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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 2022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라자니 라로카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2년 6월
평점 :

"어린이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뉴베리상은
시니가니가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이 지냈으면 하는 바램으로
수상작들을 가능한 많이 접하도록 해왔었다.
1922년에 제정된 전통있는 아동 문학상이기 때문에
어린이,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읽히고 싶은 책이다.
2022년에도 역시 뉴베리 수상작들은 발표되었고,
그 중에서 우수상에 속하는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한 편을 오랜만에 만났다.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대상은 금박 장식이었는데 아너상은 우수상이어서 은박인가보다.^^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를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에
내 아이들과 뉴베리 수상작의 인연을 되짚어 보고 싶다.
밝은미래 출판사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뉴베리 수상작들을 출간하고 있고
그렇게 내 아이들은 2015년 <엘 데포>, 2018년 <안녕, 우주>,
2020년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를 만났다.
시니가니가 성장하던 시기에 만났던 뉴베리 수상작들 중에서
현재 고2, 중2가 되었어도 여전히 옆에 두고 읽는 책이 있다.
엄마가 독서에 몰입하게 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시니가니 역시 책 보다가 잠드는 경우가 많은데
책장에 있는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아이들이 선택한 책이 바로 <엘 데포> 이다.
그렇게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정말 자주 본다.
볼 때마다 재밌다고 한다.
엄마 생각에는 골고루 봤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봤던 책을 보고, 또 보고.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인내하고 3번까지는 넘어가지만
계속 그 책만 보면 다른 좋은 책들도 너무 많은데....싶은 생각이 속에서 차오른다.
얼마전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듣고 늘 품고 있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성장 동화나 어린이 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어린이이고
내면의 심리 묘사와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미숙하지만
그러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어 삶이 변해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아이들은 정서적인 만족감을 얻는다고.
똑같은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내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누구보다도 바랄 텐데
같은 책 읽기를 방해하는 건 곧 내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무지한 행동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책이라는 건 이렇듯 시간이 흘러도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누구나에게 있고
그런 좋은 기억으로 남을 확률이 높은 책 시리즈에
뉴베리 수상작들이 포함된다는 나의 사적인 경험치를 남겨보는 바이다.
시니가니에게 <엘 데포> 는 아마도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삶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책의 수명은 그래서 영원하다고 믿는다!!!
그런 책 한권 내 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면 뉴베리 수상작 추천.^^
이번에는 서론이 좀 많이 길었다....^^;;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를 만나보고 난 후에
이 책이 왜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했을까 혼자 곰곰히 생각해 봤다.
118편의 시는 빨강 색으로 쓰여져 있고
시의 형태를 갖고 있지만 충분히 연결되어진 서사가 있어서
이건 시다, 소설이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형태적 모호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문학적 형식에 은유와 상징의 기법을 담아서
하나로 이어진 작품을 '운문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완성한 것!
거기에 내용상 감동적인 성장 동화의 성격도 띠고 있고
운문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런지 '빠른 독서'가 가능한 것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어떤 지점이 빠른 독서를 가능하게 한 걸까?
질문이 또 하나 이어진다.
소설의 경우에도 만약에 전반적으로 단문의 성격을 띠는 문장들이 많다면
읽기가 힘들지는 않겠지만 복문이 적지 않다면
빠른 독서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 청소년 소설은 그러나 운문의 형식을 띤 소설이라는 것에 답이 있다!
의미를 갖춘 구절이 하나의 줄을 이루고 있어서
읽는 즉시 내용 파악과 동시에 감추고 있는 내용들을 들여다 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적은 시간을 들여도 되는데 감동은 두 배.
이러한 형식에 감동적인 성장 소설의 특징까지 다 갖고 있는 아동 문학을
아이도, 부모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라자니 라로카의 어린이 필독서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라는 제목부터
사실 알쏭달쏭 했는데 여러 부분에서 나름의 힌트를 얻어 봅니다.
하얀 종이에 빨강 글씨, 그리고
선함의 색에 대해서도 저자의 영혼을 형성한 인도라는 배경적 뿌리에 의해 정의한 방식에서도.
