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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 이명옥 관장과 함께하는 창의적 미술 읽기
이명옥 지음 / 시공아트 / 2013년 11월
평점 :
저는 어려서 미술학원도 다니지 않고 학교에서 배우는 미술이 전부였어요. 그러다보니 미술은 저와 멀어져만 갔고, 성장해서도 미술관에 갈 일이 없더라구요.
그런 제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변하였어요. 아이 때는 누구나 그림을 좋아하듯이 저희 아이가 어느 날은 하루 중 상당 시간을 그림그리기, 종이접기로 보내는 것을 보며 다양한 미술을 접해주고 싶었어요. 커서도 마음 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동심을 그대로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답니다.
그런 의도로 고사리 손 같은 아이 손을 잡고 유명한 화가 전시회가 열릴 때면 미술관을 찾아다니기 시작한지도 벌써 몇해네요.
유아 때는 엄마가 이끄는대로 보기도 했다가 내키지 않으면 30분 만에 미술관을 휘리릭 훑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너무 무리해서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다가도 작품 하나라도 기억하고 얘기하는 게 신기해서 또 가곤 했습니다.
이제 초등1학년. 생활이 바쁘기도 하고 평일에 여유가 없다보니 그나마 뜸해졌어요. 얼마전 고흐전도 막바지게 가서 사람에 쫓기듯이 보게 되었어요. 그 날은 오디오 가이드까지 대여해서 시도해보았는데, 아이가 듣기는 꽤나 서론이 길더군요. 엄마가 듣고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는 건 그래도 잘 듣긴 했는데, 엄마도 배경지식이 없다보니 가이드 듣고 전해주고 하는 시간이 꽤 걸려서 안타깝더라구요. 다행히 도록을 챙겨와서 다시 차근차근 보면서 전시회 때 보았던 작품을 떠올리며 감상하니 더 와 닿았습니다.
엄마가 먼저 미술 감상법을 배우면 전시회를 가더라도 콕콕 포인트를 짚어서 재미나게 볼 수 있을 텐데 싶었지요.
그러던 차에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은 엄마도 그동안 보아왔던 명화들을 다른 시각으로 감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작가는 교과서 속의 명화들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키워드 감상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 수록된 상당 수의 명화들은 눈으로는 익숙한 작품들이 있지만, 왜 명화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그냥 명화라고 하니까 좋다. 이 정도 느낌으로만 보기에는 작가의 의도, 그림이 그려진 배경까지 알 수는 없기에 그림에 대한 겉핥기가 된 것이지요.
1장에서는 서명, 손가락, 발, 입 모양, 그림자 등과 같이 너무 평범에서 주의해서 보지 않았던 키워드들에 주목합니다.
'입 양이 전하는 두려움과 슬픔’ 편에서 뭉크의 <절규>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데요. 인간의 격렬한 감정을 입을 빌려 표현하고 있어요. 뭉크는 색채를 강조하거나 형태를 왜곡하는 기법으로 공포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시작해서 작품 전체로 눈을 이동하니 절규가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2장에서는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작품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키워드들, 즉 소리, 음악, 움직임, 속도감, 리듬, 크기, 생각을 통해 미술을 이야기합니다.
‘그림에서 들려오는 소리’ 편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덩>을 감상하면 공감각을 이해하게 됩니다. 호크니는 수영장에서 다이빙할 때 들리는 '풍덩' 소리를 그림에 표현했거든요. 귀로 듣는 '풍덩' 소리를 색채를 통해 파란색 물가 다이빙 보드의 노란색의 선명함으로 더 강렬합니다. 수영장의 수면에서는 물보라가 일고 있지만 정작 다이빙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요. 만일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 그려졌다면 관객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상상의 귀로 ‘풍덩’ 소리를 듣는 데 방해를 받기에 관객의 모든 감각이 ‘풍덩’ 소리에만 집중하도록 사람을 그리지 않은 것이랍니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색채, 구도에 맞춰 바라보니 작가의 의도가 전해져 감탄하게 됩니다.
그냥 봤을 때에는 제목과 그림으로 매칭해서 다이빙하는 그림이구나. 사람이 이미 물에 들어갔나보네 정도로 이해하고 말 그림을 키워드별로 분석을 하면서 바라보니 작가의 치밀한 계획에 맞춰 그려진 작품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3장에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키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상을 현실화한 작품, 새나 벌레의 시점으로 그린 그림, 거울을 이용한 작품, 제작 당시인 17세기 유럽의 지정학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한때 기도서 역할을 했던 최초의 명화 달력, 작품만큼 중요한 액자, 때로는 중매쟁이가, 때로는 고도의 정치 선전물이 된 초상화 등이 소개됩니다.
'상상하는 대로 현실이 되다’ 편에서는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들과 세계적인 건축가 그룹 MVRDV가 설계한 ‘공중 부양’ 아파트인 보조코(WoZoCo)가 소개됩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던 마그리트는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현상을 그림에 담았어요. 가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이 사람도 거대한 성도 하늘에 둥둥 떠 있고, 거대한 사과와 평범한 사물을 새롭게 부각하는 것과 같이 상상력을 길러 주는 도구로 크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피레네 산맥의 성채>에서는 거대한 성채와 육중한 바위가 바다 위의 허공에 떠 있으며, <아르곤의 전투>에서는 무거운 바위와 가벼운 구름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 모순되는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작동시킵니다. 이러한 전략은 영화 <아바타>와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반영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작가의 상상력을 시대를 뛰어 넘어 다양한 문화로 확대되어 감동이 배가 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와 같이 21세기 모든 분야의 화두로 등장한 ‘창의성 개발’에 일찍이 주목하고, 미술과 다른 분야를 융합하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어요. 이전에 예술로 만나는 수학, 과학, 경제 이야기로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명화 경제 토크>를 저술한 것을 보며 한권 한권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이 책 역시 미술을 통한 창의성 개발을 위해 ‘키워드’로 읽는 색다른 미술 감상법을 제안했으며, 너무나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가서 미술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저도 푸욱 빠져 보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명화를 작가가 알려주는 방법대로 키워드에 따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 속 이야기가 들려와서 신기했습니다.
그림 읽기도 배워야 하는게 맞구나. 이제야 제대로 그림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그동안 어려서부터 접했던 미술 교과 학습이 저에게는 아무 감흥 없이 그냥 공부에서 끝나고 말았단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제 미술을 처음 접하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그림 감상법을 하나 하나 알려줄 수 있겠어요.
이 책은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은 누구나 읽으면 좋을 책이며, 특히나 아이와 함께 미술관을 찾는 부모라면 꼭 읽고 키워드 감상법으로 진정한 명화 감상을 누리실 수 있겠습니다.
작년에 르네 마그리트 체험전이 있어 아이와 같이 갔었는데 현실에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상상력이 가득한 체험이었지만 이와 같이 작품을 하나하나 작가의 의도에 맞춰 감상하지는 못했어요. 기발한 작가구나 감탄사만 연발하다 왔지요.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을 접하고 체험전을 갔다면 아이에게 더 재미나게 작품을 설명해주고 즐기고 왔겠지요. 아는만큼 보인다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을 읽고 있자니 그동안 보아왔던 명화들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감동이 아이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앞으로 전시회를 보러 가기 전에 어느 키워드에 맞춰 감상해야 할지를 먼저 파악하고 가야겠어요. 앞으로 보게 될 전시회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