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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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보는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 신간이자 과잉증후군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3번째 이야기, '죽음을 선택한 남자(원제: The Fix)'를 드디어 읽었다. 마이클 로보텀에 이어 데이비드 발다치라니. 폭염이라 어디 나가면 열사병으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책이나 읽으라고 북로드에서 힘써준 느낌이 팍팍 난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둘 다 매우 좋아는 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좋아하는 작가인데, 마이클 로보텀은 매우 섬세한 심리 묘사와 서서히 고조되는 매끄러운 진행, 데이비드 발다치는 영화를 보는 듯한 진행과 스피디하게 몰아치는 힘이 좋다. 둘 중에 꼭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내 취향에는 마이클 로보텀이 더 좋지만... 데이비드 발다치가 더 대중적으로 고르게 인기를 싹쓸이할만한 작가이지 않나 생각함. 실제로 출간 판매고 기준, 현재 전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작가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로보텀은 음... 에.. 그 분은 CWA를 수상했어요...ㅠ.,ㅠ;;

 암튼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설은 전개가 호쾌하고 굉장히 시각적이다. 그래봐야 하얀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라, 활자로 이루어진 책일 뿐인데도 읽다 보면 눈 앞에 파노라마 펼쳐지듯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다. 아마 빠르게 치고 빠지는 대사 위주의 진행 방식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이번 소설도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인만큼 여전히 주인공은 과잉 기억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데커다. 시리즈는 원제와는 달리 모두 다 '~ 남자' 시리즈로 제목을 통일했고, 순서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데커가 과잉 기억 증후군을 가지게 된 계기나 데커의 트라우마, 심리 상태는 시리즈의 첫 편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매 책마다 이전 이야기를 아주 간결하게 요약해서 언급하는 문단들이 있고, 과잉 기억 증후군이라는 그의 특성이 스토리에서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에 그냥 아무거나 먼저 봐도 된다. 미드 suits 같달까... suits의 주인공도 한 번 본 건 사진기로 찍어낸듯이 머리 속에 담아내는 천재지만 1시즌 초반 정도에나 그걸 써먹었지 뒤로 갈수록 전혀 그런건 크게 뭐 없고 오히려 가끔 언급되기라도 하면 '아.. 맞다... 얘 그런 스탯이 있었지.. 완전 까먹고 있었냄 -ㅅ-a' 정도로 회자되는, 그런 정도 특성이라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재미를 위한 감미료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이번 이야기는 데커가 FBI에서 일하게 되면서 맞닥뜨린 의문의 살해+자살 사건. 열심히 FBI 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는데 눈 앞에서 웬 반할아버지가 반할머니 여사님을 총으로 쏴죽이고서는 자기 턱 밑에 총을 쏘고 자살해 버린다. 출근 길에 이 무슨... -_-..  

 데커는 목격자이자 수사관으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조사할수록 사건은 오리무중이다. 남자는 성공한 기업 대표에 사업도 여전히 잘 되고 있었다. 나이가 무색하도록 예쁘고 탄탄한 와이프와 장성한 자녀들이 있었고,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과 드림카 페라리까지 갖춘 뭐 하나 모자란 것 없는 남자였다.  

 첫장면부터 살해 당한 피해자 역시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 없이 술술 가르쳐주는 1등 교사인데다가 시간이 남으면 어린 암환자에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어주는 봉사활동까지 하는 천사표 선생님이었다. 대체 왜 가해자가 되어야 했고 피해자가 되어야 했는지 종잡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고 관계다. 둘 사이에 무슨 관계나 안면이 있어 보이지도 않거든. 그런데 캐면 캘수록 이상한 것들이 나온다. 살인자는 머리 속에 종양이 있어서 남은 인생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었고, 피해자는 궁핍한 교사 월급으로는 감당 되지도 않는 팬트하우스와 고급 세단까지 보유한 거부(?)였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살인자가 머리가 훽 돌아 마지막 가는 길에 옆에 지나가던 행인을 무작위로 쏴죽이고 자신도 자살해 버린걸까? 그렇다면 이 피해자의 근원을 모를 많은 자산과 10년 이전의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피해자는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 과거의 기록이 봉인된 어떠한 사건의 고발자나 증인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으며, 왜 하필이면 인적이 많은 FBI 빌딩 앞 도로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살해하고 자살해 버린 것일까?  

 전혀 실마리 하나 잡히지 않는 채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 때문에 중반부까지 전혀 뭐가 뭔지 종잡지 못하다가, 정확히 한 반절쯤 부분에서 어... 이거 엄청 스케일 커지는뎀? =_=;;;;;; 싶다가 정말 말그대로 대형 스케일로 치닫던 책이었다. 

