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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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대해서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소설은 없었다. 이것은 신화인가, 현실인가"


생소한 폴란드 소설, 그리고 생소한 작가 올가 토카르축이 보여준


소설의 짜임새와 소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읽는 내내 이것이 허구인지 현실인지,


옛날 얘기인지 현대인들의 얘기인지 참 헷갈릴 정도로


신화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폴란드의 역사를 20세기를 배경으로


소설 곳곳에 넣은 현실같은 이야기가 참 재밌었거든요.


 <태고의 시간들> 은 1996년에 출간된 올가 토카르축의 세번째 소설이라고 해요.


한국에서는 2019년 1월말에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제가 처음 읽은 폴란드 소설이 올가 토카르축의 소설이라는 게 참 반가울 정도로


만족스러운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소설에 대한 흥미가 충만한 지라 좋아하는 영미권 소설들 말고


다른 나라의 소설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도전하고픈 마음이었는데


외국소설 중 변방에 가까운 폴란드 소설을 만나게 될거라는 건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만족도가 높아서


또 다시 다른 나라의 소설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지속가능할듯 합니다. ㅋㅋ



 

 

​<태고의 시간들> -태고의 시간- 이라는 조각글 제목으로 시작해서

작가가 임의로 구성한 ~의 시간이라는 조각글들이 84개가 모여진 소설입니다.

크워스카, 게노베파, 미시아, 미하우, 엘리, 플로렌틴카, 루타, 이지도르, 파베우....

폴란드인들의 이름도 생소하면서 흥미로웠고

그들의 시간이 띄엄띄엄, 하지만 꾸준히 이어지면서

시간이 곧 삶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소설 제목인 <태고의 시간들> 에서 "태고" 는

소설 속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간적, 공간적 키워드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태고는 '아주 먼 옛날' 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어서

시간적 배경인듯 한데 소설 속에서는 허구와 현실이 맞닿아 있는 지점,

작가가 설정해둔 이 세상의 소우주같은 태고 마을을 가리키는 공간적 배경으로도 쓰입니다.

​이런 절묘한 조합을 바탕으로 작가 자신이 실제로 옛날에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신화, 전설, 민담과 같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

<태고의 시간들> 이라는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죠.

대략 1910년경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시간적 배경을 갖는 이 소설을 읽어가는데


중간에 소설속 주인공과 예수님이 만나고,

 

예수님이 걸치고 있는 천 조각의 향기를 맡았다고 하고.....


이건 주인공이 꾸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지점들이 한 두곳이 아니었어요.

 

 

84편의 조각글들이 제목에는 인간의 시간뿐 아니라


동식물, 사물, 심지어는 신의 시간까지 등장합니다.


나쁜 인간, 집, 익사자 물까마귀, 과수원, 버섯균, 커피 그라인더, 게임의 시간~~~!


 올가 토카르축이 소설 속에 구축해낸 시공간의 배경 속에는


주인공들이 인간만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포함해서 그 범주를 우주로 넓혀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세상의 중심이 신과 인간의 관계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주체가 되는 넓은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죠.



 

 

여행을 떠나 이 경계에 다다르는 순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들은 아마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


한번은 엄마가 화석처럼 굳어있는 사람들을 내게 보여준 적이 있어.


그 사람들은 키엘체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었지.


눈을 뜬 채, 꿈쩍도 하지 않았어.


끔찍해 보였지. 다들 죽은 사람들 같았어.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서 꿈을 기억으로 받아들이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전부 이런 식인 거지.



이 환상적인 요소를 풍기는 글은 뭐지? 싶다가도


다시 몇 번 더 곱씹어 읽어 보면 태고라는 마을이 상징하는


경계 그 어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시공을 초월한 열린공간 같기도 하고


동서남북 수호천사들이 경계를 지키는 태고 마을도 그렇고


흑강과 백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걸 보면


어떤 질서와 법칙에 의해 시간이 흘러가는 태고 마을만의 닫힌 공간 같기도 하구요.


등장인물이 꾸는 꿈들, 그들의 내면심리, 그리고 무의식까지


글쓰기로 형상화 시키는 능력을 보면


올가 토카르축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도 해요.




 

 


그녀의 모유는 어린 크라스니의 눈병을 낫게 했고,


프랑크 세라핀의 손에 난 사마귀도, 플로렌틴카의 종기도,


예슈코틀레에서 온 유대인 아이의 피부병도 낫게 했다.


이렇게 병을 고친 모두가 전쟁에서 죽었다.


신은 바로 이렇게 현현하곤 한다.




현현하다 :

 

현묘하고 심오하다. 이치가 기예의 경지가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하고 심오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의 여정들을 보면서


곳곳에서 미묘하고 심오함을 느끼게 될 때면


 머리 속에 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 부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모호....이건 뭐지.... 요런 느낌....


확실히 폴란드 소설, 올가 토카르축의 소설은 제가 평소에 접해보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시종일관 낯설다고나 할까요.... 


다행인건 여운이 남아 다시 펼쳐 읽어보면 좀 익숙해지려고 한다는 거....ㅎㅎ


단번에 익숙해지지 않는 건 내공이 부족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 기억에도 오래 남더라구요!!!


모두 다 허구인듯 하지만 또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 폴란드의 역사도 절묘하게 드러납니다.


허구의 소설이지만 현실이 반영되어 탄탄한 스토리의 힘도 느껴지지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로부터 분할 점령당했던 시기, 1*2차 세계대전을 지나


유대인 학살과 냉전 체제, 사회주의 시대까지


실제로 폴란드가 모두 겪었던 역사적인 몸살들이 고스란히 곳곳에 베어나오는 것에서


역사를 좋아하는 저는 또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폴란드가 한국과 역사적으로 참 비슷한 험로를 겪었더군요.


 

 

 

 

 

넷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시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개념에 공간을 넣어서 넷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시간이라고 채운


작가의 의도가 선뜻 이해가 가진 않는 부분이었죠.


소설 속에서 작가가 설정해둔 시간이자 공간이 되는 '태고' 에서 계속 맴돌고 있어요.^^;; 


등장인물들이 시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삶이 되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인 걸까요.....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중에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 문장들은 독자들이 고민하는 지점과


간극이 그리 커보이진 않더군요.


함께 되새겨보면 어떨까 싶어서 냅킨필사를 또 해봤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걸까?


내 시작은 어디에 있을까?


대체 뭔가를 안다는건 무슨 의미일까?


획득한 지식은 얼마나 유용한 걸까?


뭔가를 끝까지 다 안다는건 가능한 일일까?


인간은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1980년대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에 여성의 참여가 언급되지 않은 점이나


2차 세계대전 직후 강제 이주된 폴란드인들의 역사가


한번도 소설이나 영화로 발표된 적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올가 토카르축은 차기 작으로 폴란드의

 

아프고 씁쓸한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쓰고 있다고 해요.


현재 폴란드의 국경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폴란드를 알리고 여성을 드러내는 작품들로 보여주는 시대와 사회를 담는 작가정신이 돋보여서


<태고의 시간들> 소설을 만난 인연으로 올가 토카르축이라는 작가 이름은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고 발견하게 될듯 합니다!!!


참 현현한 소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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