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레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평점 :
보르헤스의 소설 「알레프」는 가장 환상적인 측면을 중점적으로 두고 다중 우주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우주라는 아직 다 발견되지 못한 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인지 상당히 추상적이며 난해하기도 하다. 이 소설은 그중에서도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장소인 알레프를 다루고 있다. 알레프에 대한 개념은 이번 기회에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랍 문자와 히브리 문자의 첫 번째 글자이고 이 글자를 형상화하는 문자의 기원은 페니키아 문자의 첫 문자로 이름도 이 문자의 이름인 알레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과 인간이 손을 맞대고 있는 모양'을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알레프는 신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유대교의 금기 때문에 히브리어에서는 신을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원과 맥락을 보면 ‘알레프’라는 단어를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문학과 결합시키면 매우 흥미로워서 예술 장르의 모티브로서 활용하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는 사람의 집에 찾아갔다가 지하실에서 우주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빛나는 형상의 물체인 알레프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2~3cm에 불과한 크기지만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형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도로확장공사 때문에 그 집이 허물어지면서 알레프도 사라지고 만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풍경이 집중된 단 한 점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남기는 이 작품은 작가가 주장하는 시간의 대한 생각, 계속해서 흘러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어느 우주에서는 과거가 반복될 수 있고, 미래가 현재에 개입할 수 있고, 현재가 과거의 영향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가변성을 느낄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공간 또한 고정되어있지 않다. “모든 지점에서 알레프를 보았고, 알레프 안에서 지구와 또다시 지구 안에 있는 알레프와 알레프 안에 있는 지구를 보았으며, 내 얼굴과 내장을 보았고, 너의 얼굴을 보았으며, 현기증을 느꼈고, 눈물을 흘렸다. 내 눈이 그 비밀스럽고 단지 추정적인 대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사람들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만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그러니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였다. 나는 무한한 존경과 무한한 연민을 느꼈다.” 이 문장을 보면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시간의 불변성과 부동의 공간이라는 관념을 깨뜨리며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미지의 우주가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내 옆에 있을 수도 있고 평행 세계처럼 존재할 수도 있는 여러 상상력을 제시하며 우리 곁을 파고드는 환상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본 것을 부분적으로라도 열거하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눈으로 본 것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시간에 따라 나열하는 것이 곧 언어의 한계이고 언어의 관념들은 관념으로만 남을 뿐 그 무엇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음을 말한다.
주인공은 “견디기 어려운 광채를 지닌 무지갯빛의 작은 구체”를 보았고, 그는 그것에서 사람이 붐비는 바다와 여명과 석양,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 검은색 피라미드의 한가운데에 있는 은색 거미줄을 보았다. 하지만 공사로 인해 단숨에 허물어진 집처럼 알레프 또한 꿈결처럼 사라지고 만다. 보르헤스가 주장하는 변하는 시간과 확정되지 않는 공간처럼 알레프도 언제든지 내 곁에 찾아왔다고 금방 떠나고 마는 그러다 또다시 내 손 안에 잡힐 수도 있는 그런 가변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