 음.. 개인적으로 이번 시리즈는 데커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내용이 이상했다거나 지루했다거나 뭐가 빠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추리나 수사를 더 기대했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도 그쪽이 더 강했어서 이번 작품도 그쪽을 더 기대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다 보고서 느낀건 이건 007류의 첩보 스파이물 영상 제작을 노린 작품이지 추리나 크라임 장르 쪽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많이 장르가 달랐다는 느낌이다. 

 이번 시리즈는 데이비드 발다치의 책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나 또한 그냥 내 취향이 아닐 뿐 완성도 자체는 매우 좋았다는데 동의한다. 장면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고, 누가 보아도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로 바로 바꿔 제작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작품이었으니까. 심지어는 이번에 알라딘 MD's Pick 뿐만 아니라 편집장의 선택까지 올라왔다. 대중적인 장르 소설로서는 굉장히 호평이 아닌가 싶다. 단지 나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 ㅜㅜ...

 아무튼 오랜만에 데커 시리즈 접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취향을 떠나서, 데이비드 발다치 소설은 믿고 볼만하다는건 어쨌든 이번에도 검증됨. 이번 책은 책보다는 영화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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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코짱은 학교를 쉽니다
고토하 도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뜨인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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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코짱은 학교를 쉽니다'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6년간 등교를 하지 않았던 고토하 도코의 자전적인 에세이 만화다.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으며 내성적이었던 주인공 고토하 도코에게 학교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같이 노는 친구를 만나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약자인 자신을 괴롭히고 짓밟는 약육강식의 사회였을 뿐이다. 다른 아이들의 거친 말이나 기싸움에 마음의 상처가 누적되었고, 그 상처가 자율신경계 이상이라는 결과로 드러났다. 도코는 학교에 등교할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난다거나 하는 식으로-대개의 경우는 등교를 거부하기 위한 억지 편법을 이용한 수단이었지만, 나중에는 정말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결석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6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책 소개에 보면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들에게 보내는 위로라는 메세지가 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적응자란 무엇일까?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개성은 모두 제각각이라, 모두에게 천편일률적인 학습과 과정을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담대하거나, 조금 더 예민하거나, 조금 더 섬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무리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지만 독자적일 때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에게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똑같은 삶을 강요하고, 그 과정에 취합되면 '적격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적응자'라고 낙인 찍는 사회는 얼마나 불합리한가. 


 '도코짱은 학교를 쉽니다'에서 말하는 '부적응자'라는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깎아내리는 루저의 개념이 아니라, 속한 집단의 틀에 박힌 강압에 무너지지 않고 내 고유한 개성과 삶을 보는 태도를 유지하고자 투쟁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코짱은 학교를 쉽니다'의 고토하 도코의 시작은 소극적인 자신감 위축과 자율신경계 이상 때문에 피치 못하게 시작된 등교 거부였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머무르면서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일러스트를 응모하고, 만화를 연재하며 자신만의 길과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알게되는 주변의 따뜻하고 묵묵한 지지와 응원 또한 내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등교를 거부하고 앓아 누운 딸에게 보낸 어머니의 굳건한 지지와 믿음 또한 그녀가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혼자 바로 서는데 무한한 동력원이 되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에세이다 보니 자기 개발서나 심리학 서적처럼 어떤 방향이나 문제 원인 분석,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만화의 진행 또한 담담한 수필집을 보듯 어떤 극적인 무언가가 있거나 노골적인 신파요소로 눈물샘을 자극하고자 하는 요소도 없다. 하지만 읽고 나면 '학교에 가지 않았던 날들은 나에게 필요한 나날들이었다"는 메세지가 이해가 간다. 모두가 똑같은 트랙을 치열하게 달릴 필요는 없다. 조금쯤 쉬면서 자신을 사색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정한 자신을 깨닫는 시간이 남들보다 길게 요구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녀는 등교 거부의 시간을 자아를 성찰하는 시간으로 삼았고, 그런 노력과 주변의 지지 끝에 삶의 빛이 될만한 요소를 찾아 꿈을 이루게 되었다. 제목처럼 고단한 심신을 '쉬어줌'으로 인해 더 행복한 길을 찾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왠지 모를 눈물이 났다. 

