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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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포터의 두번째 책이다. 한겨레출판에서 매월 출판하는 책들을 먼저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서평지원 활동단 이름이다. 많은 책들을 신청해서 읽고 싶은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는 한 달에 한 권이 적당한 것 같다. 다른 할 일이 많다.


  이 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글쎄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선택하는 책들을, 왜 골랐는지 짧게라도 좀 적어둬야 겠다. 책을 읽고 나서 꼭 뭐라도 남겨둬야지 하면서도, 그때 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들을 적어두지 않는다. 읽어 나가는 흐름이 끊기는게 싫다. 그리고 서평을 남기면서 생각나겠지, 하는 마음도 있는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물론 생각나는 느낌들도 있지만, 잊어버리는 생각과 느낌들도 적지 않다. 이제는 메모하는 습관을 좀 가져야 겠다. 메모로 인해 흐름이 끊기지도 않는다. 핑계일 뿐이다.


  우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 했던 부분은 저자가 이윤기 선생님의 자제 분이라는 것이다. 뭔가 좀 아빠 찬스의 느낌이 들긴 했는데(그래서 좀 불편했는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런 느낌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본인의 에피소드 속에서도 아빠 찬스에 대한 소회(밀레니엄 힐튼이라던가 만년필 부분 등에서)가 적혀 있는데, 내가 처음 느꼈던 그 불편했던 느낌도 저자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기와 질투' 말이다.


  중반까지 읽으면서 조금은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에 다소 지루해지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읽게 되는 뭔가가 있었다. 뭘까. 종반으로 오면서는 뭔가 나와 비슷한 부분들도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건 삶 속에 반감같은 것이 있다는 거였다.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짜증 비슷한 것인데, 버럭으로 대변되는 이경규님의 그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여튼 저자도 그 짜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고찰해 보고 있는데, 그 고찰의 끝도 비슷했다. 시기와 질투.


  나와 남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그 모자람과 아쉬움, 그리고 불편함들. 그런데 또 자기애는 있다. 삶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짜증. 놀랍도록 비슷했다. 그래서 끝까지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느낌을 되새기면서, 나를 돌아보면서 말이다. 에필로그에서 말한 내편을 얻는 듯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최근에 본 '아무튼' 시리즈와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아무튼, 소비?' 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책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의 사고가 더 경직되어 있어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만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고집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의 경험 부족과 결합된 철없고 굳세기만 한 신념도 웬만하면 꺾기가 힘들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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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그림책이 참 좋아 94
최숙희 지음 / 책읽는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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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생기면 책을 많이 읽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TV나 영화에서 보듯이 자기 전에 누워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속의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속의 아빠는 피곤에 지쳐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를 무서워할 때가 많았다. 그것만 빼면, 뭐,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닌, 비슷한 잠자리의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첫째 아이는 태교로 책을 읽어 주곤 했다. 둘째는 피곤하기도 했고, 첫째를 재우기 위해선 아이에게 태교로 책을 읽어줄 짬이 없었다. 뭐, 이것도 물론 핑계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첫째 아이가 둘째 아이보다 책을 좋아한다. 기분 탓일게다.


