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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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만난 작가정신의 소설향 시리즈 첫번째 김사과 작가의 소설도


제게는 참신하게 다가왔었는데 두번째 소설 <붕대 감기> 를 통해


처음 만난 윤이형 작가의 소설 역시 반갑고도 신선한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확실히 소설을 좋아하나봐요.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이제 두번째이긴 하지만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시리즈입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시리즈 중에서도 좋아하는 것이 있긴 하지만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는 책도 조그맣고 한 손에 들고 보기도 좋아서


내용이나 외형이나 다 맘에 듦~~^^

 

윤이형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부터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생소한 작가였어요, 제게는.

 

소설을 좋아하지만 아직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다 만나보진 못했고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전에 한번 만났던 적이 있더라구요, 미처 제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멜랑콜리 해피엔딩.

 

역시 작가정신에서 나온 박완서 작가 오마주한 콩트집이었는데

 

거기에 박완서 작가를 기리며 콩트를 냈던 여러 작가분들 중에 계셨던 걸 지금 보니 알았습니다.

 

그때 너무 작가분들이 많이 참여했고 제게 인지도가 있던 작가분이 아니어서

 

기억하질 못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붕대 감기> 를 통해서 윤이형 작가님 이름도 확실히 각인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셨더군요.^^

독자들은 모르고 있지만 작가들은 부단히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묵묵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의 첫 페이지를 들어가기 전에 차례에 있는 이 작품에 대한 평론 제목을 보면서


대충 <붕대 감기> 가 어떤 주제를 드러내고자 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어요.


"페미니즘" 이제는 진짜 페미니즘, 좋은 페미니즘이 뭔지 알쏭달쏭할 정도로


세상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는듯 합니다.

심진경 평론가의 이야기를 먼저 빌리자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을 이야기하고 있죠.


여성에 대한 강요도, 과도한 혐오와 경멸도 모두 다


폭력일 수 있다는 것부터 다같이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페미니즘에 모범 답안은 없다는 것, 각자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말들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보니 더욱 더 울림이 전해지기도 하더군요. 


​거꾸로 소설로 돌아갑니다.


윤이형 작가의 <붕대 감기> 는 각기 다른 계층, 학력, 직업, 나이, 취향, 기질이 다양한 여성들의 서사를

세연과 진경 을 중심으로 가지치기하며 그녀들의 사연을 확장해 나갑니다.

​읽다 보니 어떤 때는 A가 주인공이 되고 또 다음 사연으로 넘어갈 때는

A가 보조인물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퍼즐 맞추듯 짜맞혀 가는 구성을 시도한 것이 흥미로웠고

독자로서는 읽다 보니 이 퍼즐을 맞추고픈 희한한 심리가 작용해서

인물관계를 적어가면서 읽게 되는거죠. ㅎㅎㅎ

소설의 재미는 이렇듯 인물간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작가가 구상한 관계도를 파악해 가는 과정도 한몫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제목이 <붕대 감기> 일까?


 소설을 만날 때면 늘 집착하는 지점.


가장 압축적, 상징적으로 작가는 제목에 소설의 대표성을 부여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소설 속에서 세연과 진경의 사연 속에서 붕대 감기가 등장하죠.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세연과 진경은 어느날 교련 시간에


둘씩 짝지어서 머리에 붕대를 감는 실기시험을 보게 됩니다.


왕따 당하는 세연의 주변에는 원래 그렇듯 아무도 없었는데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진경이 세연에게 다가가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하게 되죠.


그러다가 세연이 긴장을 했는지 진경의 머리에 붕대를 감는 과정에서


붕대를 한 바퀴 더 돌리는 바람에 짧아진 걸 못 느끼고


왜 모자라지? 하면서 콱 조이는 바람에


진경의 머리에 붕대때문에 압박되는 작은 에피소드가 생깁니다.


​93페이지쯤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여성들의 사연이 나오다가 다시 125페이지쯤.....

소설의 묘미는 한 번에 다 사연들을 풀어놓지 않는다는 것 ㅋ


시간이 흐르고 페이지를 한 두장씩 넘겨가면서 점점 실마리가 풀리는 그 과정,

 

그것이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곳곳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서 생각도 해 가며.^^

 

윤이형 소설 <붕대 감기> 의 핵심 축인 세연과 진경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미용실 실장 해미와 친구의 일로 페미니스트가 되어 집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현.


지현이 죄책감을 품으며 살아가게 했던 친구 미진.

경단녀가 되지 않으려 육아와 워킹맘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있는 은정과 아들 서균.

학창시절부터 쭉 남성들에게 인기있는 여성의 표상으로 친구 세연에게 비춰줬지만

지금은 초등 방과후 독서지도서로서, 그리고 평범한 40대 가정주부의 삶을 살아가는 진경과 딸 율아.

 그리고 프리랜서 출판 기획자로 왕따도 당했고 외모강박이 있으며

진경을 동경하기도 하고 또 한편 남몰래 미워하기도 했던 세연.


교수와 제자 사이였던 경혜와 채이.


친구 사이인 채이와 형은.


형은과 그녀의 엄마 명옥.


그 중에서도 저는 명옥과 효령의 사연이 자꾸만 떠오르더라구요.


명옥과 직장에서 처음 만나 선후배 지간으로 지내는 효령.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다가 남편도 죽고 딸도 컸지만

딸 형은은 엄마 명옥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고 그로 인해 중년 여성 명옥의 불투명한 미래가 보이면서

자식보다는 오히려 ​비슷한 또래의 동반자와 함께 사는 삶도


새로운 가정의 형태로 떠오를수도 있겠다는 생각.....그런 예상을 이 소설이 하게 하더라구요.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세상의 또 다른 그림을 이 소설이 새롭게 심어준 부분입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거든요.