   

 고토하 도코는 현재 등교 거부 시절 그렸던 만화를 출판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평범하고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찍어낸듯한 생활 방식의 강요 속에 방황하는 청소년, 그리고 그런 자녀를 둔 부모 모두에게 한 번쯤 '이런 삶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길도 있을 수 있다'라는 따뜻한 위로로 다가올 수 있을 듯한 책이었다. 책이 많이 두껍지 않고 금방 읽히기 때문에 고단함에 방황하는 이들에게 한 번쯤 추천할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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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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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은 소설 내용 외적으로도 무척 의미가 크다. 번역가 성귀수님이 십수년에 걸쳐서 작품과 삽화를 발굴하고, 국내 미발표된 단편들은 물론 원작자의 나라인 프랑스에서조차 극소수 매니아층만 접했던 미공개작까지 끝내 추적하여 그 열정으로 출판하게 된만큼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의 필사적인 정열도 대단하지만, 그 정열을 믿받침하고 후원한 arte 출판사의 노고가 고스란히 깃들여 있는 책이다. 웬만해서는 국내 출판사에서 그만한 든든한 후원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소설과 캐릭터 자체가 가진 유구한 역사와 팬층을 제외하고도, 그만큼 외적으로도 의미가 큰 출판이어서 책을 읽기 전부터도 많은 기대를 했었다.


 딱히 장르 소설, 모험 소설, 추리 소설의 팬이 아니라도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만큼의 유명세는 아니라고 하나, 괴도 루팡 같은 만화 등으로도 많이 접하거나 들을 수 있고, 루팡을 소재로 한 보드 게임이나 방탈출카페 등의 파생 상품들도 셀 수 없다. 심지어는 월급 루팡(?!) 같은 용어까지 있다. 가히 도둑의 대명사다. 장르 소설이나 추리/모험 콘텐츠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홈즈VS뤼팽을 보면 탐정VS도둑으로 바로 인식될 정도니 사실상 뤼팽을 읽어 본 적은 없어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 문학 작품의 캐릭터가 이토록 많은 파급력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추리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호기심이 갈 밖에.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은 뤼팽 협회장에서 보내온 출간 축하 메세지와 모리스 르블랑 및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대한 간략한 설명 등의 서문을 포함하여, 중단편 39편, 장편 17편, 희곡 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집 1권은 1905년 첫 연재작인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부터 시작되며 오리지널 삽화와 아르센 뤼팽 4막극까지 발굴하여 수록되어 있다.  

 아르센 뤼팽을 읽다보면 기존의 탐정/추리 소설로 이루어져 있던 모험/활극 소설계에 이 소설이 얼마나 센세이션 했을 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 주인공이 남의 물건을 훔치고 다니는 피카레스크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이 천재적인 괴도라는 이가 무려 감옥으로 잡혀들어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허를 찌르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탐정 소설이 만연한 시대에 소설을 처음 접했던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사건 발생->추리->검거의 형태였을텐데 주인공이 무려 범죄자인데다가 검거부터 시작하는 자체가 여태까지의 틀을 180도 뒤엎어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인 영국의 코난 도일 작 셜록 홈즈가 워낙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던 때이니 탐정과 대적할만한 천재적인 괴도 주인공의 탄생은 프랑스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킬만 했다. 무명 작가이던 모리스 르블랑은 이 뤼팽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엄청난 부를 얻었고, 심지어는 레종 도뇌르 훈장까지 수여 받았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집 1권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아르센 뤼팽은 어떤 추리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는 천재적이고 다재다능한 괴도 '뤼팽'이라는 캐릭터의  모험 연대기에 가깝다고 느꼈다. 논리적인 추리나 트릭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탐정 소설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괴도이다 보니 어느 정도 뭉뚱그리거나 캐릭터의 완전무결한 절대적 능력과 계획에 의존하여 흘러가는 경향이 강하다. 고전 작품으로 비유하자면 전우치전, 홍길동전, 영화로 비유하자면 인디아나존스의 모험 정도라고 예를 들자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또한 아르센 뤼팽이라는 캐릭터는 냉정하고 이지적이며 나름 신사적인 셜록 홈즈에 비해서 들떠있고 조금쯤 감정이 과잉되어 있거나 지나치게 제멋대로인 느낌이 강하다. 의적(?)이라는 캐릭터의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르센 뤼팽VS셜록 홈즈 챕터에 가서는 정통 추리나 모험에 대한 문학 자체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라이벌인 국가간(프랑스VS영국), 캐릭터간(뤼팽VS홈즈)의 자존심싸움 때문에 득보다는 소모적인 실이 더 큰 챕터가 아니었나 아쉬움이 남는다. 프랑스의 자존심을 위해 셜록 홈즈를 너무 후려치다 보니 트릭 자체의 재미나 팽팽한 기싸움에서 오는 스릴보다는 뤼팽 띄워주기에 그쳤기 떄문이다. 그래서 정통 추리 장르로 생각하고 아르센 뤼팽을 접한다면 처음엔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는 느낌. 셜록 홈즈에 비해 인지도나 팬층이 조금 더 약한 것은 아마 그 기대와 실제간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인 추리 장르에 대한 기대보다는 한 시대를 아우른 명작, 수많은 파생 상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도둑을 상징하는 대명사, 범죄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 이후 출현하게 된 괴도 캐릭터의 모태가 되는 '고전'에 대한 인지와 기대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추천하는 책이다. 아울러 번역가와 출판사의 노고에는 다시 한 번 감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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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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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작 비하인드 도어를 나름 재미있게 봤던 터라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비하인드 도어의 경우 B. A. 패리스의 첫 데뷔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끌었었다. 다운 증후군을 가진 여동생을 가진 한 여자가, 그녀와 그녀의 동생을 차지하고 지배하려 드는 지능범 남편에게 학대 당하다 맞서 벗어나는 내용의 책이었다.