  다른 집들을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집에 책이 없는 편은 아니다. 아이들 책도 많이 산 것 같다. 첫째 아이는 정말 그 책들을 한 번씩은 다 본 것 같다. 모두 다 읽어줬던 걸 기억하면, 엄마 혹은 아빠도 역시 그 책들을 한번씩은 다 읽은 셈이다. 대부분 기계적으로 읽곤 했는데, 가끔 정말 감정적으로 교감을 하며 읽은 책들도 있었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꼭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싶은 책일 것 같았다. 아이들의 감정이 다양한 색깔이길 항상 바라고 있었다. 늘 밝고 예쁜 색깔이면 좋겠지만, 안 좋은 기분일 때의 다른 색깔들에 대한 기분들도 느끼길 원했다. 이 책은 그래서 골랐고, 나의 바람이 그래도 어느정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의도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뭔가 고정적인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색깔과 기분이 대부분 이 책과 연결이 된다. 그런 면이 뭔가 고정적이랄까. 아이들의 다양한 기분이 더 다양한 색깔들과 연결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어떻게 읽어주면 좋을까. 그 고민을 안고 오늘은 이 책을 읽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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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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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작가님의 소설들은 언제나 제목에 끌린다. 뭔가 멋지다는 생각이다. 멋진 제목만큼이나 늘 소설은 재미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분이다. 이 소설집 역시 멋지고 재미나다. 첫 소설과 마지막 소설을 읽고 나면, 어렴풋하게 나마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자전적인 소설일까. 소설가인 주인공이 아내와 만나게 된 일과 장모님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 책을 구입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인 멋진 제목만큼이나 재밌는 소설이다. 약간 염세적이지만 끝은 희망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 희망은 평범하며,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소설이라면, <재와 먼지>도 찾아 읽어 보고 싶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강연 요청으로 추자도에 들어간 주인공은 대학시절 친구를 그곳에서 만난다. 그러면서 옛 친구와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무언가 좌절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이다.


<진주의 결말>

진실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확신은 믿음에서 오는 것일텐데, 믿음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지 않을까?

치매의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오던 유진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살인 조사를 받게되는 용의자가 된다. 이야기는 이 사건을 담당하는 범죄 심리 전문가와 유진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결론은 나지만, 결말은 없다. 확신에 대한 잘못이나 보상도 없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달 글귀가 좋았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삶은 기간이 다를 뿐이지 모두가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 그 끝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짧게 느껴지는 생(生)이 있다. 그 짧은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죽음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은,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것이다. 그 경험이 우리를 비관주의의 삶에서 낙관주의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나아질 것 없는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낙관적으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그 낙관주의이고, 그 이야기가 삶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엄마 없는 아이들>

제목은 소설 읽기를 시작하는 것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일까. 여전히 아직까지도 나는 상실이 주는 아픔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누군들 편하겠는가. 그냥 못 본척 마주하지 않는 방법을 쓰고 있을 뿐이다. 다만 소설의 주인공은 자의는 아니지만, 성공적으로 상실이 주는 아픔과 마주하고 대면하는 데 성공한다.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애써 모르는 체하는 내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안도했고, 응원했고, 부러웠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눈을 뗄 수 없었다. 공포 영화를 보듯 몸이 떨려왔지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TV를 몇 날이고 쳐다봤다. 대상을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그 해 4월을 보냈었던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상당하다. 특히나 슬픔이 동반된 죽음의 기억은 그 파급력이나 지속성에서 상당했다. 기억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망각이라는 단어로 잊혀지지도 않는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회상되지 않도록 희미해지는 정도다.

만약 은주가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나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라도 기억하기에 애써볼 것이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르에게>

왜 미래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가. 어쩌면 주제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닿아 있는 듯 하다. 천주교가 등장하지만, 특정 종교보다는 근원적인 믿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육신의 삶과 정신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육신의 삶으로 신을 찾기에 우리는 늘 방황하며 결과에 좌절한다. 하지만 정신의 삶 속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어리석을 뿐이다. 생각이 그치면 존재는 당연히 느낄 수 있다. 그 기저에 함께 존재하는 사랑까지도 말이다. 삶에 더 감사하며, 타인에게 더욱 다정해야 한다. 어둠과 빛 중에서 선택은 항상 '빛'이어야만 한다.

