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기 좋은 날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6
허은순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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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기 좋은 날>> 책을 접한 날부터 이 책을 주현이와 어떻게 읽을지 나름 고민을 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거부하고 엄마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항상 말해 온 딸아이.

이야기 속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살짝 걱정부터 되었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죽음 뒤에도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님을 자연스레 인식하게 해 주고팠다.


책이 오자마자 궁금해서 쭈욱 훑어보는 주현이.

요즘 책 읽기를 하면서 작가의 글을 먼저 챙겨 읽고 있는지라 보더니,

"소풍? 죽음이 소풍이야?" 하더니 바로 덮어버린다.^^;

이 때만 해도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고 마주한 책.

읽을 준비가 되었는지 잠자리 동화로 선택해서 읽겠단다.

그림이 많지는 않지만 엄마가 아프기 전후의 얼굴을 꼼꼼히 비교해가며 그림읽기를 해 나갔다.

엄마도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감정을 조절하며 읽어내려갔다.

내가 먼저 읽어주면서 울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괜히 엄마 감정 때문에 아이가 더 슬퍼질까 싶어서 말이다.

 

소풍 가기 좋은 날 공원 나들이를 한 가족.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한적하고 햇볕드는 곳에 자리를 펴 주는 아빠와 지영이를 지켜보는 엄마 옆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지영이. 집에 가자고 해도 더 놀고 싶은 마음에 미미 머리핀을 찾아야한다고 떼를 쓰는 지영이.

그런 지영이를 내비두고 자리를 걷어 먼저 훌쩍 가 버리는 엄마, 아빠를 따라가다 뒤쳐지던 지영이는 낯선 아저씨의 도움에 무서워하며 엄마에게 와락 안긴다.

"돌아갈 집이 있으니 소풍이 즐거운 거지. 해가 지면 집으로 가야지..." 엄마의 알쏭달쏭한 말을 들으며,

지영이는 '소풍은 소풍이니까 재미있는 거야.' 나름 생각을 정리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이 멈추고 조용해지는 경험을 한다.

"사람들이 막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는 건 천사가 지나가느라 그런 거래." 라는 가은이의 말에 여자아이들은 천사가 어디로 지나갔나 두리번거린다.

이렇게 서두에 소풍에 대한 엄마의 말과 천사가 지나가는 순간과 같은 이야기가 복선으로 나온다.

아직 주현이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꾸만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니 말이다.


그 날 이후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엄마.

괜찮다고 하던 엄마는 학교 갔다 오니 병원에 가 있고, 금방 온다는 엄마는 오지 않고.

아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읽던 엄마는 울컥한 부분이 나온다. 어떡하지, 애써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읽는다.

아직 주현이는 감을 잡지 못한 듯, 말똥말똥하다.


병원에서 마주한 엄마는 소풍 가기 전 엄마와는 너무나 달랐다.

지영이도 애써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듯 밝게 엄마를 대한다. 그 모습이 더 짠하게 와 닿는다.

언제 오냐는 지영의 재촉에 엄마는 금방.. 금방 하다 만류하는 아빠를 뒤로 하고 내일 집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엄마가 돌아오니 집 안에 해가 든 것처럼 모든 것이 반짝였다.

집은 탱탱한 기운이 넘폈다.

엄마가 곱게 빗어 준 머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차려 준 밥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불렀다.

...

지영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읽어 내려가노라니,

엄마란 아이에게 이런 존재구나 새삼 와 닿는다.

나에게 엄마도 이런 존재였지. 어릴 때 방과 후에 가끔 몸살로 앓아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가 지금도 내 옆에 있어 주셔서 감사하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밀린 일을 다 해치우려는 듯, 집안 곳곳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그런 엄마가 측은한 엄마의 엄마, 할머니는 말은 곱게 안하지만 그 속 마음이 얼마나 애탈까 싶게 내 가슴을 후빈다.

할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꾸만 울컥한다.

할머니, 엄마, 지영이는 엄마의 부추김에 같이 미장원에 가서 머리모양도 새로 하고, 그날 밤 같이 잠이 든다.

할머니와 엄마의 알 수 없는 말이 오고간다.


내 딸이 아프다는데 그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 딸은 또 딸 걱정에 아픈 내색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싶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뜨겁다.

천둥 치던 그날 밤 눈을 뜨니 엄마는 구급차에 실려간다. 불길한 예감으로 지영이는 심장이 빠르게 뛰고 등줄기가 후끈거림을 느낀다.

아이의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짠하다.


