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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정윤희 옮김 / 다연 / 2020년 7월
평점 :
<월든>이 선뜻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지역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집을 짓고 2년 남짓 살았다는 소로가 남겼다는 이 고전을 자연예찬론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잘 알지도 못할 낯선 꽃, 풀, 나무 이름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장황하게 묘사해 내가 감동을 느낄 구석이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다. 그리고 당연히 연륜있는 노년의 남자가 쓴 책이겠거니 생각했고 (부끄럽게도 스콧니어링과 착각했다).거기다 책 도 두꺼운 편이라 다 읽었다는 성취감도 쉽게 가지기 어려울 것 같아 읽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정작 읽지도 않고 명성만으로 또는 간단한 소개만으로 수박겉핥기로 아는 것 같은 이런 책들을 오해해 읽지 않고 놓친 책들이 얼마나 많을지 후회했다.
이 책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여러 직업을 경험하며 삶을 몸소 실제 살아내고 싶었던 30세의 한 젊은이가 문명과 물질에 얽매인 삶을 떠나 자연속에서 최소한의 물자로 절제하면서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에 이르는 과절을 실험한 보고서이자 홀로 자연에서 사색하며 발견한 자연의 섭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통찰력있는 에세이다.
남보란듯이 과시하고 더 많이 가지고자 매일 고통스럽게 견뎌가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와 노동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이 미국 젊은이는 그리스로마 신화나 유럽 신화, 기독교나 힌두교 경전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의 현자의 말을 빌어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 논리를 더하고 설득력을 얻는다. 유발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언급했듯 문명의 발달로 오히려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그 굴레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과 물질주의의 폐해에 대해 일찌감치 소로는 지적하면서 역발상으로 최소한의 소비로도 가능한 단순하고 가벼운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알려진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의심하며 꼭 화려하고 많은 옷, 푸짐한 먹을 꺼리, 으리으리하고 넓은 집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서로 방해받지 않고 스트레스주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수준 높은 읽을꺼리로 지성을 쌓고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자연의 변화를 응시하고 그 변화와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구도자의 자세로 충분히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 호수의 깊이, 바람 소리, 동식물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며 삶을 읽어내는 통찰력과 표현력은 문학적으로도 아름답고, 철학적으로도 귀기울여 들을만하다.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만 잘 살면된다며 개인주의적 삶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환경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인두세 등 비합리적인 법과 제도, 기독교 등 종교의 불합리한면 등을 거침없이 지적하기도 한다.
고작해야 30세인 이 젊은이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의 진리를 꿰뚫는 이런 구도자와 사상가의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자신만만한 언어로 쩔쩔매며 힘들게 사는 세상사람들을 후려치게 만들었을까 꼰대같은 마인드로 잠깐 생각해봤는데, 아마 그건 대자연의 힘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자신을 믿어주고 집을 지을 땅을 빌려줄정도로 심적으로 힘이 되는 친구 에머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매일 대자연의 정기를 충분히 받으면서 실컷 책읽고 필요한 것을 잡고 만들며 자기 속도로 사는 삶이라니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유혹적일 것 같다.
책장을 넘길수록 왜 간디와 프로스트, 법정스님이 추천하고 미국 수필문학의 최고봉이며 SAT 추천도서이고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책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변방의 아미로서 방탄소년단 RM이 읽은 책 목록에 있던 책 가운데 한 권이라 평소 숲과 자연을 좋아하는 RM이 떠올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월든의 호수가 아니어도 국내 어디 호수라도, 소로의 통나무 집이 있는 고요한 숲이 아니여도 큰 나무에 둘러쌓인 어디 숲에 가 조용히 숨고싶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