흰색을 창백하고 모든 걸 반사하며 구슬픈 색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흰색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가 전해졌다.
인도에서는 피처럼 빨간 색을 생명력 있는 선함의 색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에서
나와는 다른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2022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의 저자 라자니 라로카는
주인공 레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차분하게 전하고 있다.
주인공 레하는 미국의 중학생 정도의 여자 아이인데
부모님은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왔고, 레하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다.
주중에는 미국의 학교를 다니고 미국의 문화에 섞여 살다가
주말에는 인도 방식을 따르고 인도의 문화대로 살아간다.
이름도 레하, 그리고 인도식 이름 칸나로도 불린다.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삶을 지닌 레하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존재의 문제,
가족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을 이끌어간다.
레하와 칸나가 곧 라자니 라로카였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이와 같은 두 개의 정체성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작가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도계 미국작가 줌파 라히리가 있다.
그녀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도 고백한
라자니 라로카가 레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성장기의 힘겨움을 일정 부분 해소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쓰는 이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레하의 이야기에 힘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혈액학 실험실에서 일하는 레하의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면 의사가 됐을 거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결국 자신의 병명을 짐작하고 있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프레마 이모랑 엄마가 맞지 않아 골수 기증을 할 수 없다는 슬픈 소식과
프레마 이모가 오랫 동안 임신이 안 되어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검사하면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동시에 접한다.
가족의 이름으로 타국에서 똘똘 뭉쳐 살아가는 레하의 가족에게
엄마의 부재는 인정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로 점점 다가온다.
누군가 죽게 되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죽은 이는 영원히 기억하는 이에 의해 살아 있고 함께 하는 거라고.
최애 애니메이션 <코코> 가 절로 떠오르는 구절이다.
죽은 자에 대한 멕시코의 내세관은 인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가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죽음이란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한 연속된다는 믿음.
결국 레하의 엄마는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었고,
남아 있는 가족들은 또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신이 죽은 후 레하에게 전해 달라고 엄마는 편지를 의사 선생님에게 부탁했고
엄마와 이별한지 한 달만에 레하는 엄마의 편지를 읽게 된다.
저 세상에서 아프지 않고 편하게 있을 엄마를 떠올리면서
이 편지를 읽게 될 어린이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두 개의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의 인생이 버겁고 싫었던 레하는
엄마의 죽음으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른다.
자신의 삶은 따로 분리된 두 개의 삶에서 여전히 허우적댈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수많은 물줄기들이 모여드는 하나의 강이었음을 발견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을 존재하게 한 모든 것을 끌어안겠다는 선언에서
한 뼘 더 성장한 레하와 칸나가 보인다.
이제서야 비로소 레하이자 칸나는 완전한 하나가 된다!

1980년대 레하가 살던 시대의 분위기와 리듬감을 팝송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한
저자의 센스가 돋보인다.^^
단, 올드팝을 좋아하는 나는 개인적으로 음악여행을 떠나서 너무 좋았는데
이 책을 읽게 될 어린이 독자들이 이 코너를 어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서 오랜 시간 남아 있는 노래,
영화 <플래시댄스> 의 What a feeling 이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신디 로퍼의 노래 제대로 보고 들은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신났고,
유리드믹스의 Sweet Dreams 는 정말 오랜만인데
이 노래 원래 이렇게 들썩거리게 하는 노래였나? ㅋㅋ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는
초등 고학년 이상, 문해력이 좋다면 초등 3학년부터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읽기 능력은 글줄 많은 책을 견디고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것도 볼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시로 쓰여져 글밥의 부담은 적어서 빠른 독서가 가능한 청소년 소설이지만
소설이 한편 글만 기계적으로 읽어내는 장르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 도ㅣ겠다.
책 제목에서부터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되는 타인과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은
이 책이 충분히 할만한 좋은 책이었다.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아가 더 풍성한 읽기가 될 것이다.
나름대로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한 이유를 여러모로 짚어봤지만
결국 이렇게 좋은 책이 독자에게 남는 것은
이를 거울삼아 나의 내면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