <관찰 노트>를 갖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다. 어느 날 등교를 하다 주택가 공터에 나타난 수십 마리 펭귄을 목격하게 된다. 학교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은 놀랐다. 사람들 의견은 분분했지만 동물원에서 탈출했으려나 짐작한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주택가에 나타난 펭귄은 분명 이상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펭귄을 연구, 관찰키로 결심한다. 그래서 프로젝트 하나를 수립하는데, 그 프로젝트의 이름이 <펭귄 하이웨이>. 바다에서 올라온 펭귄이 뒤뚱뒤뚱 걸으며 자기 서식지로 갈 때 어떤 길을 따라 걷는데 이 길 이름이 '펭귄 하이웨이'다. 





아오야마는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펭귄 하이웨이'그뿐만 아니라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여러 개였다. 친구 우치다와 마을 작은 수로의 수원을 찾는 '아마존 프로젝트', 어딘지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는 치과 누나를 관찰하는 프로젝트 등 동시에 진행하는 연구가 많았다. 


우치다와 아마존 프로젝트를 할 때 반에서 황제 노릇을 하는 스즈키와 그의 일행을 만나게 되고, 호되게 당한다. 우치다는 도망, 아오야마는 자판기에 묶긴 채 혼자 방치된다. 치과 누나가 아오야마를 풀어주고, 마침 아오야마의 흔들리는 이를 빼게 된다. 이가 생각대로 잘 안 빠지자, 누나는 아오야마의 흔들리는 이에 실을 묶고 아오야마의 시선과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콜라캔을 힘껏 하늘로 던진다. 그 순간 콜라캔이 펭귄으로 변한다. 마을에 나타나 한바탕 소란을 피웠던 펭귄은 바로 치과 누나가 '사물'로 만든 것이었다. 프로젝트 두 개(펭귄 하이웨이, 누나 연구)가 동시에 갱신됨. 


이런 일이 있었지만 마을의 일상과 아오야마의 일상은 별일 없이 무난히 흘러가고,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하마모토가 아오야마와 우치다를 데리고 자기만 아는 비밀의 장소, 숲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초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 초원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구(球)로 된 바다가 떠 있다. 그렇다, 진짜 바다다. 


아이들은 물로 된 구를 '바다'라고 부르며 '바다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하마모토의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바다는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가끔 프로미넌스라는 현상(프로미넌스는 태양 코로나에서 생기는 불기둥이다)을 나타낸다. 이 구로 된 '바다'가 '작은 바다'를 뱉어내는 것. 


너무나 신기하고 희한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니, 아오야마는 모든 프로젝트가 너무 어렵고,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때 아오야마의 아버지가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주신다. 


   "네 연구가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전에 한 말 기억하니?" 
   "문제란 무엇인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란 무엇인가." 
   "몰라요. 문제가 여럿 나타났어요. 모두 다 어려워요." 
   "그건 해결에 다가가고 있다는 징표일지도 몰라." 
   "왜요?" 
   "그 문제들은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지." 
 나는 노트를 꺼내서 '그건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반복해서 생각해봐야만 한다. 펭귄 하이웨이 연구와 '바다' 연구는 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 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잘 생각해볼게요."
   "매일 발견을 기록해둘 것. 그리고 그 발견을 복습해서 정리할 것."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마셨다. 
- 254쪽에서

아버지의 조언대로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로 잇고, 추론을 하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바다, 펭귄, 재버워크(펭귄을 잡아먹는 괴물), 누나, 흰긴수염고래, 모두 이어져 있다! 


소설은 바다의 크기를 조정하고 수선하던 펭귄이 재버워크에 잡아먹혀 줄어들자, 초원의 바다는 하염없이 커지게 되고 결국 마을과 마을 사람까지 위협하게 된다.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와 함께 펭귄 군단을 이끌고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 바다를 터트려 없앤 뒤 마을의 소동은 일단락된다. 그리고 아오야마가 좋아하던 치과 누나도 사라진다. 



한 소년의 성장담

많은 부분이 판타지적 설정이나, 주인공 아이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마을 숲에 초원과 바다가 나타났다가 없어진 일도, 펭귄과 괴물(재버워크)가 나타났던 일도 그냥 마을에 축제나 신기한 일이 한 번 벌어진 것과 비슷하다. 이벤트지만 다음날이면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크게 별일 아닌 일. 

