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문학과지성 시인선 472
임승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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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유의 첫 번째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는 조용히 행동하는 화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시인 박상수는 “시를 쓰면서 혹은 쓰고 난 뒤 우리는 불행 가운데 존재하는 삶의 작은 기척 하나를 손에 쥐게” 된다고, 시의 힘은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 시집에서는 어린 화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성장과 반성장의 경계에서 기묘하게 발화하며 움직인다. 가령 「꿈속에 선생님이 나왔어요」에서는 선생님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가 “문을 열고 지루해서” 말했다는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우리들의 사물함과 침실, 무덤을 언급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늘 한 박자씩 늦었으니까 선생님만 늙는다고 억울해”말라고 말한다. 분명 제목은 꿈속에 선생님이 나왔다는 것으로 보아 아이의 시점에서 타자인 선생님을 회상하는 듯해 보이지만 “우리들의 무덤”이라는 부분과 교실이라는 공간에 고여있는 듯한 아이의 이미지 때문에 죽은 아이가 선생님의 꿈속에 등장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이 시에서의 아이는 멈춰있는 자기들보다 “늘 한 박자씩 늦는” 선생님을 비웃는다. 그들은 성장을 멈췄음에도 여진히 선생님보다 성장해 있다. 


여기 스스로 성장을 거부한 소년도 있다. 「밖에다 화초를 내놓고 기르는 여자들은 안에선 무얼 기르는 걸까?」에서는 어제 잠 속으로 들어가 오늘 나오지 않은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늘어나는 팔다리”를 가졌고, “육신의 발달은 잠 속에서 그늘을 도왔다.” 육신은 소년이 원하든 원하지 않는 자연스럽게 성장해 간다. 하지만 소년의 정신은 성장을 거부한다. 도망치지 그랬냐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 소년은 “안쪽으로만 자라는 등에서 피리”를 꺼내며 그들의 목소리를 차단한다. 육체의 중심인 척추뼈마저 스스로 꺼내 육신마저 성장을 중지시키는 듯 하다. 반성장을 갈망하는 소년에게 ‘비성년’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신해욱은 “성년(成年)이라는 말에는 움직임이 내포되어 있다”며 “움직여서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이들을 성년이라 부른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그렇게 될 이들을 미성년이라 부르고,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은, 그러니 비성년이라 부르기로 하자”고 새롭게 정의했다. 한 마디로 “미성년은 대기 중이고 비성년은 열외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잠에 든 소년을 끌어내려 한다. 그러나 ‘이미’ 소년은 이불 밖으로 발이 먼저 나와 있었다. 스스로 열외에 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장과 반성장은 아이들에게 미성년과 성년, 비성년의 자리를 선택하게 하는 기로이다. 그렇다고 성장은 곧 체제에 대한 굴복이자 반성장은 체제에 대한 혁신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밀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들은 누군가의 꿈에 등장하고, 낯선 곳을 걸으며 ‘작은 기척’을 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을 “열렸다 닫히는 문 사이로 나타나는 질문”(「결석」)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이내 되짚어본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건 반칙”이라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에 자신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을 결석이라 말하고, 자신이 결석한 곳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묻는 것은 반칙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물음에 대답할 내가 없으니까. 그들은 알고 있다. 어떤 곳에 있든 어떤 기로에 서 있든 그곳에 자신이 들어있지 않으면 의미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기척은 그들의 존재를 지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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