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종소리 - 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
김하나 지음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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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부터 나혼자 노려보고 있던 김하나 작가의

신간이 독서 에세이 장르로 민음사에서 한 여름에 나왔고 이제서야 완독이다!

표지부터 뭔가 매혹적이야~~^^

내용을 들여다보니 자유롭고 쾌락적인 것, 맞다.

김하나 작가의 마음의 소리와 감탄의 언어들이 틀에 박히지 않아 좋았다.

그녀가 고른 고전 다섯 작품에 대해서 구석구석 온통

감탄만 했더라면 쉽게 질렸을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일상의 언어가 음성지원되어 호불호가 분명하게 전해지면서

독자 또한 저자의 의도에 홀리듯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인 독서가 되지 않게 하는 데 은은한 영향력을 미쳤다.

저자처럼 독자 역시도 자유로운 독서 행위를 가능케 했다.

이 와중에 참 신기한 것은 저마다의 감탄의 언어에 있어서 표현은 달라도

그 울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짐작해 본다.

나만의 느낌적인 느낌~~



7월 말, 여름 휴가 시즌에 군산에 다녀왔었다.

그리고 여행 가는 곳마다 영순위로 검색해 보는 것이 동네책방이어서

알아보니 "마리서사"가 뜨고

숙소 바로 옆에 있으니 안 갈 이유가 없지!

갔더니 딱.... <금빛 종소리>가 책등이 아닌 책표지가 보이게 정면에 누워있다.

반가움.^^




저자는 고전 읽기를 가리켜 "세계의 교양에 접속하는 일" 이라고 했다.

단순히 다른 시대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공간의 어떤 정신을 체험하는 일이라고.

고전이 다른 장르에 비해 독보적인 지점은

바로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쳤다는 걸테다.

오래 전 탄생한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금속성 종소리처럼

독자들에 의해 읽히고 전해져 2024년 현재까지 그 울림을 감각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금빛 종소리>라고 은유하게 되었으리라.

개인적인 경험치에 근거하여 민음사의 독서 에세이는 믿고 본다.

그 수많은 고전 중에서 이렇게 다섯 작품을 선별하기까지

저자의 신발을 신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개인적인 고뇌가 있었을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영문학도로서 추앙해 마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맥베스>

카프카의 <변신>을 김하나 작가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건 내게 반가움과 동시에 행운이었다.

좋은 느낌을 깔고 직접 펼쳐 봐도 역시는 역시!

작품을 다시 찾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거기에 이미 알고 있던 이디스 워튼과 그녀의 소설 <순수의 시대>

또 다른 이의 감각을 통해 새롭게 읽혔고

잊고 있었던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해주었다.

어찌 되었건 독자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지라...

아우라와 회상록은 다음을 기약했다. ㅋㅋㅋ

어떻게 저자와 독자의 취향이 톱니바퀴처럼 다 맞을 수 있겠어....

그렇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금빛 종소리> 속에 있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은 소설에 그치지 않고

영화로까지 손을 뻗게 했다.

내가 이 영화를 언제 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 참에 한 번 보자고 알아보다가 고딩 딸아이가 웨이브 구독중인 것도 알고....ㅎㅎㅎ

덕분에 1300원에 이틀 대여하여 1994년 영화를 좋은 화질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 보니 얼핏 오래 전에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때 본 것과 이번에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보이는 건 너무나도 달랐다.

이디스 워튼의 삶과 그녀가 남긴 소설이 어김없이 중첩될 리도 없고

그럴 필요 또한 없으나 묘하게 영향력이 전해진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미국의 명성있는 가문에서 부족함없이 살았던 이디스 워튼은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했고 다른 남자로부터 사랑의 감정도 느꼈지만

그 상대가 진심이 아니었음을 경험했다.

이 모든 인생의 경험들을 거치고 난 후에 그녀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 모조리 녹여낸 듯

인간의 다분히 사회적이고 모순적이며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

당대 사회의 관습과 인간을 틀에 가두는 친화적이지 않은 사회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캣우먼' 이미지로 너무 강하게 자리잡혀 있던

미셸 파이퍼의 엘렌 올렌스카 연기는 또 다른 배우의 모습을 겹씌워 주었다.

누구나 사랑 앞에서는 순수하고 싶지만 사교계라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결코 용감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순애보를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간절히 원하는 사랑이고 사람이었지만 그녀와 함께한다는 건

상처로 점철될 자신의 미래가 동시에 그려진다.

저 훤칠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제는 60대 후반이 되었다니....

멜로 목소리를 장착한 뉴랜드 아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말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메이의 저 사랑스러움은 또 어쩌면 좋을까.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남자이지만 내밀하게 보면 사촌 언니에게

마음이 가 있는 남자를 어떻게 곁에 두고 볼 수 있었을까.

저마다의 입장에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고뇌와 고통들을

꾹꾹 참아내고 감당해내는 작중인물들의 인생이 애처롭다.

또한 개인은 결코 단독으로 생을 이어갈 수 없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강력함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특히 여성을 둘러싼 사회는 마치 생물인 것처럼 왠지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남녀가 같은 일을 겪어도 사회로부터 입게 되는 타격은 왜 늘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은 나혜석 화가.