 아무래도 첫 데뷔작이니만큼 무언가 좀 어설프기도 하고 잡설이 많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비하인드 도어를 나름 재미있게 보았던 이유는 스릴러 소설에서 변두리 주변인이었던 여성들, 장애인의 강인한 유대와 그 유대에서 오는 힘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완성도 자체보다는 그런 작가의 시선이 좋았었다. 아마도 그에 공감하고 매료된 사람이 많았기에 영화화까지 계약이 된 거겠지.


 이번에 새로 출간된 브레이크 다운도 작가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시선은 비슷하다. 연약하고 섬세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돕고자 하는 주위의 선량한 지인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배하고 착취하고자 하는 배우자.  

 이런 내용이리라는 점은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알 수 있었다. 이전 작품 때의 작가 성향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책 뒷면에 써 있는 가스라이팅 심리스릴러라는 문구 자체가 너무 노골적이었거든. 가스라이팅 자체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인데, 그러한 책 설명을 보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바로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있을 거라서 이건 스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읽기 전부터도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다. 이전 작인 비하인드 도어 때는 나름 주제도 괜찮았고 참신했다. 신인다운 통통 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항상 첫 데뷔로 성공한 유명인들의 위험은 차기작에서 온다. 전작에서 발전해서 역시 가능성 있는 신인이었는지, 혹은 전작에서 퇴보하여 이전의 성공은 단순한 운이었는지를  평가 받는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다운은 매우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종종 가는 커뮤니티에서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을 몇 가지 본 것이 있다. 대부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데뷔작인 비하인드 도어에서도 그런 기미가 좀 있긴 했었다. 그저 단순하게 첫 데뷔작이기 때문에 미진한 것이기를 바랐지만, 그때도 지루하거나, 맺고 끊을 곳을 잘 몰라 너무 질질 끌어나가거나, 너무 후루룩 한 번의 우연이나 기회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약점들은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 평들이 뭘 의미하는 것일지는 보지 않아도 이해가 갔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왜 그런 혹평이 나왔는지는 깊이 공감이 갔다. 


 일단 너무 지루하다. 가스라이팅 심리 스릴러라고 하니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중후반부까지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 진행은 읽는 독자를 지치게 한다. 예전에 루스 웨어의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라는 책을 읽고 아주 혹평의 후기를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 책과 비슷한 느낌. 좋게 말하자면 세심한 것이고, 날 것 그대로 말하자면 작가가 정도를 아직 모른다. 이게 단순히 데뷔한지 얼마 안된 신인 작가의 미숙함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낭패다. 무조건 덕지덕지 자세히 묘사하는 것과 섬세하게 몇 겹씩을 계속 덧씌워가며 입체감을 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차라리 덕지덕지 묘사하는 것을 자신의 특징으로 하고자 한다면 처음과 끝에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지지부진 늘어지는 초중반부에 비해 마감일이 닥쳐와 후다닥 마감해서 제출한 듯한 날림 마무리는 현타까지 오게 한다. 그것도 단순한 우연의 힘으로. 작가도 그 억지성을 알았는지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이것은 운명인 것 같다는 둥 부연 설명을 써놓지만 그걸 읽는 독자 입장에서 뭐 얼마나 납득이 가겠는가. 실제의 삶이 영화, 드라마, 소설과는 다르게 정말 단순한 우연의 연속이고 운명의 흐름대로라는건 공감하지만 그 우연이란걸 보려고 사람들이 돈을 내고 문화 생활을 하는 건 아닌데.  

