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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새뮤얼 보울스 지음, 최정규 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경제학 분야는 보수적이라 몇백 년 전의 이론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학의 조상님, 애덤 스미스 옹이 말한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본인 이익만 추구하는 행위가 사회적 합리로 이어져 시민사회는 물론 국가까지 부유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c 이후 경제학에서 고전 경제학와 상반된 학문적 성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전제는 지금까지 경제학의 기본 전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간은 정말로 이기적인가? 나아가 경제적 합리성으로 똘똘 뭉친 존재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애덤 스미스부터 이기적인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합리나 실리를 따지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경제학은 학문이고 특히나 서양학문은 그리스 철학과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두루뭉술한 주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릇 학문이라면 기본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바탕으로 논리를 정밀하게 전개해야 한다. 그러니까 경제를 논하기 위해 '학문상 인간'으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경제학자들이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가정을 하고 경제 정책과 경제 법률을 제정하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가정했다면, 경제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인간은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새뮤얼 보울스의 『도덕경제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324/pimg_7766111932490189.jpg)
경제학은 지금까지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했기 때문에 '이기적 인간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이런 인센티브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역효과를 내는 건 아닐까?
이 책 초반에 재미난 예가 하나 나온다. 이스라엘의 몇 개 어린이집에서 실제 조사했던 결과다. 어린이집은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가 늦게 와도 원래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 시각보다 늦게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더니, 지각을 하는 부모가 더욱 많아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부모들은 벌금을 부과하자 왜 더 늦게 아이를 찾으러 왔을까.
벌금을 부과하기 전에는 부모들이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빨리 왔다. 하지만 벌금을 부과하자, 윤리적 의무감은 낮아지고, '지각'을 구매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려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없이, 미안함 없이 점점 더 지각을 많아 하게 된 것이다. 즉, 지각을 하지 않도록 벌금이라는 규제를 가했는데, 오히려 이 규제가 지각이 남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니까 새뮤얼 보울스는 인간에 대한 기본 가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다른 분야도 그렇고,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치를 잘 따지지도 않고, 계산도 잘 하지 않으며, 일관적이지도 않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덕을 부리고, 더 나은 선택보다는 '현상유지'에 급급하며 게으름 피울 때도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듯 보이는 경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시장, 신용시장, 지식시장 등이 계약의 불완전함 속에도 비교적 잘 작동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사회규범이나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긍정적인 노동윤리, 자신이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내용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 등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도덕 경제는 결코 형용 모순이 아니다.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75쪽
인간의 이기심 외에 다른 기저가 시장에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기저는 규범일 수 있고, 윤리나 의무, 책임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 활동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배반하는 사람은 왜 있을까?
경기자들이 배반하는 경우에도 그 주된 이유는 배반이 더 높은 보수를 준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경기자가 배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협력이 상대방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었기 때문이다.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85쪽
이 주장은 심리학과 뇌과학에서는 상당 부분 밝혀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경제가 사람을 만들어낸다.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191쪽
사람들은 사실 다 고만고만하게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면 어떤 경제 시스템에 사느냐에 따라 자식 양육 관행이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무엇을 선택하는지도 달라진단다. 예를 들어서 식량 저장이 보편화된 사회(정주형 경제 문화)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사회(이동형 경제 문화)의 부모들에 비해 아이의 독립성보다는 순종적 태도를 훨씬 더 강조한다고 한다(유교 문화를 생각해보면 무릎을 탁하니 칠 수 있음)
저자의 주장이 옳은 것도 같다. 지금까지 경제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가정했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이기적이지 않은 이타적 제도, 도의적 의무나 책임감을 강조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인간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뭇 궁금하다.
그런데 책에도 나와있듯이 이렇게 이타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경제 정책이나 법률을 만들기는 많이 까다로울 것이다. 사실 '인간이 이기적이다'라는 가정도 사회 제도에 수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저자는 '마키아벨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우공이산이라고, '인간은 이타적이다'라는 전제도 오랜 시간이 걸쳐 논의한다면 언젠가는 제도가 이타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인간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사회와 제도,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사회와 제도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 도덕경제학이 활발히 논의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