늘 내 마음 한 켠 애처로운 인생을 살다간 인물로 기억하는 이다.

잠들기 전 영화 한 편으로 너무 좋았고 그래서 여운도 많이 남았던 작품이다.

<순수의 시대>를 소설로 오래 전에 읽어봤고 이번에 영화까지 보니

이디스 워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던 <이선 프롬>이나 <여름>도 책 속에서 언급했으니 조만간 한 번 들여다 봐야겠다.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그야말로 문제작 <변신>.

작가 자신이 작품 속에 표현한 그 곤충은 그림으로 묘사할 수 없고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남겨두고 싶은 이유인지

표지에 그림으로 그리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편지를 보냈다 한다.

창작자가 이렇게 부탁을 했음에도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변신>이라는 소설 속 해충을 각자의 방식대로 거침없이 묘사하고 있다....;;

모르면 몰라도 이제는 알았으니

앞으로 보게 될 <변신>의 해충 그림들은

창작자의 의도와는 관계 없다는 문구를 스스로 달아가며 봐야할 듯.



외판원으로 가장처럼 가족들의 생계를 온통 책임져 왔지만

하루 아침에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버리고 나니

가장 혜택을 받았던 여동생 그레타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돌보고, 참아 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다했어요."

그레고르 잠자는 이제 가장 이해받고 공감받아야 할 가족들에게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 '이것'이 되어버렸다.

운명공동체에서 배제되고 버려지면, 인간은....한 개인은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존엄하고 고유한 인간의 존재가 그저 쓸모라는 가치로 매겨진다는 점이

씁쓸함을 진하게 남기는 작품이다.

오래 전 대학로에서 연극으로도 접했던 작품일 정도로

늘 관심이 가는 카프카이고 소설 <변신>을 김하나 작가의 프리즘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이 창작해낸 그 벌레를 절대 그림으로 묘사하지 말라는

카프카의 당부가 있긴 했지만

학원 제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그림이 있는 문학동네 버전으로 빌려보았다.



피날레는 역시 셰익스피어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4대 비극이지만

이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늘 <리어왕>이었다.

이순재 배우님의 연극도 보러 갈 정도로 애정하는 작품인데,

늘 고민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바로 <맥베스>.

인간이 결코 해낼 수 없는 미래를 예언했던 세 마녀와

맥베스 부인의 존재감은 다양한 창작품들로 변주되어 왔다.

이번에 김하나 작가를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은

작품 후반에 남긴 맥베스의 독백 대사이다.

유튜브로도 접할 수 있다는 정보를 보자마자 책을 덮고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 몰입하여 감상했다



직접 내 눈으로 이 영상을 보고도

<반지의 제왕> 속 간달프 배우와의 연결은 상상도 못 했었다...ㅠ

이언 맥켈런.... 간달프 그 배우가 젊은 시절 맥베스를 연기했던 연극배우였다니!

너무 몰라봤네.... 내가 잘못했네....^^;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 압도되고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마치 맥베스가 이렇듯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상상이 머리 속에서 이내 자리잡는다.

<맥베스> 5막 5장에서 맥베스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며 읊는 독백 대사인데 마치 시 같기도 하다.

소네트를 많이 남겼던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희곡에서도 만난 것처럼.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세 마녀의 예언과 맥베스 부인의 부추김에 의해

잠들어 있던 맥베스의 욕망이 고개를 들고 결국은 자기 파멸에 이르는 비극 <맥베스>.

비극은 작중 인물들의 '성격적 결함'에 의해 끝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켜 본다.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용되는 이 맥베스의 독백 대사를

김하나 작가가 소개해준 덕분에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인생의 덧없음과 모순적인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Life is but a walking shadow.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

너무 인상적이어서 프사 문구로 바로 업데이트다!

맥베스라면 인생의 공허함이 짙게 깔린 상태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을 테지만 나는 허무함으로만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

그 허무함을 경계하는 힘으로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당당하게,

염치를 아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인생에서의 다양한 가치와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고전 작품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껴본 시간이었다.

<금빛 종소리>는 무조건 소장각!

독서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완전 강추다.



다섯 작품에 들어가기도 전에 서문에서부터 영업당하고

주문한 책은 진 리스의 <Wide Sargasso Sea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번역본까지 품절이다 보니 중고책 값에 놀라며

비평과 원서를 모은 이 책으로 결정했다.

덕분에(?) 원서로 이 소설을 접해 볼란다.

제인 에어와 사랑에 빠진 로체스터는 왜 부인 버사를 다락방에 가뒀을까?

버사는 원래 어떤 여자였을까?

아직 읽지 않아 내용을 모르지만 원작에 대한 변주를 너무 좋아하기에

이미 이 작품에 대해서도 기대만땅 ㅎㅎㅎ

틈틈히 읽어보자!



내가 소장하고 있는 <금빛 종소리> 속 원작들.

김하나 작가로부터 온 자극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이 다시금 읽고 싶어졌다.

요즘 조금씩 지쳐가는 시기였는데

비극 속 인물들을 접하고 보니 나의 힘듦은 그저 먼지로 여겨지는 효과도 있다.

비극이 현실적 고통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이렇게 현생의 고통을 견디고 버텨온 나의 극복의 역사를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착실하게 누적시켜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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