 안타깝게도 첫 데뷔작의 기대 이상의 어마어마한 성공 때문에 작가가 부담감이 컸든지, 정말로 유감스럽게도 역량 부족이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은 아픔을 남긴 책.  추천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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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방문객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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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카와 유타카는 법학부를 졸업하고 현재는 호세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스터리문학대상으로 데뷔한 작가이다. 아무래도 법학부 출신 작가이기 때문인지 법률 용어나 단계, 사후 범죄자들이 보이는 태도나 감정 묘사들에 대해서 더욱더 세세하고 섬세한 편이다. 또한 작가의 연령 자체가 있는 편이라 여타의 크라임 장르 소설들처럼 참신하고 도발적이지는 않지만 막힘 없이 유려하고 점잖은 느낌을 받았다. 노련한 전문가의 느낌이랄까.

 범죄 소설을 읽으면서 점잖은 느낌을 받았다니 뭔가 표현이 우습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받는 느낌이 실제로 그렇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15년 전의 사건이나,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방문판매 연쇄 살인 사건 또한 섬뜩하도록 잔인하고 충격적인 묘사는 딱히 없다. 작가는 항상 간결하고 깔끔한 최소한의 표현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한다. 장르 소설을 보다 보면 가끔 느끼는 주인공의 지나친 캐릭터화, 공명심이나 허세, 로맨스 등의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곁가지들이 없다. 굉장히 오래된 연륜을 가진 노련한 의사가 철저한 계획 하에 메스를 적재적소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깔끔하게 움직여 수술하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그 밑에서는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진다 해도 말이다. 


 한낮의 방문객은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에서, 일반적인 소시민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범죄를 다루고 있다. 당장 나 자신이나 주변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범죄의 내용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범죄의 내용 또한 다수 속에서 경쟁하듯 잔혹하게 폭발하는 폭력성에 대해 다루고 있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나저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내 앞에서 사건에 대해 말하는 미쓰이케의 현재 심경이었다. 후회하는 마음을 언뜻 내보였지만, 삼자적 시선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한순간 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물론 가엾다고 생각해요. 죄책감도 들고요.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그건 무토도, 아사노의 애인도 마찬가지고요. 전부 아사노와 노노미야, 야나가가 한 짓이에요. 그래서 먼 옛날 꿈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느껴지고 실감이 나지 않아요."  

사토 겐고도 쓰치다 유리도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 결정적인 사실을 미쓰이케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그렇게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십수년 전 불량 청소년들이었던 아사노 일당은 한 커플을 윤간하고 폭행하던 중 서로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더욱 더 가학적으로 그들을 폭행하고 살해했다. 다수의 힘으로 행한 폭력과 살인이었기에 그들은 경쟁적으로 잔혹해졌다. 복역을 마친 이후 가해자는 또한 그만큼 자신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다수가 저질렀던 만큼 그들의 죄책감이나 죄의식 또한 각자에게 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그러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다. 집단폭력성이나 집단의 도덕심 부재이다. 다수였기 때문에 더욱 잔혹해졌고, 다수였기 때문에 더욱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니. 아무 죄도 없이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인 피해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죄책감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가해자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켠이 서늘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러한 방관자 효과를 나도 보았고,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잔혹하고 역겨운 묘사가 나온 것이 아님에도 스산한이 맴도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불편한 속성을 작가가 표현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이기와 폭력성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사노 일당은 십수년 전에도 집단의 폭력성을 내세워 살인 행각을 벌였고, 도덕심이나 죄책감 자체가 부재한 아사노는 이후에도 다수 속에서 폭발하는 폭력성과 잔혹성을 방문판매에 적용하여 돈을 갈취하거나 사람을 죽이는데 이용한다. 주인공인 다지마는 사회의 방관으로 인해 아사한 것으로만 생각했던 두 모녀의 죽음과 옆집 자매들의 방문판매 강매 사건에 묘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미도리카와 형사를 통해 알게 된 노부부 살인 사건 또한 방문 판매에 엮여 있었고, 이 사건은 점차적으로 십수년 전 커플을 윤간 살해한 아사노 사건과 같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사건은 잔잔하지만 속도감 있게 해결되기 시작한다.

  

 한낮의 방문객은 어떤 기기묘묘한 트릭이나 충격적인 반전, 자극적인 잔혹성으로 기억에 남는 소설은 아니다. 묘사나 기타의 것들이 날것의 생생한 느낌이 아니어서 장르 소설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 입장에서도 몰입이 쉽도록 덤덤하고 평탄하게 흘러간다. 분명히 객관적으로 보면 심각한 상황임에도 들쭉날쭉하게 흔들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외 사건을 취재하며 드러나는 주변인들의 의외의 반전들은 간결하지만, 작가가 인간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과 고민을 해왔는지 느껴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

범죄 장르 소설의 지나친 무게감이나 잔혹성 때문에 망설여지는 독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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