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평등 -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지음, 장경덕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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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을 좋아한다.

<공정하다는 착각>,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두 권 모두 내게는

읽는 즉시 이해될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필사를 활용하며 지극히 느린 독서에 몰입할 정도로

제법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오랜만에 와이즈베리 신간으로 마이클 샌델의 말을 엮은 책을 만났다.

이번에는 토마 피케티가 소속된 파리경제대학의 주최로

2024년 5월에 두 석학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소득과 불평등에 대해 연구해 온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과학자인 토마 피케티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이자 대중 지식인의

"평등"에 대한 고찰이자 대담을 글로 편집한 것이다.

입말을 듣는 것처럼 가독성은 좋은 편이지만

내용에 대한 이해도는 독자마다 개인차가 있음을 밝힌다.^^



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하고자 하는 방법을 논하기 위해

마이클 샌델은 이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되짚어보면

198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날이 갈수록 그 지배권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부와 권력에 모든 힘이 몰리다 보니

결국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너무 극명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유럽의 경우 가장 부유한 계층 10%가 전체 소득의 1/3 이상을 가져가고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부의 집중이 정치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심지어 인간의 존엄성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바로

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이다.

신자유주의를 보여주는 이 세가지 요소 중에서

그 무엇보다 취약하면서도 끝까지 지켜야할 인간의 존엄성에

위해를 가하는 능력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이미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그 때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제안했던

아이비리그 추첨제에 대해 두 석학의 핑퐁 대화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다.

아이비리그 추첨제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아마도 샌델이 이러한 방식을 제안한 기저에는

교육이나 의료는 빈부의 영향력이 기본재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주의자의 관념이 깔려있는 것일테다.

더불어 행운이라는 것 역시 빈부를 가리지 않고 돌아가듯

모든 것이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 또한 아니라는 교훈을

깨닫게 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유명 대학들의 소득은 당연히 이 사회 시스템의 소산이기 때문에

일부 특권층에게만 기회가 돌아가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클 샌델이 아이비리그 추첨제나

소수 엘리트 사립대들의 특례입학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배권을 갖고 있는 일부 엘리트 세습 계층들로부터

기본재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재에 대한 접근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이 점이 불평등과 가장 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승자는 오만하게 만들고 뒤처진 이들은 그들의 실패가 오롯이

자신들의 탓이라고 자책하게 만드는 능력주의.

사회적 패자들 조차도 능력주의가 만든 잘못된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설득되어 가면서 가스라이팅 당하는 현 상황은

저절로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절대로 빈자들은 가난할 만해서 가난하고,

부자들은 부유할 자격이 있어서 부유한 것이 아니다.

높은 소득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높은 학력을 가져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하는 능력주의 사회가 지속되다가는

결국 공동선이 소멸되며 존엄성이 상실된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통과 권위의 틀로부터 벗어나 현대성이 고조되면서

민주 의식도 높아지고 있고 사회적 기회는 공평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불공정함 없이 기본재에 모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형태로의 참여와 존엄성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본다.

나아가 희망적인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긴 할지라도

역사적으로 점점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있어서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작년 12월, 대한민국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며

시민을 향해 시민으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어이없게 행사하려 했지만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와

비상식적인 명령에 대해 소극적으로 임했던 정의로운 군인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던 시민들의 저지로 독재의 야욕이 실패에 돌아감으로써

다시 점점 상식과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는 양상과 같다고 본다.

다시 위 질문으로 돌아가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이유를 3가지로 꼽았는데

이는 다시 말해서 평등의 3가지 측면을 의미하기도 하며

우리 사회에 평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일테다.

경제, 정치, 존중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자든, 빈자든 각자의 영역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그들 사이에 소득 격차도 지금보다 줄어듦으로써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평등한 커뮤니티를 유지, 확장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두 석학 모두 이것이 바로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면서

삶을 공유하는 방식과 인식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부와 권력이 단순히

개인적인 성취에 따른 것이 아닌

집단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화되는 이 세상에 끊임없이 그 위험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살아갈 때

비로소 모두가 추구하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 또한 같이 상승하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을 넘어서서 공동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기울어진 평등>을 만난 후에 더 강해졌다.

책 제목처럼 나의 생각 또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중요시하는 공동선 추구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뇌는 흥미롭게 여기는 쪽으로 기억과 인지가 강화되는 것을.



<기울어진 평등>을 덮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1인이다 보니 역시나

토마 피케티 교수의 제언들은

선명하게 내 안에 콕~ 와닿지는 못했다....^^;;

누진 세제의 필요성에 대해서 두 석학이 동의하고 있지만

그 전에 상호책임과 소속감을 통해 공동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인간중심적 인식에 또 한번 깊이 공감한다.

나의 정치철학 마인드가 무엇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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