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종소리> 속에 있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은 소설에 그치지 않고
영화로까지 손을 뻗게 했다.
내가 이 영화를 언제 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 참에 한 번 보자고 알아보다가 고딩 딸아이가 웨이브 구독중인 것도 알고....ㅎㅎㅎ
덕분에 1300원에 이틀 대여하여 1994년 영화를 좋은 화질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 보니 얼핏 오래 전에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때 본 것과 이번에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보이는 건 너무나도 달랐다.
이디스 워튼의 삶과 그녀가 남긴 소설이 어김없이 중첩될 리도 없고
그럴 필요 또한 없으나 묘하게 영향력이 전해진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미국의 명성있는 가문에서 부족함없이 살았던 이디스 워튼은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했고 다른 남자로부터 사랑의 감정도 느꼈지만
그 상대가 진심이 아니었음을 경험했다.
이 모든 인생의 경험들을 거치고 난 후에 그녀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 모조리 녹여낸 듯
인간의 다분히 사회적이고 모순적이며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
당대 사회의 관습과 인간을 틀에 가두는 친화적이지 않은 사회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캣우먼' 이미지로 너무 강하게 자리잡혀 있던
미셸 파이퍼의 엘렌 올렌스카 연기는 또 다른 배우의 모습을 겹씌워 주었다.
누구나 사랑 앞에서는 순수하고 싶지만 사교계라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결코 용감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순애보를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간절히 원하는 사랑이고 사람이었지만 그녀와 함께한다는 건
상처로 점철될 자신의 미래가 동시에 그려진다.
저 훤칠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제는 60대 후반이 되었다니....
멜로 목소리를 장착한 뉴랜드 아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말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메이의 저 사랑스러움은 또 어쩌면 좋을까.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남자이지만 내밀하게 보면 사촌 언니에게
마음이 가 있는 남자를 어떻게 곁에 두고 볼 수 있었을까.
저마다의 입장에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고뇌와 고통들을
꾹꾹 참아내고 감당해내는 작중인물들의 인생이 애처롭다.
또한 개인은 결코 단독으로 생을 이어갈 수 없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강력함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특히 여성을 둘러싼 사회는 마치 생물인 것처럼 왠지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남녀가 같은 일을 겪어도 사회로부터 입게 되는 타격은 왜 늘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은 나혜석 화가.
늘 내 마음 한 켠 애처로운 인생을 살다간 인물로 기억하는 이다.
잠들기 전 영화 한 편으로 너무 좋았고 그래서 여운도 많이 남았던 작품이다.
<순수의 시대>를 소설로 오래 전에 읽어봤고 이번에 영화까지 보니
이디스 워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던 <이선 프롬>이나 <여름>도 책 속에서 언급했으니 조만간 한 번 들여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