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작 비하인드 도어를 나름 재미있게 봤던 터라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비하인드 도어의 경우 B. A. 패리스의 첫 데뷔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끌었었다. 다운 증후군을 가진 여동생을 가진 한 여자가, 그녀와 그녀의 동생을 차지하고 지배하려 드는 지능범 남편에게 학대 당하다 맞서 벗어나는 내용의 책이었다.

 아무래도 첫 데뷔작이니만큼 무언가 좀 어설프기도 하고 잡설이 많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비하인드 도어를 나름 재미있게 보았던 이유는 스릴러 소설에서 변두리 주변인이었던 여성들, 장애인의 강인한 유대와 그 유대에서 오는 힘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완성도 자체보다는 그런 작가의 시선이 좋았었다. 아마도 그에 공감하고 매료된 사람이 많았기에 영화화까지 계약이 된 거겠지.


 이번에 새로 출간된 브레이크 다운도 작가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시선은 비슷하다. 연약하고 섬세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돕고자 하는 주위의 선량한 지인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배하고 착취하고자 하는 배우자.  

 이런 내용이리라는 점은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알 수 있었다. 이전 작품 때의 작가 성향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책 뒷면에 써 있는 가스라이팅 심리스릴러라는 문구 자체가 너무 노골적이었거든. 가스라이팅 자체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인데, 그러한 책 설명을 보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바로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있을 거라서 이건 스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읽기 전부터도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었다. 이전 작인 비하인드 도어 때는 나름 주제도 괜찮았고 참신했다. 신인다운 통통 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항상 첫 데뷔로 성공한 유명인들의 위험은 차기작에서 온다. 전작에서 발전해서 역시 가능성 있는 신인이었는지, 혹은 전작에서 퇴보하여 이전의 성공은 단순한 운이었는지를  평가 받는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다운은 매우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종종 가는 커뮤니티에서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을 몇 가지 본 것이 있다. 대부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데뷔작인 비하인드 도어에서도 그런 기미가 좀 있긴 했었다. 그저 단순하게 첫 데뷔작이기 때문에 미진한 것이기를 바랐지만, 그때도 지루하거나, 맺고 끊을 곳을 잘 몰라 너무 질질 끌어나가거나, 너무 후루룩 한 번의 우연이나 기회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약점들은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 평들이 뭘 의미하는 것일지는 보지 않아도 이해가 갔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왜 그런 혹평이 나왔는지는 깊이 공감이 갔다. 


 일단 너무 지루하다. 가스라이팅 심리 스릴러라고 하니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중후반부까지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 진행은 읽는 독자를 지치게 한다. 예전에 루스 웨어의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라는 책을 읽고 아주 혹평의 후기를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 책과 비슷한 느낌. 좋게 말하자면 세심한 것이고, 날 것 그대로 말하자면 작가가 정도를 아직 모른다. 이게 단순히 데뷔한지 얼마 안된 신인 작가의 미숙함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낭패다. 무조건 덕지덕지 자세히 묘사하는 것과 섬세하게 몇 겹씩을 계속 덧씌워가며 입체감을 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차라리 덕지덕지 묘사하는 것을 자신의 특징으로 하고자 한다면 처음과 끝에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지지부진 늘어지는 초중반부에 비해 마감일이 닥쳐와 후다닥 마감해서 제출한 듯한 날림 마무리는 현타까지 오게 한다. 그것도 단순한 우연의 힘으로. 작가도 그 억지성을 알았는지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이것은 운명인 것 같다는 둥 부연 설명을 써놓지만 그걸 읽는 독자 입장에서 뭐 얼마나 납득이 가겠는가. 실제의 삶이 영화, 드라마, 소설과는 다르게 정말 단순한 우연의 연속이고 운명의 흐름대로라는건 공감하지만 그 우연이란걸 보려고 사람들이 돈을 내고 문화 생활을 하는 건 아닌데.  

 안타깝게도 첫 데뷔작의 기대 이상의 어마어마한 성공 때문에 작가가 부담감이 컸든지, 정말로 유감스럽게도 역량 부족이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은 아픔을 남긴 책.  추천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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