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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리얼 - 복원본
실비아 플라스 지음, 진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9월
평점 :
실비아 플라스의 마지막 시집 『에어리얼』의 복원본은 진은영의 음악적인 번역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1965년 『에어리얼』 첫 출간 당시, 그의 남편이었던 테드 휴스는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시의 배치를 바꾸어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시집을 만들어냈다. 이 시집은 실비아 플라스의 책상 위에 놓인 검은색 스프링 바인더 공책에 놓인 원고 그대로 번역된 완연한 시집이다. 딸인 프리다 휴스는 "'사랑Love'이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봄Spring'이라는 단어로 끝나게 만든" 어머니의 의도를 따라 이 시집을 읽을 것을 권했다.
아빠
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더 이상은, 검은 구두
그 속에서 나는 발처럼 살아왔어요
삼십 년이나. 초라하고 창백하게 ,
숨 쉬거나 재채기할 엄두도 못 내면서.
아빠, 난 당신을 죽여야만 했어요.
그러기도 전에 당신은 돌아가셨죠
대리석처럼 무겁고, 신神으로 가득 찬 자루,
샌프란시스코 물개처럼 커다란
회색 발가락 하나를 가진 무시무시한 조각상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서양에 있는 머리 같죠
거기서 머리는 풋콩의 초록을
아름다운 너셋Nauset 앞바다의 청색 위로 쏟아붓고 있어요.
나는 당신을 되찾으려고 기도하곤 했어요.
아아, 당신Ach, du.
독일어를 쓰고, 폴란드 마을에 살았죠
전쟁, 전쟁, 전쟁의
롤러로 납작하게 짓이겨진.
하지만 그 마을 이름은 흔해요.
내 폴란드인 친구는
그런 마을이 한두 다스는 된다고 해요.
그래서 나는 결코 말할 수 없었어요. 당신이
당신의 발, 당신의 뿌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당신에게 결코 말할 수 없었어요.
혀가 내 턱 안에 갇혔어요.
그게 가시 철조망에 걸렸어요.
나는, 나는, 나는, 나는Ich, ich, ich, ich.
도저히 말할 수 없었어요.
나는 독일인은 다 당신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언어
기관차, 기관차가
칙칙폭폭 나를 유대인처럼 싣고 가요.
다하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가는 유대인.
나는 유대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어요.
난 아마도 유대인일 거라 생각해요.
티롤의 눈雪, 비엔나의 깨끗한 맥주는
그다지 순수한 것도 진짜도 아니에요.
집시 혈통의 내 할머니들과 내 기괴한 운명을
그리고 내 타로카드 팩, 내 타로카드 팩을 보건대
나도 약간은 유대인일지 몰랑.
나는 당신이 늘 무서웠어요.
당신의 루프트바페, 알아듣기 힘든 당신의 우회적 표현들.
그리고 당신의 단정한 콧수염
그리고 당신의 밝고 푸른 아리안족 눈 말이에요.
장갑차 인간, 장갑차 인간, 오 당신
신神이 아닌 갈고리 십자卍字가
너무 새카매 하늘도 뚫고 나올 수 없었죠.
여자들은 다 파시스트를 숭배해요.
얼굴을 짓누르는 장화를, 짐승을
당신 같은 짐승의 짐승같은 심장을,
아빠, 당신은 검은 칠판 앞에 서 있어요,
내가 가진 당신 사진 속에서요.
당신을 발 대신 턱이 갈라져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아닌 건 아니죠, 아니
암흑의 인간이 아닌 건 아니죠
내 예쁜 붉은 심장을 물어뜯어 두 동강 냈잖아요.
그들이 당신을 물었을 때 나는 열 살이었어요.
스무 살 때 나는 죽으려 했지요
그리고 당신에게 돌아가려, 돌아가려, 돌아가려 했어요
뼈라도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나를 포대 자루에서 끄집어내
아교로 이어 붙였어요.
그리고 그때 나는 뭘 해야 할지 알았죠.
당신을 본보기로 삼았어요.
