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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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현실에 갇혀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잠시 숨 쉴 수 있는 탈출구가 간절하다. 하지만 사방이 꽉 막혀 암울할 때는 바늘 틈 같은 숨구멍도 찾기가 어렵다. 한 줄기의 바람,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 쓰다듬기를 허락하는 작은 햄스터의 털, 아니면 달콤한 크림빵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숨을 고르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명성있는 <위저드 베이커리>를 이제야 나도 읽었다. 청소년 권장도서이므로 아이에게는 일찌기 권해 읽혔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어른인 나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 얼쩡거린 이 책을 이제야 읽고보니 못만나고 지나쳤으면 아쉬웠을 것 같다. 어른들도 자주 마법이 필요한 순간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불행한 결혼생활로 끝내 아들을 버리고 결국에는 자살을 선택한 엄마와 아들의 이 아픔을 방관하는 아버지, 소년의 이 상처를 헤아리기 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딸을 방어하느라 가시가 돋은 새엄마, 그저 나약할 뿐인 어린 배다른 여동생. 그들 사이에서 공감받지 못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소년은 집에서 도망나와 빵집으로 피신한다.



끼니를 빵으로 때워 온 시간 덕에 베이커리의 단골로서 소년은 베이커리 주인의 도움으로 몸을 숨기고 그곳에 머물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그곳에서 밤이면 파랑새로 변하는 여조수와 신비한 마법의 효능을 지닌 빵과 쿠키를 굽고 파는 마법사 파티쉐 옆에서 몸을 숨긴다.



하지만 모든 마법이 행복이라는 귀결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마법 쿠키와 빵으로 행복에 닿은 이들은 위저드베이커리에 다시 AS를 요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사연을 모른다. 하지만 선택한 마법으로 인해 오히려 이그러진 삶을 살게되어 베이커리에 찾아와 항의하는 이들을 소년은 목격하게 된다. 마법의 빵을 먹고 한 사람만 바라보던 사람은 스토커가 돼 상대를 죽일정도로 압박할 지경에 이르고, 누군가를 잠시 골탕먹이려던 장난은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주고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어떤 선택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며 우리 모두는 이 선택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명제를 보여준다.



그래도 소년을 거두고 보살핀 마법사와 조수 덕분에 소년은 세상에서 믿음을 찾고 문제를 피하지 않고 문제를 바로 보고 정면승부할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더이상 숨지말고 문제에 뛰어들어 해결하라 떠미는 세상은 괜찮은가. 정말 이것이 안전한 화해고 해피엔딩일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정상가족의 신화를 따르며 화해를 위해 찾아간 부모가 오히려 자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황을 뉴스를 통해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부모를 벗어나 영영 떠나사는 게 혹시 더 나은 선택은 아닐까. 하지만 이들을 책임지고 나은 삶을 살도록 이끌어줄 공공안전 보호망은 갖춰져있나.



시간을 돌리는 마법 머랭이 작동한 미래에서는 새엄마와 파렴치한이 될 아버지의 만남 전으로 돌아가 그 둘이 부부가 되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는 결국 새엄마와 결혼하지 않고도 파렴치한 짓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말지만 최소한 새엄마와 여동생의 피해는 막았다.



하지만 소년은 더 과거로 돌아가 친엄마를 살릴 수는 없었을까. 머랭을 먹고 엄마가 아빠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엄마는 그런 남자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며 행복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경우에 소년은 아예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수 있겠지만. 하지만 아빠가 엄마가 아닌 제 2의, 제3의 피해자를 만들 가능성을 방관하는 것은 괜찮은가. 세상에 범죄자는 아빠 한 명이 아닌데 그럼 대체 언제로 다시 돌아가 리셋해야 가능한 한 다수가 행복할 수 있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마법을 실행했지만 결국 살아난 부랑자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돼 상처만 안은 마법사의 기억도 아프다.



책에는 마법 리와인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Y의 경우와 실패한 N의 경우 2가지 케이스가 게임처럼 제시된다. Y의 경우 즉, 과거를 뒤바꾼 경우 소년은 아픈 만남을 비껴가고 과거의 인연을 만났을 때 어렴풋이 미묘한 기분만 느끼고 기억을 못한 채 지나간다. 하지만 N의 경우, 과거를 되돌리지 못해 그냥 힘들지만 현재를 살아내다 위저드베이커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에 다시 마법의 세계를 조우할 가능성으로 기대감을 준다.



내가 이 둘의 경우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다면 기억을 돌리는 머랭을 먹고 원하지 않는 과거를 앞질러 다시 살 것 같다. 사실 지우고 싶은 아픈 과거를 안고도 그걸 견디고 이겨내며 꿋꿋이 살아내는 게 삶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이 마법의 효과를 누리는 달콤한 상상을 책에서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첫 출간된 14년 전 책에서 묘사된 나쁜 파렴치한인 소년의 아버지 같은 혐오스러운 인간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아동성범죄를 포함 기본 성범죄에 대한 처벌수위 역시 타국가에 비교해 현저히 낮고 술 마셔서 심신미약이라고 초범이라고 유망 분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등등 여러 이유를 들어 성범죄자에 관대하다. 이에 대한 법 형량 강화 의지를 왜 보이지 않는지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청소년권장도서로 굳이 분류한다면 이런 범죄를 허용케하는 사회악을 줄이기 위한 정책의 허술함을 알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위치의 어떤 직업을 찾을 것을 권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무심하게 눈돌리지 말고 항상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데 동참할 것을 권하는 메시지로도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동시에 이런 가족과 사회 문제 등에 세심한 관심을 갖고 정책 개선에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읽고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공무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기본적인 정서가 작가 자신도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한줄기 기대를 갖고 버티려는 소년을 위로하는 마음이 전달됐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욕망을 투영시킨 마법쿠키로 사람을 살리고 달래고 세상의 균형을 가져오려 애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마법사에 소설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도 같았다. 15년전 첫 책을 낼 때와 달리 지금은 흥행작가가 되었으니 작가가 좀더 여유로운 마음, 세상과 화해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 인근에 베이커리가 다시 나타났다는 얘기에 반갑고 기쁜 마음에 달려가는 소년처럼 독자들은 작가의 신작 소식을 기대하며 달려갈 것 같다. 



살면서 도망가고 싶은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때로 도무지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없을 수 없다. 삶에 지친 모두가 이런 위저드베이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위로하고 한숨 돌리게 만드는 어떤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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