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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평점 :

보스니아 내전의 한복판에 들어가 직접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고향인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내전을 바라보며
느낀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 그리고 저자 자신의 삶의 지나온 기록을
<나의 삶이라는 책> 에 담아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어요.
"내전" 이라는 말 자체가 전하는 슬픔에 언젠가부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국가 아래 살아가던 사람들인데
생각이 다르고 인종, 종교 등등 다르다는 이유로 구분짓고 차이가 발생하면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타자화를 심하게 할 때면 증오와 혐오로 가득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는 말이거든요.
알렉산다르 헤몬의 에세이 <나의 삶이라는 책> 에는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그림자가 드러워진 상태에서 저자가 남긴 회고록이라는 문구에
관심이 동하여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저자의 회고록이지만 시간순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고
짧은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하나로 묶여져서 마치 플롯 장치가 들어있는 소설집처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어요.
인간의 삶과 통찰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저도 모르게 경건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나의 삶이라는 책> 에서는 인간의 삶을 파괴시키기에 충분한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나와 타자의 관계속에서 다름이라는 것, 타인들의 삶에 대한 공감,
나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저자의 고향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라는 나라가 어디쯤 붙어있는지
아주 말초적인 호기심에 초록창으로 검색해 봅니다.
지도를 보니 작년 늦가을에 동유럽 여행 다녀왔던 그 6개 나라중
크로아티아아 인접해 있던 나라였더라구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보스니아 근처까지 다녀갔었다는것도 모르고 지냈던게 재밌고
한편 못 가봐서 아쉽고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한 민족 분쟁들 중에 하나로 꼽히는 보스니아 내전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계 이슬람교도와
세르비아계 세르비아정교도, 크로아티아계 가톨릭교로
오랫동안 민족적, 종교적으로 이어온 거친 반목의 역사가
유고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1990년대초에 촉발된 것이었더군요.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뒤섞인 지형도로 인해 분쟁의 역사가 존재하는 곳인데요.
특히 1914년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유고슬라비아도 여러 나라로 갈라지는 역사가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세르비아 내전으로까지 그 분쟁이 번지게 됩니다.
1991년 주변국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역시 독립하려 했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했던 인구 집단 3곳중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독립을 희망했고,
세르비아계만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에 남기를 희망하면서
1992년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를 공격하고 사라예보를 포위하는 등 내전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과 세르비아계가 각각 자신들과 노선과 종교가 달랐던
보스니아계 이슬람교도들과 크로아티아계를 무참히 학살하며 전쟁을 이어갔던 기간이 3년 8개월.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유엔이 개입하게 되지만 세르비아계는 인종청소를 저지르면서까지
전쟁으로 맞서게 되면서 평범하고 힘없는 사람들만 희생되고
난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슬픔을 맞게 됩니다.
내가 속한 곳과 민족 집단이 다르다고,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십만명의 희생자와 난민들이 발생했던 보스니아 내전은
알렉산다르 헤몬의 <내 삶이라는 책> 을 관통하는 구분짓기와 차이의 얄팍함을
한층 더 이해하게 하는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내 삶이라는 책> 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사라예보를 고향으로 둔 저자가 써내려간
회고록을 통해 보스니아 내전의 역사도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었어요.
역사적 사실을 알고 보니 역시 이 책을 쓴 저자의 심경이나 메시지들이 훨씬 더 와닿습니다.
"다름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접근이란........"
다른 이들이 불법적으로 우리에게 합류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말함이다.
만약 그들이 이미 여기에 왔고 그 과정이 적법하다면
그들은 이제 우리 삶의 방식, 이미 오래전에 확립된 성공적인 우리 기준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
다른 이들은 항상 우리가 진정 누구인가를 일깨운다.
종교가 다르고 내가 속한 집단을 해한다고 할 때 오염된 타자화로 인해
아무 잘못없는 선량한 희생자들만 낳았고 나아가 자신까지 해치는 일이었던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 사태를 통해
저자는 너와 나를 구분짓는 일들의 폐해와 무용함을 직면하게 합니다.