나의 투쟁Meinkampf 같은 표정을 한 검은 옷 입은 남자
그리고 고문대와 나사못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나는 한다고, 한다고 말했죠.
그래서 아빠, 나는 완전히 끝났어요.
검은 전화기가 뿌리째 뽑혔어요,
목소리들이 더는 기어나올 수 없죠.
내가 한 사람을 죽였다면, 그건 두 사람을 죽인 셈이에요
흡혈귀, 자기가 곧 당신이라고 말하고는
일 년 동안 내 피를 빨아먹었죠,
사실을 알고 싶다면, 칠 년이예요.
아빠. 이제 반듯이 누워도 돼요.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결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죠.
그들은 춤읓 추면서 당신을 마구 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게 당신이라는 걸 늘 알고 있었죠.
아빠, 아빠, 이 개자식아, 나는 끝났어.
-「아빠」 전문
실비아 플러스는 이 시를 통해 당대의 여성 시인이 직면해야만 했던 자아의 상태를 보여준다. 화자는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아버지로 나타나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소외와 억압을 느끼고 분노하면서도 그 힘에 대해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한다. 플라스는 이 화자를 통해 남성 중심의 문화에 갇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의 상실, 자기 분열적인 분로를 표현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아빠는 그녀가 8살 때 죽었는데 그녀는 그 후로 자살 충동에 휩싸였다고 한다. 시의 첫 부분은 아빠에게 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화자는 수십 년 동안 검은 구두 속에서 발처럼 살아왔다고 말한다. 화자의 삶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환기 없는 그녀의 삶은 무한한 어둠만이 그녀를 여전히 살아있음을 인식하게 하며 도리어 화자를 초라하고 창백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곳은 감옥과 다름 없다. 화자는 아빠에게 난 당신을 죽여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아빠는 화자가 그러기도 전에 죽었다. 화자의 삶에서 아빠의 존재는 “대리석처럼 무겁고, 신神으로 가득 찬 자루, 샌프란시스코 물개처럼 커다란 회색 발가락 하나를 가진 무시무시한 조각상”과 같이 묵직하게 자화자를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화자는 독일인은 다 아빠라고 생각했고 자신은 유대인처럼 말하기 시작했다며 자신은 아마도 유대인일 거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빠는 독일인, 화자는 유대인으로 설정되는 구조가 홀로코스트를 연상케 하고 관계의 폭력성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그녀에게서 언어를 빼앗아간 독일인 같은 아빠가 화자에게 행했던 억압과 폭력을 화자는 여러 층위의 비유를 통해 폭로한다. “내 예쁜 붉은 심장을 물어뜯어 두 동강 냈”다는 표현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빠는 화자가 아빠에게 무언가를 따져 묻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 시는 화자의 아빠뿐만이 아니라 화자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존재도 등장한다. 죽이기 전에 먼저 죽어버린 아빠(아버지)와 자기가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칠 년 동안 빨아 마신 흡혈귀인 또 다른 아빠(남편)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 지점이다. “내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지”라고 시적 화자는 말하고 있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이 말은 이미 죽은 아빠를 죽일 방법은 없으니까, 그와 닮은 누군가를 대신 죽이는 것일 것이다. 마지막 연, 마지막 행에서 “이 개자식, 나는 끝났어.”라고 외치는 부분은 지금까지 자신을 억압해 왔던 관계와 그 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오랜 강박을 이제는 끊어 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으로 읽어낼 수 있다.
지금은 편안한 시간이다. 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산파의 흡입 분만기를 빙빙 돌렸다.
나에겐 꿀이 있다.
여섯 개의 꿀단지.
와인 저장실에는 여섯 마리 고양이의 눈,
창 없는 어두운 곳에서 겨울나기
집의 중심에서
지난번 세입자가 두고 간 맛이 간 잼
그리고 텅 빈 반짝거림으로 채워진 빈 병들 옆에서
아무개 선생의 독한 진.
이곳은 내가 들어가본 적 없는 방이다.
이곳은 내가 숨을 절대 들이쉴 수 없는 방이다.