아빠는 지영이를 공원으로 데리고 간다. 지난번 소풍 갔던 그 장소다. 지영이는 소풍을 오지 않았다면 엄마가 아프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한다.

엄마가 암에 걸려 오래 같이 있지 못함을 알려주는 아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영이에게 아빠는 같이 있지 않아도 한 가족임을, 단지 오래 같이 있을 수 없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알려준다.

엄마 앞에서 울면 엄마가 힘들어하니 울지 않기로 새끼 손가락 걸고 엄마를 찾아간 지영이의 눈물을 참는 모습은 어찌나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던지 난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코맹맹이 소리로 읽어주고 있었다. 어느새 주현이도 훌쩍 거린다.


그렇게 엄마는 떠나간다.

지영이에게 오래 함께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뒤로 하고.

소풍가서 지영이가 찍어준 엄마의 환한 얼굴이 영정사진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담담히 받아 들이는 지영이.

죽음으로 인해 앞으로 달라질 일들을 어느새 알아버린 지영이가 너무나 안쓰럽다.

마지막 관을 묻을 때까지 아빠와의 약속을 꿋꿋이 지키려 애쓰던 지영이는 엄마에게 미미를 보내주며 이제 엄마가 안 보니 괜찮겠지 하며 참았던 눈물을 아빠 품에 쏟아낸다.


영혼이 소풍 끝나서 하늘나라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소풍도 좋지만 집이 더 좋다고 했으니까.

'집이 있어서 소풍이 더 좋은 거야.' 엄마의 목소리 같이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렇게 얘기했을 거다.

"오늘은 정말 소풍 가기 좋은 날이에요오!"


이 책을 덮고 주현이도 나도 울음 바다가 되어버렸다.

서로 끌어안고 주현이와 동갑내기 여덟살 지영이의 슬픔을 위로해주듯이.

엄마가 소풍을 마치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듯이.

두어시간에 걸쳐 읽어 내려간 이야기.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모녀는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책을 다 읽고는 너무 슬퍼해서 더 이상 지영와 엄마 이야기를 꺼내 주현이의 마음 읽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렇게 그 날은 슬픔을 다독여줄 수 밖에...


힘들게 잠든 딸아이를 토닥이며 나를 들여보다 보았다.

아직 어린 딸을 남겨두고 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암의 고통보다 더했으리라.

젊은 딸을 먼저 보내는 할머니의 마음 또한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게다. 자식을 앞세우고 사는 건 사는게 아닐테니.

이 책을 읽는 내내 40여년을 항상 옆에 있는 나의 엄마가 계속 아른거렸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자리, 연세가 드시고 한번씩 심하게 아프실 때마다 불현듯 드는 불길함도 인정하기 싫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하던 나다. 어쩌면 나조차도 제일 가까운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아직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나보다.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해, 그리고 언젠간 소풍 마치고 갈 엄마와 좀 더 즐거운 소풍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날도 선선해지고 조만간 엄마 모시고 단풍구경부터 가 보련다.

엄마도 환하게 웃으시겠지!


다음 날 오전까지 진정이 안된 주현이에게 책 내용을 다시 들춰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담담해진 것인지 저녁 때가 되니 독후일기를 쓰겠다며 책 표지를 다시 살펴본다.

소풍 갔다 와서 암에 걸린 거 아니지?

왜 갑자기 암에 걸린거야?

암에 걸리면 다 죽는 거야?

...

아직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묻는다.

소풍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지영이를 위로하는 편지글로 독후일기를 써 내려갔다.

주현이의 따스한 위로가 힘이 되기를...

 

주현이랑은 가끔 다음 생에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둘이 약속한 건 지금과 반대로 태어나는 거.

주현이는 엄마로, 엄마는 주현이 딸로 말이다. 왜냐고 물으니, 엄마처럼 나한테 해 주고 싶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감정을 추스린 후 넌저시 다시 물어보았다.

엄마 : 소풍 마치고 엄마가 먼저 가서 기다릴까?

주현 : 아니! 우린 다시 엄마, 딸로 만나기로 했잖아.

엄마 : 그래, 우리 또 소풍 오자!

 

주현이가 좀더 커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다시 찬찬히 읽어가며 생각을 나누고 싶은 책이다.

죽음이 무조건 슬프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님을.

지금 이 생이 왜 소풍인지를, 그래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어른인 엄마가 아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눈물범벅이 된 것은 처음이다.

단순히 죽음이 슬퍼서가 아닌, 여덟살 지영이의 삶에 닥친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어른스럽고 대견했다.

매 순간 죽음을 걱정하고 살 필요는 없겠지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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