하지만 딸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정한 명옥과

 그녀를 언니처럼 ,엄마처럼 돌보기를 자처한 효령과의 관계를 보면서


여성들끼리의 끈끈한 연대가 하나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게끔 하는 견고함으로 나아갈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명옥이 딸 형은에게 했던 말이 계속 남아요.


저도 제 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기에.


"우리 인생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너희 인생을 잘 살아....."  라고.


​그러면서도 엄마는 형은이 서운해할까봐 살짝 염려하는 것까지

엄마의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었어요.


​그리고 진경이 율아를 생각하며 딸에게 하는 말도 딱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엄마와 아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인격체이며, 아이는 엄마의 자궁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을 뿐.​


율아에게 진경의 오랜 박탈감을 투사해서 강요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


저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합니다.


부단히 노력은 해요..... 때때로 삐그덕거리긴 하지만요..... 그럼에도 노력하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정체성으로


자신을 퇴적된 지층의 일부라 표현하는 진경의 아는 언니, 윤슬.


윤슬은 진경이 세연이 얘기를 많이 해서 자신의 얘기를 많이 못하게 되는 상황이 못내


서운하고 싫고, 윤슬이 자신을 바라보는 건 모르고 진경의 신경은 세연으로 조금 더 향해있는 듯 하고,


진경이 자신을 신경쓰고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세연은 또 그 나름대로


진경이 다른 곳만 쳐다본다는 생각에 소외감을 느낀다 하고......


서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끼리 그 안에서 감정의 화살표들은 아주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세연 : 저는 우선순위에서 밀렸어요. 소외당했다고요.


아무리 그 친구를 아껴도 걔한테는 1순위가 될 수 없는데,


이런 마음을 품고 다시 만나는 게 의미가 있을지.....


누구를 구하겠다는 말이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따라올 사람은 따라오겠죠.





진경 : 하지만 내가 도와주려 해도 너는 원하지 않잖아.


무섭고 외로워도 너는 내가 필요하지 않잖아.


왜 나는 안 돼?


거창하고 멋진 도움은 줄 수 없지만, 그냥 곁에 있어줄 수는 있는데,


너는 늘 다른 사람들만 보고 있었어.


나는 안 되는 것 같았어.

항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진경의 말에 세연이 한 대답이 누군가와 힘든 관계가 되었을 때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단지 친구가 되는 법을 내가 하나도 모를 뿐이라고......


내가 한심하고 못난 인간이라 이 나이 되도록 그런 것도 배우지 못햇다고.....


나한테 좀 가르쳐줄래?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 먹으면 한 번에 너무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신경을 곤두 세우고, 무리를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들이 부어버리는 아이.


그러다 헐떡거리고, 숨을 몰아쉬고, 패닉에 빠져 버리는 아이.


진경은 세연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입장이 다른 타인을,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거 같아요.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지만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 많이 어려운 일인건지도 질문하게 됩니다.

 

사람은 무시당하는 것을 참 못 견뎌하는 것도 같아요.... ;;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보다 지지 않으려고, 강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과연 상대에 대한 그런 대응이 관계를 좋게 다져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때로는 여성이 여성에게 더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말에도 왠지 뜨끔해져요.

 

여성끼리의 연대는 이해보다는 적대시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일까 과연???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이 소설의 큰 틀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다 포함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형성은

 

 

어떤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세연과 진경을 보면서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서

 

관계맺기를 포기하는 요즘 사람들, 저를 포함해서.... 많이 겪는 일 아닐까요?

 

나와 다른 성향과 기질을 가진 아이인데 절친이 되는 경우도 많은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계이기에 서로 연합하고

 

 

 상처받을 준비도 되어 있는 것이기에 가능한건가.....

 

타인에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냈다가 머쓱해 지는 일을 겪었던 소설 초반 해미의 사연 역시도

 

다름을 존중하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사소하게 주변에서 흔히 겪게 되는 일이죠.

 

이렇게 사람들은 나와 다름으로 인해 크고 작게 상처를 받고

 

그것을 드러내는 경우 갈등과 대립 상황을 겪으며


심하게는 분열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소설 <붕대 감기> 에서는 이렇게 숱한 인간사 속에서 특히 여성들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는데요.


윤이형 작가는 남성중심적 사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질서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고착화된 구조 속에서


이 사회에 자리잡은 여성을 향한 억압성에 천착합니다.


약자나 소수자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던 작가의 문제의식이


<붕대 감기> 에서는 여성들의 연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우리 사회의 사건인 페미니즘 이슈, 탈코르셋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켠에 집어 넣은 것이죠.

 

 

여성들 사이의 입장 차이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내면의 심리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각자의 사연과 그 내면의 목소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해간다는 것은 인간사에서 불변의 진리이고,

 

그 흐름의 중심을 향해 헤엄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로 물러나 물결에 실려가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자신에게 없는 모습이 상대방에게서 보일 때,

 

때로는 무서우리만치 상대방에게서 내 모습을 보듯 거울 보는 느낌이 들 때,

 

막상 그럴 때 드는 감정과 생각들이 나를 고립시키고 힘들게 해서

 

 그 당시만큼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깨닫는 순간이 올 거라 믿어봅니다.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나가되

 

같아지려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기혐오, 불안의식, 미성숙함으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평생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나와 다른 타자와의 화해와 연합이라는 것을.


똑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모두 다 한결같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모순이 공존하는 이 사회의 속성을 인정하며


서로에게 소박하게나마 위안을 건네는 그런 관계를 지향하고 싶습니다.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두번째 <붕대 감기> 를 읽으며 드는 생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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