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다지"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향수, 깊은 그리움 정도로 말할 수 있는 포르투갈어예요.
흐름출판에서 나온 에세이 <그 여름, 그 섬에서> 는 가슴 속 깊이
조국,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다른 곳에 있어도 늘 마음만은 그곳을 향해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민자들의 고향은 포르투갈령에 속한 아조레스 제도.
대서양에 둘러싸인 아홉 조각의 포르투갈 영토이자
모든 방향에서 최소한 1,4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군도입니다.
투우와 축제가 한여름에는 끊임없이 열리며
책의 표지에서처럼 연보랏빛 수국 덤불과 푸른 초원, 바다가 펼쳐진 그야말로 아름다운 섬이죠.
여유롭고 느긋한 아조레스 사람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저자 다이애나 마컴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자로서 이야기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캘리포니아 외곽에 모여 사는 아조레스 이민자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21세기에, 그것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조레스 방식대로
소 두 마리를 몰며 밭을 가는 남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어요.
이 우연은 다이애나 마컴의 인생에 조용히, 하지만 큰 파동으로 다가오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만났고
그들의 초대로 실제 아조레스 제도, 테르세이라 섬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았던 얼마간을 보내고
다시 미국에 돌아온 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이 아조레스 제도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발견" 을 하기까지 7년을 보낸 후, 다시 아조레스 제도로 향했던 저자는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처음 이 책을 쓰고자 하는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죠.
기자로서 르포 스타일의 책을 쓰겠다는 처음 의도 "아조레스 디아스포라" 와는 달리
저널리즘과는 관련없는, 그야말로 다이애나 마컴 본인의 자전적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자신이 오랫동안 찾았던 진정한 사랑에 새로 눈을 뜨게 한 일이
바로 아조레스 제도에서의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저자에게는 더없이 의미있는 책으로 다가올 에세이이자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죠.
"디아스포라" 는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아조레스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예요.
보스턴과 캐나다를 포함한 전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는 말로
저자는 "열 번째 섬" 이라는 또 다른 말로 표현합니다.
열 번째 섬은 마음 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예요.
우리의 고향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그 여름, 그 섬에서> 에 가지각색의 이야기들로 모여 있습니다.
아조레스 제도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 선정한 아름다운 섬 상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하다고 해요.
전통이 살아있고 지속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요.^^
마크 트웨인도 언급한 적 있는 아조레스 제도이더라구요.
포르투갈의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1/3 가량 고향을 떠났던 이민자들의 마음속에는
슬픈 음조를 띠는 갈망의 노래, 포르투갈의 민요 "파두" 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늘 마음과 현실 속에 공존합니다.
저자가 매력을 느꼈던 아조레스 방식은 이런 것이었어요.
이 지점은 제가 제주도에서 느꼈던 그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역시 제주도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일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오늘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장소, 분리, 정체성,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서로를 엮어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는 저자 다이애나 마컴.
내 존재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무엇인가에 내가 지금 이순간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나요?
동시에 익숙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 같기도 한 순간은요?
우리는 늘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일이다.
자신의 고향은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서 그들만의 관습과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을 두고 시작된 말인데요.
요즘 "디아스포라" 와 관련된 책과 공연들도 적잖이 접하게 되면서
지금 현대인의 몸과 마음이 어떤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이미지와도
어찌 보면 좀 닮아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읽다 보면 아조레스 사람들과 그곳에서 경험한 정말 사소한 이야기들과 생각 모음인데
그것들이 하나 둘 모여 있는 <그 여름, 그 섬에서> 책을 덮고 나면
잔잔하게 밀려드는 내 삶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2018년 1월, 2019년 2월, 그리고 다가오는 2020년의 겨울.
올해를 넘기자마자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쯤이면 저 역시 제주도에서 혼자
이곳 저곳을 눈에 담고 마음에 품고 올 날들을 갖게 될 듯 합니다.
몸은 육지에 있지만 마음은 늘 제주도를 떠나본 적 없는 아조레스 이민자들의 마음처럼,
제주도를 향한 그리움은 느끼지 못하는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수면 위로 올라와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느끼며 세번째 혼자 하는 제주도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하루하루가 참 행복한 요즘입니다.

작가 개인의 자전적 에세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충분히
적용해봄직한 삶의 새로운 발견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여름은 끝났지만 <그 여름, 그 섬에서> 를 끝으로 2019년 여름을 정말 마무리하게 되는듯 해요.^^
저에게 제주도가 마음의 평온을 안겨주듯, 당신에게 그러한 곳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열 번째 섬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