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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철학적 의미에서 성숙이란 무엇인가"
자기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때부터 중년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계기가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한창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에 집중하던 내게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각성의 시간이 있었고
이전보다 조금 더 인생 나침반을 나 중심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 이후로 전반적인 자기 관리를 통해
늘 또래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지만
40대 초반까지와는 다르게 요즘 들어
칭찬처럼 들려오는 걸 보면
신체에 나타나는 여러 노화의 증거들을
현실로 슬슬 받아들이는 중인가도 싶다.
주변인들을 볼 때, 전에 없던 신체적 고통이 잦아들고
삶의 불확실성이 비대해져 갈 때면
인생의 공허함이 유독 크게 다가오는 듯 하다.
그러다 보면 점점 삶의 즐거움도 줄어드는 것 같고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어 인생에 대한 비약도 심해진다.
그럴 때면 다시 마인드 콘트롤을 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느끼는 삶도 좋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요즘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에서 접한 한 줄이
내면을 고요하게 만든다.
"인간 존재는 살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갈 뿐...
그저 살아갈 뿐이다"
아무리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할지라도 후회는 남는다.
인생의 디폴트값은 후회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
완전무결한 인생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질적인 것에 스며드는 것에서부터
성숙의 과정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창 바빴던 시간은 흘러가고 여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이 때가
내게는 또 하나의 행복이다.
또 하나의 행복은 간헐적으로 철학 에세이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중년이 되면서 더해지는 듯 싶다.
다양한 경험과 습관들이 축적되어 가면서
여러가지가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찜찜함 없이 잘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말끔한 상태에서 나아갈 수도 없다.
어차피 불완전함과 후회, 그리고 고통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내가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의해서 철학 에세이를 찾게 되고
이번에 나에게 발견된 신간이 스위스와 독일 대중이 사랑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바르바라 블라이슈의 책이다.
오십의 삶을 뒤흔드는 질문들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후회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십은 과연 인생의 정점일까
숨가쁘게 달려왔는데 무엇이 남았는가
설렘과 경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살아있기에 길을 잃는다
"중년"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길 잃음"이 눈에 띈다.
많은 예술가들도 이미 중년에 결정적인 성격 변화를 겪으며
삶의 의문을 가졌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나 문득 의구심이 생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들도 있다.
삶의 만족도에 관한 자기보고식 국제조사 데이터에서도
개인 삶의 만족도는 중년기에 최저점에 도달한 뒤
점차 상승한다고 했다.
경험, 인식, 거리두기.... 많은 일을 경험도 해봤고,
다양한 인식의 틀을 탑재할 수 있었고
많은 일을 관망할 줄 알게 되는 시기.
잠시 멈춰 서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
앞으로 맞이할 미래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삶의 태도를 갱신하는 시기.
이 철학 에세이에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서 실존적 의문을 제기하고,
무엇이 최선인지 탐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야말로 지금이 중년인가 보다.
작년 말부터 실존에 대한 의문이 커졌고
심리적 독립으로 충분치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이전의 의존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과정이 있었고
올해부터 제2의 삶, 일하는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실존적 자각을 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이 와중에 점점 커가는 인식은 혼자서 잘 살아갈수는 없다는 것.
연대하고 공감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때 인생이 더더욱 충만해 진다는 것.
존 롤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역사는 홀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를 읽고 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재되어 있던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채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계속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 안의 좋은 덕목들이 잠들지 않게, 깨어있는 삶을
앞으로도 쭉 영위하고 싶다는 바램이 커져 간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 혼자만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과 행운의 결과물일 때가 많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지배했다는 3가지 열정은
지나가던 나 역시 붙들어 세우는 구절이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색
인류의 고통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
극단적인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내 안의 강점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세 번째 열정이 유독 나를 눈물짓게 한다.

의연하게 내 인생에서 내 갈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내가 책임지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
표현은 상투적일지 모르겠으나 내게 전해지는
이 한 줄의 임팩트는 강렬하게 남는다.
중년에 관한 철학 에세이 속에서 성숙과 실존에 대한 궁금증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해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