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7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엄성용 외 지음 / 마카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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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회가 닿아 2020년 단편 수상작품들을 읽어보았다. 두둥!!! 읽어본 제 소감은요~



풋풋하다고 해야 할까. 습작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느껴진다. 나는 오랫동안 세계문학작품집 등 작가들 대부분 저세상이 사람이 된 거장의 글을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시대 작가, 특히나 데뷔작이나 초기작들은 사실 습작 느낌이 다분하다. 설익고, 어디서 본 듯하고, 문장은 좀 장황한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이 책도 좀 그런 느낌. 그래도 세계적 거장도 다 이렇게 출발하고, 거장의 첫 작품이나 초기작들은 사실 읽기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나는 헤밍웨이의 초기작들 읽다가 책 던져버림 ㅋㅋ 또 마크 트웨인의 작품 역시 균질적으로 다 작품성이 좋은 것도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어쨌든 수상을 좋은 기회로 삼아, 앞으로 실력을 계속 꾸준히 갈고닦아 좋은 작품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다.




 이 작품집에는 총 다섯 편의 중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읽은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두 개 꼽으라면, 하나는 엄성용 작가의 「롸이 롸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반치음의 「구독하시겠습니까」이다.


개인적으로 반치음 작가의 「구독하시겠습니까」가 작품의 완성도나 문장, 캐릭터 등 모든 요소가 다 좋았다. 줄거리까지!!! 줄거리는, 여성이라면 좀 섬뜩할 수 있는 내용. 직장 동료 남성이 화자를 스토킹해서 몰카를 찍고, 이걸 마치 그 여성이 몰카 콘셉트로 찍은 vlog 영상처럼 편집해 유튜브에 올린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처음에 자신의 신체와 일상생활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줄 몰랐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찾아봤는데 완전 경악!!! 동영상 편집은 악의적이라 할 정도로 선정적이다. 가슴과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되도록 편집했고, 슬쩍슬쩍 노출도 있다. 주인공이 정말 억울했던 건, 자신이 찍은 영상이 아닌데도 아무도 주인공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일. 다들, 주인공에게 '관심충'이냐면서, 그만하면 됐다고 연기 좀 그만하라고 한다. 주인공은 다행히 마지막에 누가 자신을 도촬하고, 영상을 업로드했는지 그 범인을 찾아내지만 결말은 썩 비극(?!)적이다. 둘의 인생이 박살 나 버리니까. 어쨌든,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또 지금도 대한민국 하늘 아래 누군가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기기들이 발달해서 좋은 면도 있지만 이렇게 악용되는 현실이 뭐랄까 참담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다. ㅠㅠ 개인적으로 읽고 좀 무서웠다.


엄성용 작가의 「롸이 롸이」도 좋았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리듬이 느껴지는데, 이야기 중간중간 '롸이 롸이' 라고 나오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절로 리듬을 타며 막 인디언들의 춤을 막 추고 싶어진다. ㅋㅋ 암튼 일본 전래 요괴(?!)가 우리나라 강원도에 나타나 담배연기를 공물로 받고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고 있는데 외지인인 주인공은 이 요괴를 전국에 퍼트려 대한민국 미세먼지를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일본 요괴가 즉, 미세먼지 공기 청정기. ㅎㅎ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얼마나 심각하면 이런 소설이 다 나올까 싶다.



