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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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만 하면 나타나 지구인들에게 "정의" 의 화두를 던지는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신작이 와이즈베리에서 나왔어요.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모두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은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는 걸

 

이번 신간에서 한번 더 느낍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후 8년만에 나온 <공정하다는 착각>.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능력주의의 폭정 :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는가?


<공정하다는 착각> 아래 부제로는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분명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현실이 다를텐데도


읽다 보면 현실과 교묘하게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공정하다는 착각> 에 담은 화두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을,


도끼를 얻어맞은듯한 깨달음의 시간 추천합니다.


독서모임 하기에 최적의 도서인데 요즘 모일 수가 없으니.....


책 속에서 능력주의적 신념이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인간 세상에 침투해버린 바이러스도 능력주의적 신념 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중대한 화두가 되어버렸어요....ㅠ


랜선으로라도 마이클 샌델 교수의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능력주의 사회의 밑바닥에 놓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자신이 겪고 있는 불우함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스스로의 탓이라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재능과 야심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적 상승을 허용하는 사회, 하물며 그런 상승을 찬양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은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혹독한 판결을 내리기 마련이다."


420페이지에 달하는 <공정하다는 착각> 을 다 완독하고 나서 이 문장을 보니


마이클 샌델 교수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능력이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 얼핏 들으면 자신이 노력해서 성취한 결과로 인해

부와 명예를 얻게 되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 누리면서 사는 삶이라는 것이

 

나쁜건 아니지 않을까.

<공정하다는 착각> 을 읽기 전과 후, 제가 그랬듯

분명히 이 사회를 보는 안목과 인식의 변화가 생길 거라고 장담합니다.^^

 우리 사회안에 스며들어 있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고,

불공정함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 이제는 보이게 되었으니까요.

​같은 책이라도 개개인의 생각과 경험에 의해 다르게 수용하게 되고 해석되기 마련이겠지만

<공정하다는 착각> 은 누구에게나 읽기 전과 후에 얻을 깨달음이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능력주의가 이 사회에서 과연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심해 보고 고민해 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알고 깨달을수록 세상은 달리 보이는 법!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느끼고 공감하고 싶고 때로는


 멀찌감치 지켜보며 알고 싶어서 책을 늘 가까이 하려 노력합니다.


 



성적에 기반한 능력주의 사회, 대한민국은 학벌주의가 심각한 나라이죠.


한국은 유럽보다 미국을 롤모델로 삼으며 성장해왔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맹관계하에


미국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다는 걸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미국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특히 기득권 세습 엘리트를 키우는 미국의 학력주의는 어쩜 한국과 닮았는지 소름이었지요...;;


사람들의 능력을 성적에 기초하여 서열화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사회체계를


기득권 엘리트층은 나날이 공고히 해 나가고 있고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비대졸자 노동자계급은 살기 어려워

 

그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릅니다.


능력주의가 성공을 보증해 줄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교육을 통해 부와 명예를 성취하며


중산층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욕망이 자식의 학업에 깊숙히 개입하기도 하죠.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인생을 실패한다고 인식하는,

 

그것에서오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달라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좋은 대학도 집안 형편이 좋아야 입학할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점점 더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현실입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통계처럼 한국에서도 가정 형편이 좋은 학생들이 성적도 대체로 좋아서


2020년 SKY 신입생중 55%가 고소득 가구에 속한다는 통계를 들어 설명합니다.


경쟁이 당연한 사회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이며 

 

자연스럽게 부와 사회적 명망 모두 누릴 자격이 있다는


미국발 능력주의의 신화가 이미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죠.


더 이상 인간 사이의 비극을 보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능력을 기준삼아 편가르기를 하지 않도록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다같이 진지하게 고민을 거듭해야 할 때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과거 계층이나 가문에 의해 인재를 선별하지 않고 학업 성적으로 학생을 뽑겠다는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 SAT.

하지만 SAT 관련 통계들을 보면 처음 예상과 달리 능력주의적 결과로 굳어져가고 있어요.  

​미국인들은 노력과 재능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에 올라갈 수 있고,

다른 국가의 국민들보다 인간의 자수성가 능력에 대한 믿음이 높은 편인데도

믿음이 사실과 꼭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거든요.

아이비리그 대학생 상위 1% 출신 학생이 하위 50% 가정 출신 학생들보다 많다는 것은

SAT 점수도 개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의한게 아니라 돈 따라 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라는 능력이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인간의 능력이란 100%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사회 문화적 배경을 제외한 개인의 온전한 능력을 측정한다는 것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구요.

