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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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은 소설 내용 외적으로도 무척 의미가 크다. 번역가 성귀수님이 십수년에 걸쳐서 작품과 삽화를 발굴하고, 국내 미발표된 단편들은 물론 원작자의 나라인 프랑스에서조차 극소수 매니아층만 접했던 미공개작까지 끝내 추적하여 그 열정으로 출판하게 된만큼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의 필사적인 정열도 대단하지만, 그 정열을 믿받침하고 후원한 arte 출판사의 노고가 고스란히 깃들여 있는 책이다. 웬만해서는 국내 출판사에서 그만한 든든한 후원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소설과 캐릭터 자체가 가진 유구한 역사와 팬층을 제외하고도, 그만큼 외적으로도 의미가 큰 출판이어서 책을 읽기 전부터도 많은 기대를 했었다.


 딱히 장르 소설, 모험 소설, 추리 소설의 팬이 아니라도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만큼의 유명세는 아니라고 하나, 괴도 루팡 같은 만화 등으로도 많이 접하거나 들을 수 있고, 루팡을 소재로 한 보드 게임이나 방탈출카페 등의 파생 상품들도 셀 수 없다. 심지어는 월급 루팡(?!) 같은 용어까지 있다. 가히 도둑의 대명사다. 장르 소설이나 추리/모험 콘텐츠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홈즈VS뤼팽을 보면 탐정VS도둑으로 바로 인식될 정도니 사실상 뤼팽을 읽어 본 적은 없어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 문학 작품의 캐릭터가 이토록 많은 파급력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추리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호기심이 갈 밖에.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은 뤼팽 협회장에서 보내온 출간 축하 메세지와 모리스 르블랑 및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대한 간략한 설명 등의 서문을 포함하여, 중단편 39편, 장편 17편, 희곡 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집 1권은 1905년 첫 연재작인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부터 시작되며 오리지널 삽화와 아르센 뤼팽 4막극까지 발굴하여 수록되어 있다.  

 아르센 뤼팽을 읽다보면 기존의 탐정/추리 소설로 이루어져 있던 모험/활극 소설계에 이 소설이 얼마나 센세이션 했을 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 주인공이 남의 물건을 훔치고 다니는 피카레스크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이 천재적인 괴도라는 이가 무려 감옥으로 잡혀들어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허를 찌르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탐정 소설이 만연한 시대에 소설을 처음 접했던 독자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사건 발생->추리->검거의 형태였을텐데 주인공이 무려 범죄자인데다가 검거부터 시작하는 자체가 여태까지의 틀을 180도 뒤엎어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인 영국의 코난 도일 작 셜록 홈즈가 워낙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던 때이니 탐정과 대적할만한 천재적인 괴도 주인공의 탄생은 프랑스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킬만 했다. 무명 작가이던 모리스 르블랑은 이 뤼팽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엄청난 부를 얻었고, 심지어는 레종 도뇌르 훈장까지 수여 받았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집 1권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아르센 뤼팽은 어떤 추리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는 천재적이고 다재다능한 괴도 '뤼팽'이라는 캐릭터의  모험 연대기에 가깝다고 느꼈다. 논리적인 추리나 트릭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탐정 소설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괴도이다 보니 어느 정도 뭉뚱그리거나 캐릭터의 완전무결한 절대적 능력과 계획에 의존하여 흘러가는 경향이 강하다. 고전 작품으로 비유하자면 전우치전, 홍길동전, 영화로 비유하자면 인디아나존스의 모험 정도라고 예를 들자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또한 아르센 뤼팽이라는 캐릭터는 냉정하고 이지적이며 나름 신사적인 셜록 홈즈에 비해서 들떠있고 조금쯤 감정이 과잉되어 있거나 지나치게 제멋대로인 느낌이 강하다. 의적(?)이라는 캐릭터의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르센 뤼팽VS셜록 홈즈 챕터에 가서는 정통 추리나 모험에 대한 문학 자체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라이벌인 국가간(프랑스VS영국), 캐릭터간(뤼팽VS홈즈)의 자존심싸움 때문에 득보다는 소모적인 실이 더 큰 챕터가 아니었나 아쉬움이 남는다. 프랑스의 자존심을 위해 셜록 홈즈를 너무 후려치다 보니 트릭 자체의 재미나 팽팽한 기싸움에서 오는 스릴보다는 뤼팽 띄워주기에 그쳤기 떄문이다. 그래서 정통 추리 장르로 생각하고 아르센 뤼팽을 접한다면 처음엔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는 느낌. 셜록 홈즈에 비해 인지도나 팬층이 조금 더 약한 것은 아마 그 기대와 실제간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인 추리 장르에 대한 기대보다는 한 시대를 아우른 명작, 수많은 파생 상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도둑을 상징하는 대명사, 범죄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 이후 출현하게 된 괴도 캐릭터의 모태가 되는 '고전'에 대한 인지와 기대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추천하는 책이다. 아울러 번역가와 출판사의 노고에는 다시 한 번 감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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