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두꺼운 한국소설 한 편을 만났습니다.


최수철 작가의 글은 <독의 꽃> 이 처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구요.


<멜랑콜리 해피엔딩> 에도 박완서 작가의 문학정신을 오마주하는 콩트 한 편 실었던 걸 발견했고


저도 읽었었는데 29명의 소설가들의 콩트를 읽다 보니


제 기억속에서는 다소 흐릿하게 남았었나 봐요.


최수철 작가가 5년만에 내놓은 신작소설 <독의 꽃> 은 548페이지 분량의


튼튼한 양장본이고 겉표지 디자인이 책 제목과 상응하는 분위기여서


작가는 처음이지만 읽기 전에 기대되던 소설이었어요.


독, 이질적, 희귀한, 마비, 각성,,,,,, <독의 꽃> 최수철 작가의 소설을 설명하는 어두운 느낌의 키워드들을 보면서


최근에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더 신선한 기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독인 동시에 약이다."




독이었던 상태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삶이 너무나 암울할텐데


어두운 분위기의 책 제목 <독의 꽃>에 비해 의외로


독이 약으로 '화' 할수도 있다는 희망,


독이 해독되면서 정화되는 마무리를 얘기하고 있어서


소설의 마지막이 깊은 어둠에 매몰되지만은 않다는 결말은 개인적으로 맘에 들더라구요.


처음 만난 최수철 작가의 소설, 저로서는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꿈, 환상, 현실과 약간 동떨어져 있고 어긋나는 듯한 흐름에


어떨 때는 배경과 등장인물에 대한 파악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또 어떤 순간은 모호했던 분위기가 굉장히 사실적으로 변모하는 포인트도 있구요.....^^;;


 


감당하지 못하는 독성 물질에 감염되어 병원에 옮겨진 '나' 는


같은 병실 옆 자리에 있는 '조몽구' 라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고 누군가 귀에 대고 웅얼거리는 소리에 괴로워하던 '나'는


어느날 새벽 기이한 존재, 마치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한


동물도 식물도 아닌, 온 몸이 부드러운 털 모양의 가시로 덮이고


긴 이빨에 뱀처럼 갈라진 혀를 가진 존재를 목격하게 되구요.


이후 사라진 '조몽구' 는 '나' 에게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나의 입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프롤로그에서 조몽구와 나의 만남으로 소설이 시작되었고,


본문으로 넘어가면서 조몽구의 유년시절에는 독에 감염된 자신의 현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탄생부터 알게 되는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


몽구에게 중요한 인물 삼촌 수호와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룹니다.


독을 살포하는 행위로 임신을 거부했던 아내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몽구를 태어나게 한 몽구의 아버지.


아내와 동생의 관계도 의심했던 몽구의 아버지는 의외로 실패한 작가라는 설정.


일부러 성병에 노출시키고 그것을 아내에게 똑같이 성병에 걸리게 하면서


그 독이 몽구에게까지 감염되는 가족의 비극이 주를 이루면서


마치 이 세상은 독에 감염된 사람들이 전체 구성원을 이루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만큼


전체적인 캐릭터와 배경 구축이 탄탄했던 거 같아요.


최수철 작가의 <독의 꽃> 을 읽으면서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가 연상되더라구요.


마치 영화속 공간은 뱀파이어의 세상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이 너무나 탄탄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몽구의 아버지는 아내에 대한 애증으로 "아버지의 일기" 를 통해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내용이 나오고 그것으로 인해


몽구도, 독자도 몽구 부모들만 알고 있던 사연을 마주하게 되는 재미랄까....


'아버지의 일기' 부분 전후로 <독의 꽃> 에서


소설을 읽는 재미가 점점 커져가는 시점이었던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두통의 원인이 너무나 궁금했고 괴로웠던 몽구.


몽구 주변인물들과의 화학작용에 의해


그 두통이 어떨 때는 심하다가 어떨 때는 그 독이 약으로 변하면서


두통을 느끼지 못하는, 편안한 순간도 경험하는 몽구의 신체 변화도


소설 속에서 흥미로운 흐름이더라구요.


중학교 진학 후, 두통을 이겨보려 하기보다 타협하려 노력했던 몽구.


수분중독증상으로 사망한 몽구의 어머니는


여러 종류의 독소가 계속 몸 속에 유입되어 마침내 장 내벽을 뚫고


혈류로 새어 들어가 혈액을 오염시키고


간과 신장과 림프절을 무력화시켜서 도미노 효과가 일어나 인체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독으로 시작해서 독으로 마무리되는 최수철 작가의 <독의 꽃> 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유년시절 몽구가 겪는 일들은 청년기, 성년기까지 진행되면서


몽구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는 인물들을 만나는 때여서


독자로서는 소설 전체의 뼈대를 구축하며 읽어가는데 중요한 부분인거 같아요.