암흑이 박쥐처럼 저기 무리지어 있다.
빛도 없이
그러나 횃불과 그 희미한
중국풍 노란색이 드리워진 오싹한 물건들
검은 고집스러움. 퇴락.
사로 잡힘.
나를 차지한 것은 그들이다.
그들은 잔인하지도 않고 무심하지도 않다.
단지 무지할 뿐.
벌들에게 지금은 버티는 시간- 벌들은
너무 느려서 나는 그들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들은 군인처럼 줄지어 행진한다
시럽 깡통을 향해
내가 가져간 꿀을 보충하기 위해.
테이트앤라일사社의 설탕이 그들을 계속 살아가게 한다.
정제된 눈雪.
꽃 대신, 그들이 먹고 사는 건 테이트앤라일이다.
그들은 그것을 먹는다. 추위가 시작된다.
이제 그들은 한 덩어리의 공 모양으로 뭉치고
검은
정신은 저 모든 흰색에 대항한다.
눈의 미소는 희다.
그것은 펼쳐져 있다, 마이센 도자기의 1마일 길이나 되는 몸체처럼,
따뜻한 날
벌들이 그들의 시신을 옮길 수 있는 데까지.
벌들은 모두 암컷이다,
하녀들과 기다란 왕족 여인.
그들은 수컷들을 없애버렸다,
무디고 서툴러서 비틀대는 것들, 그 촌뜨기들을.
겨울은 여자들을 위한 것-
그 여자는, 가만히 뜨개질을 하고 있다,
스페인산 호두나무 요람에서,
그녀의 몸은 추위 속 한 개 의 구근이고 너무 멍해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벌통은 살아남으려나, 글라디올러스 꽃들은
또 다른 해를 시작하기 위해
자기의 불을 묻어두는 데 성공하려나?
그들은 무엇을 맛볼까, 크리스마스 로즈?
벌들이 날고 있다. 그들은 봄을 맛본다.
-「겨울나기」 전문
“아빠, 아빠, 이 개자식아, 나는 끝났어.”
이 문장을 지나면 이 시집의 막바지에 배치된 네 편의 시, 「양봉 모임」, 「벌 상자의 도착」, 「벌침」, 「겨울나기」에 이른게 된다. 실비아 플라스의 아버지가 땅벌 연구의 권위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벌에 대한 애착이 아이러니로 느껴지기도 한다. 3연을 보면 공간을 설명할 때 이곳은 화자가 들어가 본 적 없는 방이고 숨을 절대 들이쉴 수 없는 방이라고 말한다. 이 방은 마치 앞선 시 「아빠」에서 검은 구두에서 숨 쉬거나 재채기할 엄두도 못 내면서 발처럼 살아왔다고 묘사한 문장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다. 즉 이곳은 그녀의 내부 깊숙이 존재하는 잠재의식의 세계이다. 이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을 기억의 뒤편에 감춰두었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검은 고집스러움. 퇴락. 사로 잡힘.” 화자를 차지한 것을 이러한 것들이다. 화자를 괴롭게 한 것들은 잔인하지도 않고 무심하지도 않고 단지 무지할 뿐이다. 무지는 무섭다. 무지가 가지는 유해성은 폭력적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안다고 해도 안 것이 아닐 것이다. 시인은 하얀 설탕 시럽을 먹고 살아남은 벌과 자신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 벌이 겨울을 살아남듯, 플라스도 자기 삶을 강인하게 견디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벌들을 생존하게 하는 설탕 시럽이 “정제된 눈”과 같다면, 벌들에게 닥치는 시련도 또한 겨울의 눈이다. 살아남은 벌들은 모두 암벌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암벌들은 수벌들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 “무디고 서툴러서 비틀대는 것들, 그 촌뜨기들을.” 즉 겨울은 여자들을 위한 것이다. 벌통과 글라디올러스 꽃은 겨울을 살아남아 봄을 맞을 수 있을까. 여자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빛을 볼 수 있을까. 실비아 플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벌들이 날고 있다. 그들은 봄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