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시간이 약‘ 이어서가 아니다. 그 시간에 삶도 자아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없었던 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회복(回復)‘은 불가능하지만 고통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일 수도 있고, 헤어진 이들과 평화롭게 다시 만날 수도 있다.
모든 건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희망은 삶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을 집약한다. 미래 지향, 긍정, 바람………. 사람들은 이 말을 편애한다. 희망이 있어야만 살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표현 그대로 생각하면 절망이 희망적이다. 절망은 바라는 것을 끊은 상태, 희망은 뭔가 바라는 상태.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나는 평화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도 믿지 않는다.평화?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평화는 인간의 심장이 꺼질 때에야 찾아온다.
노년 담론 중 흔히 회자되는 논리가 곱게 늙기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나이듦은 ‘곱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곱게 늙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