이 시작부분이 무너지면 소설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모호해지는 ....^^;;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싶어서 몇 군데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그 이후로 몽구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군대 시절까지의 청년기를 보내면서


몽구가 꿈꾸고 기대했던 환상들이 깨지는 환멸의 시기를 겪는 혼란의 시기 이후에


신문기자로서 능력을 발휘하는 입사 이후의 성년기에는


인생이 새롭게 변모하면서 등장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몽구 몸 속에 있던 독이


해독되어가고 정화되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물론 성인이 된 몽구를 혼란스럽게 했던 술과 성이 등장하는 부분도 재밌더라구요.


술은 인간 몸에 작용하는 독이고, 섹스는 인간 영혼에 작용하다는 독이라는 사실을


몽구가 깨닫게 되고 소설을 읽는 독자인 저도 어렵지 않게 동의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독에 대한 두려움과 환멸, 중독에 대한 피해망상도 심해지지만


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몽구의 심리적 변화들도


소설을 읽어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요.


<독의 꽃> 에는 조몽구만 있는 건 물론 아니예요.


조몽구, 몽구의 삼촌 수호, 몽구의 아버지 영로, 몽구의 어머니 운선,


그리고 몽구 인생속 여자들 자경과 영지.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연애소설인듯 농밀한 표현들이 나오기도....


독은 위험하지만 무척 흥미롭다고 보는 수호의 대사.


독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수호의 말을 보면


소설 <독의 꽃>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뭔가 어긋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독에 민감하고 독을 둘러싼 관념들에 사로잡힌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로 전개됩니다.







p. 105


"네가 다섯 살 때쯤이었는데, 다른 아이들과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는 중에도


너는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고 얼굴 근육을 움찔거리고 자주 이마를 문질렀지.


그날 나는 네 양쪽 팔을 꼭 잡고서 네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어.


그러자 너는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더니 내 손에서 벗어나려 했어.


......


내가 너를 놓아주자 너는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마구 집어던졌지.


그때 나는 네 몸속에서 너 자신이 견디지 못하는 뭔가가 들어 있다는 걸 알았어."



자신의 몸 조차 콘트롤 하지 못하고 독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이런 몽구가


 자경을 살게 하면서 정작 본인은 점점 몸 전체로 고통이 전해짐을 느끼며


온 몸이 푸르게 변색되고 무릎 관절이 뒤틀리며 몰골이 변해가


결국은 동물도 식물도 아닌 기이한 돌연변이 괴물의 모습으로


로드 킬을 당한 짐승의 신세로 버려지는 결말에서는 안타까움과 연민마저 생기더군요.


결국 심부전증으로 사망 ㅠㅠ


주인공 '나'의 무의식 속에서 몽유병자처럼 떠돌던 몽구의 존재,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 세상 속에서 부재로 끝이 났지만


그래도 삶 속에서 해독과 정화의 과정을 거쳤으니


몽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 접어도 되려나요.....!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


"삶의 의미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 있어.


기쁨은 두려움에 대면할 수 있도록 삶이 제공하는 몇 움쿰의 에너지일 뿐이지."





주인공 '나' 가 몽구의 중얼거림으로 들은 이야기인지, '나' 의 상상속 이야기인지,


아니면 화자인 '나' 자신의 이야기인지 경계가 참으로 모호했던 <독의 꽃>.


시대적 현실을 반영하기 보다는 그 자체의 세계 속에서


독자로 하여금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오라고 손짓하던 이 소설, 첨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더니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조금은 알것도 같고.....


물론 아직도 명쾌하진 않습니다만.....


최수철 작가가 실제로 집 마당에서 말벌에 쏘였던 경험이 있긴 했지만


독을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한건 십여년 전부터라고 해요.


이런 소설 속 뒷이야기도 참 재밌지요.^^


과민성 충격이라고 말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 를 직접 경험한 작가는


이 지점을 소설 속에서 독이면서 동시에 약이 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집중했나 싶기도 해요.


독과 약, 대립적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에서 상응하는 관계에 있었던


독과 약의 미묘한 관계.


독에 감염된 어느 인간이 그 대상을 마주하고 맞서며 있는 힘을 다해서 싸웠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독이 타자에게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보여줄 때는 위험하고 섬뜩함도 느껴졌고


우리도 모르게 독인줄도 모르고 곁에 두다가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는 경우와


그 반대로 내 삶에 약이 되어 변화를 주는 존재와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쉽게 읽혔던 소설은 아니지만 또 다른 느낌과 기억을 남겨준 <독의 꽃> 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