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고 있지 못하다. 혐오표현에 관한 범국가적 차원의 조치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유력 인사들이 혐오표현을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하품이 옮는 것처럼 강인함도 옮는다. 지지 않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 그 런 태도가 해바라기의 튼튼한 줄기처럼 옮겨 심겼다.
서로 하고싶은 말을 제약받는 정도가 커질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강자다. 서로할 말을 못 하는 상황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나쁘지 않다. 반면 소수자의 입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소수자에게는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