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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안네 헤르츠 라는 필명을 따로 갖고 있기도 한 비프케 로렌츠 독일작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 같지만
독일에서는 꽤 지명도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요.
저도 이번에 레드박스(청림출판) 에서 출간한 이 소설, 비프케 로렌츠의 장편소설 처음 만나봤습니다.
요즘 들어 단편집과 인연이 많았던지라
반대로 장편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딱 알맞은 타이밍이었어요. ㅎㅎㅎ
장편소설의 재미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인물들과 함께
기승전결이 있는 삶의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 역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서 하나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느낌을 갖게 하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부분도 생기고
동질감을 느끼는 지점도 있어서 또 소설을 읽는 재미가 배가되기도 해요.
무엇보다도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들이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고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켜 준다는 것에
독자도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소설을 계속 찾게 되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편소설들이 이러한 재미를 주지는 않더라구요.^^;;
그래서 믿고 보는 인증받은 고전 아니고서는
현재 새롭게 출간되는 소설들은 만족도가 어떨지 사실 처음엔 알기 어렵죠.
작가가 인지도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사실 이 책의 작가 저도 생소했던지라
어떤 소설일지, 내 시간을 뺏겼다는 느낌을 안 주는 소설이면 좋겠다는 바램을
배신하면 어쩌나 약간의 걱정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뉴라이프 퍼스널 매니지먼트.
"당신의 인생을 바꿔드립니다!" 라고 쓰고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라고 읽으면 되려나요?^^
어느나라, 어디에도 있을 법한 이런 상담소에 다녀온 이후로
주인공은 전에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385페이지의 두께감이 있는 장편소설 오랜만에 읽어보는데요.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ㅋㅋㅋ
두꺼운 책이었는데 분명히 어느순간 이만큼 읽었네? 기분좋게 술술~ 넘어갑니다.
주인공의 심리를 말해주는 깨알같은 드립이 곳곳에 들어가서
피식 웃음도 나게 하구요,
상담소에서 지우고 싶은 주인공의 과거가 현실로 바뀌는 순간은
판타지 같은데 희한하게 다시 현실과 매듭이 연결되어 지는게 또 신기하게 몰입이 됩니다.
주인공은 샤를로타 마이바흐, 또는 찰리라고 불리는 29살의 여자.
하고 싶은대로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자유로움이 있는 삶을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당차고 프리한 여성이죠. ㅋ
서양의 문화속 모습일수도 있겠지만
남자사람, 나이 많은 남자와도 친구처럼 지내는 발랄한 주인공 찰리가
동창회 초대를 받고 나서 잠시 망설입니다.
친구들은 그저 그런, 지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이 혹여 초라하게 보일까 싶어서죠.
그리고 학창시절 좋아했던 친구 모리츠와의 만남이 부담되는 찰리.
하지만 모리츠 직접 찰리를 찾아와서 동창회에 꼭 나오라고 해요.
왠지 설레임을 느끼던 찰리는 멋진 옷을 한껏 차려입고
제법 예쁘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창회에 가지만 생각지 못한 반전의 상황에
자신의 모든 과거를 지우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아지자 굳은 결심을 합니다.
지나온 과거를 모두 지워주는 뉴라이프에서
실제로 지우고 싶었던 순간들을 골라 지웠는데.....
다음날부터 찰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 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인간관계가 완전히 전과 다르게 뒤죽박죽~~~
우리의 인생은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꼭 하나를 선택하고 그쪽으로 나아가게 되죠.
과거를 지우게 되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경험할 수가 있었고
찰리는 그렇게 그리도 원했던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사이, 부부가 되지만
생각한 것과 다르게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과거의 그 시점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았던 삶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예전에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조차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주인공도 차근차근 파악해가는 과정이 제법 흥미롭더라구요.^^
누군가 나의 삶을 조작하고 편집했고 그 속에 내가 덩그러니
속해 있는 상태의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헤픈 여자가 아닌 조신한 여자가 되어
인생이 "세탁" 된 기분을 찰리는 그래도 만끽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갈수록 이건 행복이 아니라고 느끼죠.
친한 남자사람친구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함을 굉장히 힘들어하고
예전의 친구와 자신의 우정의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결국은 자신의 과거를 지웠던 것 그 자체를 다시 "리셋" 하기로 합니다.
그 이후에 또 다른 반전이!!! ㅎㅎㅎ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주인공 찰리가 너무나 행복해 하는 모습이
활자를 통해서 머리속에 그려지니까 저까지 흐뭇하고 행복해집니다.
스토리 전체의 흐름도 재밌고 작가의 필력도 좋아서 술술 읽히지만
사이사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편적인 깨달음의 문장들이
잠시 잠깐 쉬어가게 해서 좋더라구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ㅋㅋㅋ
행복은 늘 오늘에 달린 거 같아.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 가장 중요해.
자신의 인생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연연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갔을 때와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아주 작고 사소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라도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후회되는 결정들이 있습니다.
주인공 찰리처럼 지우고 싶을 정도의 과거도 남아있겠죠.
하지만 그 누구의 인생도 완벽할 수 없는 법.
당신이 잘못 내린 결정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 이후의 삶이 행복할까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면
후회하고 아쉬워 하는 삶보다
현재의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살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독일소설, 비프케 로렌츠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재밌으면서 무겁지 않게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