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리커버 에디션)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일찌기 <빌브라이슨의 미국산책>, <빌브라이슨의 미국학>을 통해 그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비꼬기 문체의 매력을 알고 있는 터라 기대감을 갖고 < 빌브라이슨 발칙한미국횡단기> 개정판을 만났다. 1989년에 첫 출간된 책이 절판되지 않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건 그만큼 꾸준히 찾는 독자가 있다는 것일테고 역시나 기대에 부응할만큼 재미있어서 마치 투덜거리는 빌브라이슨의 낡은 차에 얻어타고 먼지 풀풀 날리며 수십 개의 주를 지나며 함께 미국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빌브라이슨은 스포츠 칼럼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일을 구실로 또 가족 여행으로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다녔던 미국 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미국의 여러 주와 도시들을 방문하며 지난 기억에 비추어 회상하기도 하며 중년이 된 그의 눈에 비친 미국 도시들의 시시함을 포장없이 토로하기도 한다. 미국에 일말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던가 이미 그 주의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해당 도시들을 너무 냉소적으로 까발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인이었던 그가 나중에 영국 국적을 취득해 영국에서 작가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고상한 척 하는 영국인들의 눈에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장시간 운전하는 아버지 뒷자리에서 삶은계란에 성냥을 꽂아 던지며 불꽃을 일으키며 차들을 위협하는 장난을 치는 그와 형누나, 제일 싸구려 숙소를 선택하며 나쁜 소풍 장소를 고르는데 탁월한 본능을 갖고 있다는 그의 아버지와 바람이 세차게 불어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종이접시를 쫒아다니는 어머니, 지루할 정도의 장시간의 운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 마녀의 집이나 꼬마 유령 캐스퍼 모양의 도깨비 동굴이라는 광고판에 혹해 고속도로에서 차를 돌려 기대감을 갖고 일부러 방문한 동굴이 실제로는 광고와 달리 시시하고 뻔한 종유석과 석순 모양이라 바닥에 주저 앉아 울던 자신과 누나의 기억이라던가 완벽하게 아름답거나 행복하지는 못했지만 자꾸 그가 꺼내는 과거의 이야기는 그 내용과 달리 따뜻하고 귀엽게 느껴진다.


그리고 현재 중년이 된 그가 홀로 방문하는 그 도시들은 과거와 비추어 크게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38개 주를 운전으로 도는 동안 미치도록 지루한 장시간의 운전으로 별의별 생각에 빠지고 10초 전 광고를 잊어버렸을까봐 똑같은 광고를 또 틀어대 미치게 본인의 엄마 집에 깔린 바닥과 동일한 걸 깔아둔 특색없는 마트코웨인 생가를 방문해 영혼없이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도시의 유사한 몰 형태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어릴 적 데려갔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헨리포드 박물관은 여전히 그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안개에 쌓여 며칠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랜드캐니언 때문에 실망한 신혼 부부 앞에서 30초 정도 걷힌 안개 사이로 그랜드캐니언을 보는 행운을 누리며 세상에는 너보다 더 못한 사람이 있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빌브라이슨은 어릴적 TV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았던 완벽하게 평화롭고 여유로웠던 그 도시가 실제로 있는지 찾았지만 여행 내내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 실망하며 그 도시를 찾지는 못하고 투덜거리며 시니컬했다. 그런데 여행을 거의 마칠 무렵 자기 고향 아이오와 주 디모인 근방의 스톰레이크에 와서 그는 그 완벽한 도시를 찾은 것 같은 분위기에 감격해 한다. 책 처음에는 특색없고 뻔하며 지루한 도시인양 소개했던 고향이 긴 미국 여행을 마치고 다시 보니 아름다웠음을 새삼 알아차린 것처럼 보인다. 파랑새를 찾아 힘들게 헤맸으나 파랑새가 사실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혼자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도시에서 실망하고 투덜거리는 가운데 튀어나오는 능청스러운 유머가 사실은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 그 시간에 대한 아쉬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만 같아서 새삼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웃다가 아련하게 마음이 사르르해졌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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