오랜만에 읽은 단편수상작품집. 풋풋함이 느껴져 좋았다. 이번에 당선된 작가들 모두 열심히 습작하고, 작품 활동 펼쳐서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내주시길 바란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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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새뮤얼 보울스 지음, 최정규 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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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분야는 보수적이라 몇백 년 전의 이론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학의 조상님, 애덤 스미스 옹이 말한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본인 이익만 추구하는 행위가 사회적 합리로 이어져 시민사회는 물론 국가까지 부유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c 이후 경제학에서 고전 경제학와 상반된 학문적 성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전제는 지금까지 경제학의 기본 전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간은 정말로 이기적인가? 나아가 경제적 합리성으로 똘똘 뭉친 존재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애덤 스미스부터 이기적인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합리나 실리를 따지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경제학은 학문이고 특히나 서양학문은 그리스 철학과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두루뭉술한 주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릇 학문이라면 기본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바탕으로 논리를 정밀하게 전개해야 한다. 그러니까 경제를 논하기 위해 '학문상 인간'으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경제학자들이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가정을 하고 경제 정책과 경제 법률을 제정하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가정했다면, 경제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인간은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새뮤얼 보울스의 『도덕경제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은 지금까지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했기 때문에 '이기적 인간 맞춤형 인센티브'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이런 인센티브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역효과를 내는 건 아닐까?


이 책 초반에 재미난 예가 하나 나온다. 이스라엘의 몇 개 어린이집에서 실제 조사했던 결과다. 어린이집은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가 늦게 와도 원래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 시각보다 늦게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더니, 지각을 하는 부모가 더욱 많아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부모들은 벌금을 부과하자 왜 더 늦게 아이를 찾으러 왔을까.


벌금을 부과하기 전에는 부모들이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빨리 왔다. 하지만 벌금을 부과하자, 윤리적 의무감은 낮아지고, '지각'을 구매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려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없이, 미안함 없이 점점 더 지각을 많아 하게 된 것이다. 즉, 지각을 하지 않도록 벌금이라는 규제를 가했는데, 오히려 이 규제가 지각이 남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니까 새뮤얼 보울스는 인간에 대한 기본 가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다른 분야도 그렇고,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치를 잘 따지지도 않고, 계산도 잘 하지 않으며, 일관적이지도 않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덕을 부리고, 더 나은 선택보다는 '현상유지'에 급급하며 게으름 피울 때도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듯 보이는 경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시장, 신용시장, 지식시장 등이 계약의 불완전함 속에도 비교적 잘 작동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사회규범이나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긍정적인 노동윤리, 자신이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내용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 등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도덕 경제는 결코 형용 모순이 아니다.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75쪽


인간의 이기심 외에 다른 기저가 시장에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기저는 규범일 수 있고, 윤리나 의무, 책임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 활동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배반하는 사람은 왜 있을까?


경기자들이 배반하는 경우에도 그 주된 이유는 배반이 더 높은 보수를 준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경기자가 배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협력이 상대방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었기 때문이다.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85쪽


이 주장은 심리학과 뇌과학에서는 상당 부분 밝혀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경제가 사람을 만들어낸다.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191쪽


사람들은 사실 다 고만고만하게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면 어떤 경제 시스템에 사느냐에 따라 자식 양육 관행이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무엇을 선택하는지도 달라진단다. 예를 들어서 식량 저장이 보편화된 사회(정주형 경제 문화)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사회(이동형 경제 문화)의 부모들에 비해 아이의 독립성보다는 순종적 태도를 훨씬 더 강조한다고 한다(유교 문화를 생각해보면 무릎을 탁하니 칠 수 있음)


저자의 주장이 옳은 것도 같다. 지금까지 경제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가정했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이기적이지 않은 이타적 제도, 도의적 의무나 책임감을 강조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인간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뭇 궁금하다.


그런데 책에도 나와있듯이 이렇게 이타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경제 정책이나 법률을 만들기는 많이 까다로울 것이다. 사실 '인간이 이기적이다'라는 가정도 사회 제도에 수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저자는 '마키아벨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우공이산이라고, '인간은 이타적이다'라는 전제도 오랜 시간이 걸쳐 논의한다면 언젠가는 제도가 이타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인간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사회와 제도,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사회와 제도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 도덕경제학이 활발히 논의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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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읽는 순간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푸른도서관 83
진희 지음 / 푸른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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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마음이 찌르르 해졌다. 이 책의 주인공 '영서'는 내가 아는 아이였다. 몇 가지 세부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여러모로 내가 아는 사람과 꼭 닮았다.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나의 영서'에게 그런 말과 행동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이 책에 나오는 '연아', '고모', '이모', '진교', '사서 선생님', '소란', '유리' 모두가 내가 그 친구에게 드러냈던 감정이다. 영서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또 영서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동시에 영서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감정들.