 

 

중세 기독교 시대의 관점에서는 구원이란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은총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퇴보한 이후로는 인간 능력에 대한 신뢰가 힘을 얻게 되었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결과" 라는 표현, 살면서 관용적으로 쓰는 경우가 때때로 있지요.

그 말은 단언컨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운명이나 우연, 행운, 신의 섭리 등에 따라 정해졌고 내게 주어진 것이라는 거겠죠.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 행운이나 은총의 영역이 인간의 삶에는 분명히 있고

능력주의적 신념에 치우치게 되면 이런 사실을

 

자주 까먹게 된다고 마이클 샌델은 지적하고 있거든요.

우리 스스로 물론 노력해서 얻은 것들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 성과 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 통제불가능한 영역도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우연한 행운을 접하게 되면 인간은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나보다 불우한 조건에 있는 사람에게

미덕을 베풀기도 하는 것인데 오히려 반대로 나의 능력에 의해 성취한 것이니까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음에만 도취하게 된다면.....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은 그들의 게으름과 무능력으로 인한 결과이니 그들의 탓이고


  마땅히 굴욕감과 깔봄을 당해도 싸다는 인식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능력주의적 오만의 덫에 걸려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꼭 삶 속에 행운의 영역이 있다는 걸 늘 기억하며 사는 걸로!!!

 

 ​안타까운 것이 인간은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중요한 것을 너무나 잘 까먹는 경향이 있어요...%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마이클 샌델의 사회적 통찰을 발견하고는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놀랍기도 했었는데요.


​신분의 구분이 분명하고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한 시대보다


능력주의 현대사회가 더 행복한 삶을 가꿔가는데

 

도움이 되는 사회구조일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더 불행하고 비극적일수도 있음을 강조합니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것도 불행하고 슬픈 일이겠지만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위해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거라는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면


그것이 더 비극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봤지요.


얼마든지 공평한 기회가 열려있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성과를 배분해 준다고 하지만 현실은 능력에 따라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었고


그 능력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노력을 하더라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롤스의 <정의론> 에 따르면 완벽하게 정의로운 사회라도 불평등이 없지는 않은데

하물며 능력주의적 신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정함을 기대하기란

더 불가능한게 아닐까 싶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글을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은 마이클 샌델이지만

존 롤스의 생각이 담긴 몇 가지 문장들이 제게는 능력주의적 오만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겸손한 마음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에 대해 한번 더 새기게 해주었어요 .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유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가 누구든 가장 불우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한에서

 

 

그 행운의 몫을 향유할 수 있다.

사회는 반드시 우연한 배분이 가장 불운한 사람들에게 이롭도록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롤스의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운이 있다고 해도 어쨌거나 노력해서 성취한 것이라면

 

온전히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능력주의자들에게


롤스는 또 한번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는데 아주 그냥 사이다가 따로 없어요 ㅋㅋㅋ


"노력을 하려는 의지 자체도, 그러한 시도도, 그리고 흔히 말하는 자격이라는 것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에 근거한 것이다."


거기에 또 하나, 내가 가진 재능이 어쩌다 보니 우연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행운의 결과이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 겸손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마이클 샌델은 잊지 않고 곳곳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공정하다는 착각> 에는 공정함과 정의에 관한 

 

철학적 고민들과 관련 배경지식들이 풍부해서 좋았고


한편으로 미국의 현실, 미국의 정치인들을 통한 능력주의, 학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세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계층의 사다리 위로 올라가

 

경제적으로는 풍족하게, 사회적 지위까지 성취한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꿈꿉니다.


대학들이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고 하면서


정작 부자와 인맥 좋은 사람들의 자녀를 유리하게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구요.


인생공부를 위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이 있지 않고서야


자신의 자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부모는 당연히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녀의 인생에 일부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은 부모들이 너무 많이,


그리고 깊숙히 개입한다는 것이 늘 문제죠.....

 

자녀와 조율의 과정이 있다면 그래도 너무나 다행이예요....%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자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희생한다는

 

나름의 고결한(?) 명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깊숙히 개입하는 부모들의 심리 속에는 자녀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성공이라 착각하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고


자녀의 성공이 자신의 편안한 노후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테구요.


또 하나 마이클 샌델의 표현을 빌리자면 '능력주의적 광채' 를 두르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현재를 살아가면서 대학의 존재가 인재선별기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한국으로 치면 SKY 와 같이 좋은 대학을 가서


훌륭한 직장을 다니고 경제적 부를 누리며

 

동시에 사회적 명망까지 성취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계, 대학.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는 시각이 흥미롭습니다.