하지만 이런 일들이 한 소년의 성장담이 되고 모험담이 된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몰랐던 소년은 자기 마음에 싹튼 감정을 깨달은 것이다. 헤어진 치과 누나와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무척 일찍 일어나서 이제 막 날이 밝은 거리를 홀로 탐험한다. 그럴 때, 우리 도시는 텅 비어 있어서 나는 당장이라도 세계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세계의 끝을 향해 매우 빠르게 달려갈 작정이다. 사람들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세계의 끝으로 통하는 길은 펭귄 하이웨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다시 한 번 누나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다. 나의 신념이다. 
  오늘 계산해봤더니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3000하고 748일이 남았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의 나보다 계속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면 내가 얼마만큼 훌륭해져 있을지 짐작도 안 간다. 나는 분명 밤이 되어도 졸리지 않는, 하얀 영구치를 갖춘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키도 클 거다. 근육도 충분히 붙어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전철을 타고 해변의 도시로 갈 것이다. 
  전철에서 나는 누나에게 여러 가지에 대해 얘기해줄 생각이다. 어떻게 펭귄 하이웨이를 달렸는지. 누나와 헤어진 후 내가 탐험한 장소와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눈으로 본 것들, 내가 스스로 생각한 모든 것들. 그래서 누나를 다시 만나는 그 순간까지 내가 어떻게 얼마만큼이나 어른이 됐나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얼마나 누나를 좋아했나 하는 것. 
  얼마만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나 하는 것. 
- 421쪽


우주를 담고 있는 소설


이 소설은 우주에 대해 꽤 많은 것이 나온다. 상대성이론, 블랙홀과 화이트홀, 접혀 있는 우주, 과거로 이동, 시간의 갈라짐 등. 우주 이론을 소설에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일처럼 자연스럽게 녹여 냈기 오히려 난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모르고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펭귄 하이웨이>를 보신 분들 중에서, 이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다룬 것인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많다. 


우주론은 뉴턴의 이론처럼 완벽하게 검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칙(ex. 가속도법칙)'이라 불리지 않고 '이론(ex. 상대성이론, 다중우주론)'으로 불린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직 '상대성법칙'이 아니라 '상대성이론'으로 불리는 것은, 그만큼 인류가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펭귄 하이웨이』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거창하거나 스케일 크게 풀어놓지 않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는 영미 작가들은 자기만의 우주를 구축하기 위해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펭귄 하이웨이』는 일상에 작가가 상상한 우주를 끌고 오기 때문에, 그래서 난해하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취향은 『펭귄 하이웨이』! 작은 마을에 외계인이 아무도 모르게 침공했다가 사라진  이시쿠로 마사카즈의 일상물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느낌도 들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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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해설 / 생각뿔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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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들은 각 시대마다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 같다.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 위기로 홍역을 치렀음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젊은이들. 그곳에서 자신과 맞는 부류, 혹은 좀 더 나은 형편의 사람을 만나고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그 사람들은 개츠비만큼 극적으로 많은 돈을 벌진 못해도, 스스로 인정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커리어를 쌓고 상식과 교양을 갖추며 중산층이 되어 간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는 스테디셀러를 넘어 고전에 들었다. '성공'에 대한 갈망이 있는 젊은이라면 마음 한 편에 개츠비가 있고, 그래서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위대한 개츠비』가 왜 인기 있는지 몰랐는데, 나이를 조금씩 먹으니 왜 이 책이 인기 있고, 왜 고전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어렸을 때 내가 '개츠비 같은' 꿈과 목표가 없어서 오랫동안 개츠비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유하고 매력적인 남자에게 반한 적이 없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내가 쟁취해 보여주겠다는 꿈도 꾼 적이 없고, 부를 선망해 본 적도 없으며, 성공에 대한 갈망도 크게 없었으니까(그래서 내가 개츠비처럼 극적이고 다채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그냥 밋밋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데이지의 연인이 되겠다는 열망 하나로 개츠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 그 결과 부유한 사람들도 놀랄 만큼 엄청난 부를 쌓는다. 하지만 그 부가 개츠비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오로지 데이지라는 초록색 불빛, 초록색 꿈이 있을 때만 그것이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개츠비는 미국식 물질만능주의와 부도덕성의 표본이지만 누구보다 순수했고 그래서 그의 죽음이 많이 쓸쓸했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 근데 그의 죽음이 쓸쓸해도 그의 인생까지 쓸쓸하고 가치 없었던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톰이나 데이지보다 의미 있게 살았다 보고, 톰과 데이지가 잠깐 위기를 모면했을 뿐이지만 그들의 삶이 개츠비의 인생만큼 역동적이고  기대에 의한 설렘과 행복이 있는 삶은 살지 못하리라 본다. 

어차피 인생은 어떤 삶을 택하든 그냥 자신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돈 쓸 때의 맛을 알아버려서 돈이 많으면 참 좋겠다 싶지만, 나는 개츠비처럼 순수하지 못해서 늘 안이한 선택을 하며,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고 있다. 내게 불만이 들 때면 개츠비의 순수함과 목표 지향적 삶이 부러워진다. 좀 속물적이면 어떠냐고. 개츠비는 법을 어기긴 했으나, 그 당시 법(ex. 금주법)이 좀 어처구니없는 면이 있었고 부귀를 쌓는 목적이 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물론 법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어렸을 땐 개츠비가 이해도 안 되고, '참 바보 같은 인간이다' 생각했는데 점점 그가 이해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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