영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단순히 안타까워하고 영서를 응원하며 서평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가 경험해 본 일이기에 영서를 가볍게 동정할 수 없고, 영서 주위 사람을 힐난할 수 없다.


진심 어린 말 5개, 반성하고 생각을 다듬어서 하는 말 3개, 가시 돋친 말 하나, 그리고 둘. 서로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 진심을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 이건 직감으로 아는 것이다. 특히 영서와 같은 사정에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사정을 가진 아이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특히나 강렬히 느낀다. 이런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다가, 싸늘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관계는 서로를 예민하게 만든다.




졸업이 몇 달 남지 않은 중학교 3학년 영서. 영서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영서 엄마는 영서와 곰팡내 나는 쇠락한 모텔을 전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살아졌다. 영서 엄마는 힘들게 사는 자기 여동생보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만큼 경제수준이 되는 고모네 주소를 남겼다.


남동생이랑 인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았던 고모는 영서를 오래 맡을 수 없다. 영서 엄마에게 연락이 안 되니, 그 여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영서의 이모는 영서에게 고모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어쨌든 영서 고모네에 가서 영서를 데려온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다. 영서를 데리러 간 날, 비를 맞았고 영서 이모는 감기에 걸렸다. 영서의 권유에 직장을 하루 더 쉬었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당장 반지하 원룸 월세를 내는 것도 아득하다.


그래도 힘내어 영서를 돌보려고 하지만, 이모 남편은 영서는 놔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잖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도 안타깝지만 남편의 제의가 마음을 홀가분하게 한다. 그래서 이모와 그 남편은 영서만 남겨두고 떠난다. 원룸 월세는 부쳐주겠다는 말을 하고. (하지만 월세를 부쳐주지 않는다)


다시 영서는 엄마와 함께 살았던 '파라다이스'라는 허름한 모텔로 돌아간다. 겉으로는 냉냉하지만 속은 따뜻한 모텔 주인 할머니가 영서가 안타까워 다시 받아준 것이다. 모텔 비용은 받지 않고. (하지만 샴푸 같은 건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서는 '진교'라는 남학생을 알게 되고, 또 도서관 사서 선생님도 알게 된다. 그리고 끝은 좋지 않았지만 '소란'이라는 같은 반 학생과 짧게나마 행복한 시간을 지낸다.


모두 영서를 안타까워하고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한다. 그게 본인에게 '삶의 무게' 혹은 '삶의 짐'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도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남들보다 일찍 독립해야 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일어났던 사고는 등굣길에 탄 버스 라디오에도 나와서 전교생이 그날 아침 그 친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았다. 이전부터 워낙 활발하고 웃는 게 정감 있고 예쁜 친구여서 사고 이후에도 구김살 없이 사람들 만나고, 친구들을 사귀고 했지만 『너를 읽는 순간』의 영서처럼 언제나 타인과 한 발 물러서 있는 게 느껴진다. 스스럼없는 친구였지만, 스스럼없을 수 없는 상황... 그 친구에게 사고가 일어난 후 그 친구와 내가 친해졌는데 순수하게 친구된 마음으로 다가갔던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다가갔던 것인지 모르겠다. 여러 감정이 혼재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와서 자주 잤고, 나 역시 그 친구가 머물던 고시원에 몰래 들어가 같이 놀고는 했었는데 지금도 그 고시원 방이 생각난다. 고시원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일절 소음을 내지 않고 신발을 벗고 복도를 걷고 방으로 들어갔던 기억. 소곤소곤거리며 웃고 이야기하던 그 순간들.


