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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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무경 작가의 <1939년 명성아파트>는 시작부터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다. 책을 펼치자마자 입분이라는 인물에게 금방 마음이 붙는다. 부모없는 어린 식모라는 설정인데도 전혀 수동적이지 않고, 눈치도 빠르고, 무엇보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또렷하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입분의 눈을 따라가게 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함께 겪는 느낌이 들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면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는 편이다. 누가 범인일지, 어떤 장치가 숨어 있을지 계속 머릿속으로 그려보는데, 이 책에서는 단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분명 반전이 있는 이야기인데도, 그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라 더 좋았다. 출판사 소개에서도 “입주민 모두가 용의자가 되는 구조 속에서 비밀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 그 말처럼 하나씩 밝혀질수록 긴장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배경이 되는 1939년 경성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원래 이 시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독립운동이나 일제치하라는 가슴 저린, 시대적으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시기인데, 막상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욕망도, 관계도, 불안도 다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낯선 시대인데 낯설지 않다. 그 미묘한 거리감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라고 느꼈다.



특히 좋았던 건, 입분의 시선이다. 사건 현장의 공기나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이 입분의 눈과 귀, 그리고 생각을 통해 전달되는데, 그게 굉장히 생생하다. 웃다가도 어느 순간 긴장하게 되고, 또 어느 장면에서는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다. 단순히 사건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공간 안에 같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 읽었던 '무경'작가의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마님’이라는 인물에서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속의 마담인가? 하는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이번 작품의 중심은 확실히 입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영리하고, 눈치 빠르고, 무엇보다 갈곳 없는 식모인것 같지만 입분이는 스스로 선택한다. 수동적인 입장일 뿐, 능동적인 캐릭터다.


입분이는 답답한 캐릭터가 아니다. 괜히 오해하고 헤매는 캐릭터가 아니라, 상황을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라 이야기가 더 시원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함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입분이가 생각하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상황을 읽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 굳이 입밖에 내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이 판을 봐주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마음 편하고 좋았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작가는 책 말미에 “마님과 입분”이라는 조합으로 시리즈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남겨두었다. 기다림이 즐거울 것 같다. 그 전에 일단, 무경 작가의 다른 작품도 마저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다보니 일본 소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 뻔한 이야기에 질리던 와중에 이런 좋은 한국 미스터리 물이 너무 반갑다. 한국 미스터리 작가분들이 더 힘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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