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 P23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 P26

다른 생각을 한번 해 보세요. 평소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해도 좋구요. 서핑을 배우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 결심만 해도 좋아요. 아무런 이유 없이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거나.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에요. - P27

용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할 때 가능해집니다. - P30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 P34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달을 향해 걷는 것처럼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이라고. - P97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 P121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 P121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인생에는 있는 법이다. - P147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 P181

첫번째 사랑은 두번째 사랑으로만, 그리고 그 모든 사랑은 마지막 사랑으로만 잊히는 법이니까. - P193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 P196

꽃이 지는 건 꽃철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끝나는 건, 이제 두 사람 중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 P206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해도 그중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명뿐이라고,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 P207

하지만 이후 사십여 년에 걸친 공부를 통해 이성으로 신의 존재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네. 그래서 나는 신을 직접 체험한 신비주의자들, 예컨대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등에 관한 책을 읽었지.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됐네. 지금 이 순간, 신은 늘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이 그치면 바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이란 육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걱정과 슬픔,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 생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정신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 정신의 삶은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서로 겹쳐지면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 현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매 순간 육신의 삶으로 되돌아가 다시 기뻐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화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겹쳐진 정신의 삶, 그 기저에 현존하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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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2 - 신혼,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김세영 지음, 허영만 그림 / 김영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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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사이트에서 열 몇권의 책을 나눔받았다. 그 책들 사이에 <사랑해> 1권과 2권도 함께 있었다. 꽤 긴 시리즈로 기억되는데, 왜 2권까지만 있었을까. 뒷 번호의 권들이 있었다면, 앞부분은 이미 공유되었거나 뭐 그랬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2권을 읽으며 생각이 들었다. 뭐 얻어 읽는데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뒷 권만 있는 것보다는 앞권부터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1권에서 느껴지던 현실적인 공감대가 2권에 와서는 많이 사라지는 모습이다. 등장인물 간의 나이차에서 비롯되는 설정일지는 모르겠지만, 한량스럽고 약간의 남성적인 시각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듯한 철수의 모습이 (현실적이었는지 모르지만), 같은 성별의 내게는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져 보였다. 부러움이 생긴 나머지 질투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뭔가 여유가 부족한 상황의 내 모습에 비해 생활에서도, 육아에서도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사랑의 범주가 1권에 비해 확장된 모습은 확연히 나타났다. 부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 외에는 거의 다른 시간 없이 육아에 매달리는 모습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없다고, 삶에 지친다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이렇게 표현하니 뭔가 의무적인 것 같다), 아니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삶의 바탕이 사랑임에도, 순간의 지침과 힘듦에 울컥 울컥 하지는 않았었는지 말이다. 지나간 것들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러나 저러나,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럼 3권은? 아니. <사랑해>는 여기까지만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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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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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 작가를 좋아한다. 왜 그런지 이유를 딱히 찾아보진 않았는데, 그냥 처음 읽었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소설은 왜 재밌었을까. 그것도 딱히 생각해보진 않았다. 뭐든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런 피곤한 일에 발을 애시당초 들일 생각도 없다. 장금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 말했을 뿐이라고.". 재밌는 건 그냥 재밌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책을 읽고 있을까?' 현수동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다. 작가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실존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도 모델로 삼은 지역들이 있고, 그 지역들에 대한 이야기가 현수동의 바탕이 되긴 한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작가가 생각하는 실존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도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오히려 만들어진 이야기이기에 재밌게 읽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


  우선 가독성이 있었다. 보고서를 많이 쓰기도 하지만, 많이 읽기도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최근에 부서를 이동하면서 옮겨온 부서에서 작성한 보고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쓴 보고서들도 이럴까,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졌다. 읽기가 힘들었다. 이 책이 딱히 재밌었던 것은 아닌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이유가 가독성이었던것 같고, 가독성은 논리적인 측면과 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가 논리적이었고, 구성, 즉 스토리라인의 흐름이 좋았다. 가독성이 좋았다. 그게 내가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였고, 이 책을 좋아한 이유였다.


  현수동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지역에 대해 추가적으로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나 지역을 좋아하고는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저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어딘가를 가 보고 싶은데,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그런 공간들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 정도를 해 봤을 뿐이다. 장강명 작가가 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공간에 대해서 무언가를 주장할 권리는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아직은 또 핑계거리만 늘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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