『너를 읽는 순간』 마지막 부분은 안타깝다. 영서가 머물던 모텔에 불이 나고, 영서를 알던 사람들이 놀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그럼에도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희망을 남겨놓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영서는 구출되고, 영서 고모부가 다시 영서를 데리고 와 사는 것으로 나도 상상하고 싶다. 해피엔딩. 물론, 인생이 지속되는 한 '엔딩'은 있을 수 없다. 영서가 뛰어넘어야 할, 그리고 감내해야 할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영서의 삶이기도 하고, 영서 주변인의 삶이기도 하고,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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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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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해안 마을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쳤다. 마을 사람들 모두 죽고, 그 마을 언덕 꼭대기에 살던 파타와 마디 부부 가족들만 살아남았다. 집안의 가장인 파타는, 여느 쓰나미가 그렇듯 머지않아 물이 빠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바닷물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위가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 마디는 직감적으로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타는 마디에게 고집을 부렸다. 곧 물이 빠질 거라고. 가장으로서 체면을 구기기 싫은 아집, 고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 이후 바다 수위는 시나브로 계속 높아졌고,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러운 폭풍우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고집을 부리던 파타도 더 이상 집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배 한 척이 있다. 배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총 8명. 하지만 파타의 식구는 총 11명이다. 3명이 인원 초과된다.


파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무리하더라도 가족 모두를 배에 다 태울 것인가, 아니면 가족 중 3명을 골라 집에 남기고 떠날 것인가.




파타에게는 총 9명의 자식이 있다. 리암, 마테오, 루이, 페린, 노에, 에밀리, 시도니, 로테, 마리옹. 파타와 마디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농담 반으로 했던 가족계획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고 낳다가 보니 자식이 9명이 되었던 것이다. 9명의 자식을 키우기에 경제적으로 빠듯했지만 근면 성실하고, 알뜰했던 파타와 마디는 부족한 것이 9명의 자식을 모두 키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몰려온 쓰나미 때문에 집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파타와 마디는 잔인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떠났더라면 여유 있게 자식 모두를 다 데리고 떠날 수 있었을까. 파타의 고집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해졌기 때문에 세 명의 자식은 집에 놔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인 마다는 집에 놔두고 갈, 아니 '버리고 갈' 자식을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파타가 집에 놔두고 갈 자식을 '정했다'. 누구일까. 바로 몸이 성치 않은 3명의 아이, 루이 / 페린 / 노에였다.


루이는 절뚝거리며 걷는 절름발이였다. 페린은 어렸을 적 둘째 오빠인 마테오가 눈을 찔러서 한쪽 눈을 실명했다. 노에는 선천적으로 너무나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파타는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세 명의 자식을 집에 놔두고 밤 사이 도둑처럼 가족 모두와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엄마 마디는 괴로웠지만 또 다른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배를 타고 떠난다.


이후 수몰되어 가고 있는 3명의 아이와 배를 타고 떠난 파타와 마디 그리고 여섯 명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섬에 남은 아이들은,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다. 이런 과정에서 루이는 자신과 동생들을 죽이고 집안의 먹을거리를 강탈해 갈지도 모를 악당을 살해하기도 하지만, 배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난 할머니 두 분을 구하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한쪽 눈마저 다친 페린의 눈을 치료해 주시고,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은 물론이고 편찮은 당신이 먹고 고통을 잠재울 아스피린의 마지막 한 알까지 페린에게 주셨다)


