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너희 세상에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이 안써져 고민하던 무명작가는 기분전환을 위해 사우나에 들르고, 거기서 자신이 쓰던 소설 속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을 만나게된다. 물론 자신이 창조하낸 세상에 웹소설 이야기처럼 들어갔지만 무명작가는 잘 써지지 않던 글처럼 먼치킨이 아니라 자신도 초짜인 상태로 소설 속 세상을 맞이한다.
꿈을 꾸고 있을때는 마치 엄청난 문제를 맞이하여 머리가 복잡한 문제도 꿈에서 깨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꿈에서 마주하는 비현실적인 문제들은 잠에서 깬 일반적인 뇌에서는 왜 이걸 사실이라고 믿고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설 속 세상도, 유통기한이 없는 바나나 우유처럼 그 디테일이 떨어지기도 한다. 소설속 세상의 창조자인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세계를 만들어낼 뿐, 등장인물은 그저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지 위한 도구처럼 쓰인다. 이런 이야기에 반대로 소설가가 들어오게 되는 이야기는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