더 중요한 성취는 바로 사회적 지위, 사회적 명망을 얻었을 때 

 

비로소 목표했던 성공적인 삶으로 본다는 거죠.


사회적 명망이 높을 때 성공적인 삶으로 보는데는

 

 

 

 

공동선 (Common Good), 사회기여도와 중요한 관계를 맺습니다.


마약상이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성공한 삶으로 보지 않는거죠.


학교 선생님은 마약상보다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못해도

 

사회기여도에 있어서 누구나 인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분명 건강한 생각은 아니예요.


그것이 곧 능력주의의 오만을 부추기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과거로부터 조금씩 파이를 키워온 능력주의가 그 어떤 종교적 믿음만큼이나


 현대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능력주의가 마치 이상적인 기준인 것처럼 인식하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각자의 능력에 의해 성과를 배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일정부분 저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능력주의가 너무 과도하게 흘러가고 있고,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도외시하면서 비극이 생기기에 문제인거죠.


개인이 갖고 있는 재능과 노력을 기울여서 목표한 것을 성취했을 때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마이클 샌델이 지적하는 부분은 과연 지금의 부와 사회적 명망을 차지한 것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냐는 의문입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몇 년간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한국에서 좋다 하는 직업까지 얻은 결과가

 

나의 능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라고 반문할 사람들도 많을 거구요.


그러면 이쯤해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공정하다는 착각> 의 부제가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입니다.


흙수저, 금수저 라는 단어에서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 인간의 비애마저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바로 이 지점..... 개인의 재능과 노력, 물론 있을 테지만


 능력주의만으로 인간의 삶을 쥐락펴락 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건


또 다른 변수, 살아가면서 인간에게 따르는 운입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으로는 은총의 윤리학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어요. 


이 부분을 간과하고 능력주의에 의해서만 인간의 존재가치를 판단하게 될 경우


무참히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위기에 처할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것을 능력주의적 오만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제가 봐도 아주 정확한 표현이예요!!!


자신의 인생에 운이 작용했음을 놓친 사람들은

 

노력과 능력으로 이만큼 성공을 쟁취했다고 인식하게 되고


그것은 마치 자신의 기준에서 실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깔봐도 된다는

 

인간의 오만이 작동하기에 이른 것이죠.


한국의 경우를 보자면 저는 바로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한 사람이 떠올랐어요.


무슨 권리로 그는 경비원분에게 아무렇지 않게 굴욕감을 주었는가.....


그의 오만한 태도를 능력주의자의 세계관과 행동양식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지만.....ㅜㅜ


경비원이라는 직업, 그 일이 갖는 사회적 기여도를 하찮게 여기거나   


단순히 돈으로만 인간의 가치를 재단하고 사람을 대하는 이들을 보면 참 개탄스럽습니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해지면서 관련 사건들은 참 꾸준히도 일어나지요....;;


입시부정 스캔들이나 병역비리에 사회와 대중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도


 ​불평등이 해소되기보다 더 심화되고 있음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대졸자와 비대졸자 사이에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졌고

 무엇보다 사회의 승자로부터 굴욕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

엘리트층에 대한 포퓰리즘의 분노를 키운 것이라고 마이클 샌델은 지적합니다.


미국인들의 현실적 삶을 말하고 싶었던 저자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비대졸자 노동계급들의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트럼프의 당선,


영국 브렉시트 압승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능력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어요.


한편 힐러리는 미국 부자와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얻었더군요.


대통령 후보로서 한 연설에서 힐러리는 기회를 자주 언급했고 트럼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이미 충분히 가진 자들에게 주로 열려있다는 것을 트럼프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능력주의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를 참아왔던 비대졸자 노동계급들은


분열을 조장했던 트럼프를 미국의 비대졸자 2/3 가 지지했으며


영국의 상황에서는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로 비대졸자 70% 이상이 브렉시트에 찬성했고


대학원 학위자 70% 이상이 브렉시트를 반대했다고 하니까요.



 

 


청교도주의자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을 생각해 보면

 

요즘 우리의 인식과 매우 많이 닮아 있기도 해요.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라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통해


따로 떨어져있던 저의 지식조각이 조금 맞춰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가 자기 운명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약해질 수밖에 없고


내 성공은 순전히 내 덕이고 타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


레이건과 클린턴의 주장에 자신의 사회적 상승 담론을 되풀이하며

 

능력주의를 지향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실제로 미국의 능력주의 산물이면서 능력주의적 사고의 기수라고 소개하기도 해요.