전기공학자 아버지와 이하 가족들과 함께 사라예보에서 평생 살고 싶었던 저자
알렉산다르 헤몬은 잡지사의 영화평론 글을 올리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편집일을 맡았고 기자활동을 합니다.
보스니아 조국의 전쟁 직전의 잔혹행위들을 보며 지내다가 우연히 미국 시카고에 갈 기회가 닿았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려 할 때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발이 묶여 미국에 망명 신청을 하게 되지요.
실제로 저자의 삶에 일어났던 영화같은 일이었습니다.
미국으로 가기 전 1992년 저자의 고향 사라예보와
미국을 다녀온 후 새로이 마주하게 된 사라예보는 모든 것이 기가 막힐만큼 같았고
또한 저자가 알던 것과 기가 막힐 정도로 달라졌음을 경험합니다.
익숙하면서 동시에 너무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져서
미국 시카고에서의 생활 이후에 다시 돌아간 고향에서 "실향"을 느꼈다는 문장이 인상깊기도 했지요.
축구와 체스를 좋아하고 허영과 조심성이 많은 무신론자이며
한 번의 이혼후 현재 아내를 만나며 두 딸을 둔 아빠 알렉산다르 헤몬.
그런데 차례가 나오기 전 페이지에 적힌
'영원히 내 품에서 숨 쉬는 이사벨에게' 라는 문구가 읽기 전에는 무엇인가 갸우뚱 했습니다.
에세이의 끝으로 갈수록 알겠더라구요.
둘째딸 이사벨이 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난 것.
저자의 슬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때로는 절절한 슬픔으로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오롯이 저자의 삶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 부모님 그리고 이혼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에 관한 상념들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바뀌어진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이 보스니아를 공격하면서 주축이 되었던
맹렬한 민족주의 단체인 세르비아 민주당의 라도반 카라지치.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고 반전 평화시위자들을 향해 총성이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사라예보를
묘사하고 상징하는 문장들이 독자를 저자의 인생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어요.
라도반 카라지치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은 배척하고 파괴시킴으로써
자기 사람들만을 향해 목소리만 높일 뿐,
희생과 살육, 인종청소를 서슴치 않았던 인물이었어요.
카라지치의 행위를 보면서 현재 대한민국에도 소위 정치적 지도라라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움직임 보다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선전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정치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힘만 키우려는 지도자들이 과연 모두를 포용해야 하는 지도자라 할 수 있는지.....
공동체에 이로운 공공선과 번영을 추구하는 지도자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 카라지치 옆에서 엄청난 범죄 모의에 가담했던 가장 존경하는 콜제비치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는
무엇이 정의이고 개개인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무게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구요.
다행스럽게도 보스니아 내전 중에 저자의 가족들은 모두 캐나다로 이민오게 되었지만
안전함은 보장받았을지라도 이민자라는 상황은
내전에서의 차이와 구분짓기로 인한 아픔 만큼이나
이민자 당사자들로서는 난민들이 느낄만한 존재론적 위기도 전해졌어요.
열등감과 불안을 느끼며 살아야 했고
우리 자아를 구성하는 조건들을 절충하도록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이민으로 인한 자아의 변형"
이 한 마디가 저자가 느끼는 상실감을 대변해주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삶은 너무나 연속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강렬한 현재처럼 보였다."
감히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의 인생을 말하긴 어렵지만
알렉산다르 헤몬은 자신이 직접 겪은 삶 속에서
차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가에 대해 꼬집습니다.
독자가 되어 읽은 <나의 삶이라는 책> 은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저자가 곳곳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문장력이
에세이지만 깊이있고 무게감있게 다가왔어요.^^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저마다의 삶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르고 있고
'다름'으로 인해 결코 그 각각의 소중하고 이렇듯 찬란한 삶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모든 인간의 바램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