이에 반해 성한 몸의 아이들만 골라 데리고 떠난 파타와 마디. 그들은 두 명의 자식을 잃는다. 우량아로 태어난 로테는 폭풍우 속에서 바닷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둘째 마테오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바닷속 괴물과 싸우다 육신이 찢어져 죽어버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지대에 닿는다. 새로운 삶의 시작. 그러나 아이들의 엄마, 마디의 마음은 수몰되어 가는 집에 남겨진 아이들 생각뿐이다. 이웃집 배를 몰래 훔쳐 혼자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상드린 콜레트의 작품 『파도가 지나간 후』. 전체적으로 뚜렷하지는 않지만 권선징악의 구조가 살짝 엿보인다. 재해 속에서 타인을 해치고 본인 혼자 살려고 했던 사람들의 운명은 좋지 않다. 끔찍한 재해 속에서, 본인 살기도 힘듦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고난을 뛰어넘어 기대해 볼 수 있는 '내일'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몸이 성치 않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파타와 마디에게 '로테'를 잃는 크나큰 고통이 주어지고, 동생의 눈을 실명케 한 마테오는 짓궂은 오빠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가족을 위해 괴물에게로 뛰어드는 죽음을 선택한다.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빼앗고 죽이려 한 아데스는 오히려 그가 죽음으로 몰렸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집에서 생을 마감하려 한 할머니는, 모두가 이 할머니를 살리고 싶어 한다.


────

파도, 즉 '고난'이 닥친 후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혼자 살려고 할 것이냐, 양보하거나 함께 살려고 할 것이냐. 저자 상드린 콜레트는 '함께 살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살려고 바둥거리면 죽거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고, 다른 이와 함께 살려고 노력하면 기어코 살 수 있고 만약 죽더라도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나에게도 이런 파도가 몰아닥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혼자 사는 삶? 아니면 함께 살아남는 삶?! 평온한 지금 머리로는 선택할 수 있어도, 막상 이런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내 마음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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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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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일상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좋은 지인들이 있어서 불안하지 않고 평온하고 차분하다. 물론 때때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지만, 내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이거나 받아들여야 하는 내 마음의 문제들이다.


발견하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다.


마쓰우라 야타로, 『일상의 악센트』, 28쪽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깨닫는 것들이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사소하지만 이전에는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것들이 가끔은 낯설게 내게 다가오고, 새로운 의미로 해석된다. 이럴 때 즐겁다. 이 발견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면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기쁘고 삶이 새삼 풍요롭게 느껴진다. 일상의 놀라움, 기쁨, 풍요로움이다.




이 책은 일본 셀렉트 서점의 선구자이자 수필가인 마쓰우라 야타로의 수필집이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일화보다는 저자의 감상과 생각을 쓴 수필로 부드럽고 고요한 느낌의 책이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여행에 관해 쓴 부분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잘 이어가지 못한다. 물론 기분에 따라서는 쉽게 잘 어울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나와는 달랐다. 여행을 떠나서 어떤 숙소에 묵으면,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위를 조깅한다고 한다. 조깅하면서 아침 식사를 파는 가게를 확인하고 가게 주인과 안면을 트고, 점 찍어둔 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현지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단골 가게를 만든다.


그날 아침으로, 저자에겐 낯선 여행지가 더 이상 낯설고 세상 홀로인 곳이 아니게 된다. 아는 사람이 있고, 단골 가게가 있는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일상이 부드럽게 연장된다.


나는 한 번도 이래 봤던 적이 없어서 그 느낌이 어떨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음이 안정적이면서도 설레고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삶의 활력, 능동성도 느껴질 것 같고. 저자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룰 대로 자신의 취향대로 잘 사는 것 같았다.


요즘 들어 일상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나 역시도, 이렇게 생각하고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상이 소중하다면, 내가 어느 곳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능동적이고 편안하게 하루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발견하기, 감동하기, 편안하기, 차분하기, 즐겁기, 기쁘기, 설레기, 미소 짓기 그리고 '함께하기'


일상은 단조로울 수도 있고, 풍요로울 수도 있다.

모두 각자 마음먹기에 따른 문제.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시선의 문제.


일상이 소중하다고 깨달았으면, 이제 매일 뭐든 못할까... 다 할 수 있다. 저자처럼 낯선 여행지에서 안면을 트고 단골 가게를 만드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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