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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네주 시노의 『슬픈 호랑이』는 제목부터 강렬하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The Tyger」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폭력과 침묵, 그리고 그 상처가 남긴 긴 그림자를 응시하게 만든다. 시노는 개인의 비극을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무감각까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읽고 나면 무거우면서도 오래 남는 질문을 품게 되는 책이다.

그녀는 피해자가 낼 수 있는 억울함이나 분노를 전면에 내세우며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피의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어떤 아이였는지, 그리고 어떤 아버지였는지, 어떤 이웃이었는지. 그리고 15년의 수감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도 그렇게 풀어낸다. 어떻게 태어나고, 사랑받고, 자라났는지. 그리고 잊지 못할 피해를 입고, 또다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을. 차분하게, 누군가에게 중얼거리듯. 그렇게 의붓아버지로부터의 강간도 삶의 한 부분처럼 이야기 한다.

그녀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유가 있다.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고, 피의자 또한 우리 주변의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사건 이후에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피의자는 수감 생활을 마치면 죄값을 치렀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평생을 그때 그 소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실을 그녀는 분노를 내뿜는 언어가 아니라, 그냥 줄줄이 풀어내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이 박힌다.
이 책에는 클라이맥스가 없다. 사건 자체를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문장에서도 그녀의 우울감을 지울 수는 없다. 그녀는 대학을 가고, 책을 읽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도 상처받은 사람을 보면 바로 알아본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슬픈 눈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멈췄다. 극적인 장면이 없는데도, 어느 순간 문장 하나가 가슴에 걸려서 더 넘어가기가 어렵다. 그녀의 문장은 조용하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크게 들린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더 무섭고, 울지 않아서 더 슬프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텨왔을지를 생각하면,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냥 멍하게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이 불편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피의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함께 서술한다는 것. 그렇다고 그를 이해하거나 용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이 어디선가 자라나고 있고,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삶에 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독자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불편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시노는 그 불편함을 일부러 남겨두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의 제목이 『슬픈 호랑이』인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블레이크의 「The Tyger」에서 호랑이는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강렬한 존재다.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설명하기 어려운 힘. 그런데 시노의 호랑이는 그 불꽃이 꺼지지 않은 채로 슬프다. 피해를 입고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계속 살아가야 하는. 강하지만 지쳐 있고, 무너지지 않았지만 무너진 적 있는. 그녀는 그 호랑이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이름을 제목으로 달았다. 읽고 나서 한참 그 눈빛이 머릿속에 남았다.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