 

존 F. 케네디가 호화로운 학력의 소유자들로 내각을 꾸렸지만


그들의 뛰어난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의 늪에 뛰어들었던 미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도 있었습니다.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예요.


공자와 플라톤도 능력있는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해서 모두 그 전제는 부유함과 좋은 가문이 기준은 아니었어요.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미덕을 갖추고 공동선을 염두해둔 통치여야 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진보 엘리트들이 사회적 상승 담론을 오히려 더 키우고 있고


 불평등의 해법으로 교육에 중점을 두는 시각을 비판하는 흐름에 

 

미국의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을 소환합니다.


오바마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지는 계기.....^^;​

 

불평등의 원인이 마치 교육 실패인 것처럼 말하지만

 

진짜 문제는 노동자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데 있다고 지적하는 마이클 샌델.


노동자계급은 자기 몫을 요구할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고


부와 명예를 소유한 사람들의 영향력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능력과 성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계급이 생겨나고 그 기득권을 강화하고자 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녀에게 자신들의 유리함을

 

법의 테두리를 피해가며 물려줄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거예요.

기득권 엘리트 중심의 ​능력주의 현상은 오랜 시간 미국의 학력주의로 인해

모욕의 감정을 참으며 살아왔던 포퓰리즘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연대보다는 분열을 조장한 트럼프는 포퓰리스트들의 반란을 등에 업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셈이지요.

비로소 트럼프가 왜 당선되었는가에 대한 저의 의문이 해결되었습니다.^^;

이러한 능력주의의 폭정을 견제할 수 있는 마이클 샌델의 대안은 유능자를 제비뽑기로 뽑자는 것이예요.

일정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

국내 고등학교 중에 이런 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재능을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이제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었고

입시가 경쟁이 아니라 추첨이 되면 그 가치는 지금보다 떨어져서

 지금의 명문대가 누리는 명예는 서서히 추락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바램과 현실은 또 다르니까 섣불리 확신하기도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대학의 경우 입학보다 졸업이 녹록치 않은 시스템으로 바꾸었으면 싶거든요.

정말 학문을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 수 있도록,

 삶을 꾸리기 위해 진로를 다져가는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학문탐구의 장으로서 대학이 기능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일을 해서 버는 돈이 사회적 기여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능력주의자에 한걸음 다가서는 생각이 되는 거예요.

사람의 일은 자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며 결코 사회적 기여도를 돈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자신의 일,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고 경제적 곤경까지 처하게 되는 노동계급들의 분노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싶기도 합니다.

능력주의는 계층에 분명한 선긋기를 조장하며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켜왔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덫에 사람들을 허우적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바꾸면 돼요.



 

겉으로만 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뿐 지금 현재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울림없는 메아리입니다.


불평등한 현대사회에서 시스템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요.

 

 완벽히 제어할 수 없다면 마이클 샌델이 제안한 유능자 제비뽑기와 같이


효과적인 대안들을 거듭 고민해봐야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의" 라는 화두를 잊지 말아야 하구요.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고 서로 연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능력 경쟁을 위해 무장한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일을 통해


부양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외침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겸손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적 덕성이라는 것두요.


공정함, 능력주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볼 계기를 마련해 주어서 더할나위없이 좋은 독서였습니다.

12월 3일, 우여곡절 끝에 수능을 치르기도 했지만

대입 논술이나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저는 이 책을 이런 목적으로 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목적의식이 너무 두드러질까봐 사실 조심스럽습니다.

사람과 이 세상을 똑바로 보고 싶다면 읽어보라고는 강추하겠지만요.

지식이 되고 고민해볼만한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오랜만에 책리뷰 쓰는데 욕심이 났나봐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네요.... 무슨 책 한권 쓴것마냥.....

 

그에 비하기에는 물론 턱없이 부족합니다만^^;

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정확히 이해하는데 

 

<공정하다는 착각> 을 만나게 되어서 저로선 행운이었습니다.^^ 

 

이런 행운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저의 능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재능의 우연성을 외면하고 노력의 중요성은 과장하는 능력주의의 실체를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것도 너무나 뿌듯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의심을 거두어서도 안되겠구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것.

정의,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마이클 샌델은

현실적으로 인간의 능력주의적 열망에 불을 지피는 대학입학 시스템에 대해서도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스템인지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능력에 근거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고 있으니까요.

​진정한 고등교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탐구하고,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가치있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숙고하면서 성장하는 태도" 를 가르쳐줘야 합니다.

인간 개개인은 성취와 무관하게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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