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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
홀리 그라마치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9월
평점 :
살다 보면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내 인생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내 맘에 들 순 없으니 말이다.
이럴 때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면
바로 내 맘대로 상상하고 이야기로 만들어 보는 것!
호주 출신 작가 홀리 그라마치오가 바로 이러한 특권을
<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라는 로맨스 판타지 안에 구현해낸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을 되돌려 나의 가까운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설계해갈 수 있게 해준다고 누군가가 제안한다면...
이것은 과연 달콤한 유혹일까, 아니면 쓰디쓴 후회로 남을까?
'달콤한 유혹'이라고 한다면 역사상 이만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괴테가 남긴 희곡 <파우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거래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
얘기치 못하게 여러 고난을 겪는 파우스트 박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훌륭한 고전들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깨달음도 얻는다.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인지
이번 영미소설에서 현대적인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
중독성있고 달디단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내가 만약 끊임없이 새로운 남편을 맞이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생의 시작을 거듭하는 "로렌"이라면
이 상황이 과연 내게 이로운 변화를 줄까?
'이 비현실적인 연애와 결혼이 로렌에게 궁극적으로
행복을 안겨줄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 하는 소설이다.
결혼을 앞둔 친구 엘레나를 위한 축하 모임에 다녀온 로렌은
술에 조금 취한 상태로 자신의 집에서 황당한 일을 마주한다.
처음 보는 남자가 남편이라며 다가온다!
다락방에서 남편이 내려오는 상황이 당연하다 여길 정도로
로렌은 그렇게 정신이 없진 않았었다.
하루 아침에 유부녀가 된 이 비현실적인 사건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분명히 내 집인데 저 새로운 남자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집안 곳곳에서 보이는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읽어 내려가는데
나도 여자라서 그럴까 이질감 하나없이 곧바로 몰입하고 있다.
지금껏 로렌은 자신이 어떤 남편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편을 바꿔왔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엘레나의 결혼식이 일주일 남았다.
일단 결혼식에 데려갈 괜찮은 남자를 찾는 게 먼저다.
완벽한 남편이 아닌, 결혼식 파트너로 완벽한 사람.
나머지는 나중 문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어쩌면 로렌에게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괜찮은 남편감을 찾기 위해
다락방에서 내려오는 프레쉬~한 남편들을 마다하지 않고 겪어낸다.
물론.... 이 사람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다락방으로 돌려 보내서
RESET 상황을 만들고 새로운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도 하고.
내 입맛에 맞는 남편을 고를 수 있는 로렌의 상황과
다양한 남편감들의 면면을 지켜 보다 보면
책 속에 들어가 있다가도 문득 다시 책 밖으로 나와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200명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슬그머니 걱정도 앞선다.
인생이란 게 물론 예측불가능한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은 안정성을 추구하기도 하는 본성이 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로렌은 지금의 생활을 돌이켜본다.
자신의 남편감으로 알맞지 않아서 다시 다락방으로 보내고
때로는 꽤 괜찮은 남편감을 만나기도 하지만
지내다 보니 또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회로가 작동해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어떤 결정적인 만남이 있고 난 후 로렌은 각성한다.
무언가 거대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로렌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더이상 남편들이 내려올 다락방은 없다!"
가만히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남편감을 맞이하지 않고
드디어 로렌이 직접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나의 선택이 앞으로 인생에 어떻게 작용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내가 책임지면 되지 않은가.
그것이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삶이겠지!
일주일 동안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때로는 나의 아지트 스타벅스에서,그리고 특별한 어떤 날에는 절벽뷰가 멋진 원주의 스톤 크릭 카페에서
북폴리오의 영미 신간소설 <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를 혼자 읽으며
무심코 터져 나오는 어이없음에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소설이 주는 이야기의 맛을 본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