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에 묻히다 -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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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한일군사협정 추진 파문에 이어서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한일관계의 냉각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일본 내부의 우경화 경향 속에서 센카쿠 열도 문제 등 주변 동아시아 국가와의 갈등이 개재되어 있다. 여기엔 또한 각 지역의 역사인식 문제도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얼마 전 역사비평사에서 출간된 <적도에 묻히다>(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적지 않아 보인다.

 

  1942년 6월, 3천여 명의 조선인 군무원들이 모집되었다. 때는 일제가 조선을 전쟁수행의 병참기지로 만들어 조선인들을 억압하고, 한편으론 적극적으로 동원해갔던 시기였다. 모집된 조선인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남성 청년들로서 일제하의 가난, 탄압, 황민화 교육이라는 구조 속에서 당시로서는 고소득의 월급을 준다는 사실에 전쟁터로 가게 되었다. 이들은 군무원이었지만 사실상의 군인 훈련을 받고, 최전선인 동남아시아 일대로 배치 받았다. 그들은 각지의 포로수용소와 연합국의 민간인을 억류한 억류소에서 일본군 장교·하사관의 지시를 받으며 근무하였다.

 

  반강제적인 상황에서 전장으로 오게 된 군무원들은 한편으로는 일제의 전쟁수행의 협력자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군무원들 속에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꿈틀대고 있었다. 책에서의 주된 공간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일본의 패망이 현실화하고 있었던 1944년 12월 29일, 연합군의 상륙시 일본군을 후방에서 교란하거나 전투를 벌일 목적으로 고려독립청년당이 결성되었다. ‘아시아의 강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고,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의 진의를 소통’하고 유대하면서 민족을 위하여 행동할 것을 결의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년당의 활동은 암바라와에서의 항일 반란(3부)을 제외하면 별 활동을 하지 못한 채 발각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에겐 곧 해방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았고, 조선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인도네시아에선 군무원들과 민간인들이 모여 조선인민회를 조직해 귀국 준비를 하였다. 1946년 4월부터 귀향이 시작되었는데, 막상 군무원들은 따로 분류되어 귀향하지 못했다. 이들은 일제의 전쟁수행에 가담한 혐의로 전범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이 근무했던 포로수용소와 억류소는 헌병대 및 형무소와 함께 ‘조직적 테러 단체’로 간주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재판 결과 140명의 조선인이 전범자가 되었고, 그 가운데 23명이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편으로 조선인 중에는 전후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벌어졌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가한 사람도 있었다. 독립전쟁에 참가한 옛 일본군 병사는 대략 600여 명인데, 그 가운데 조선인들도 참가하고 있었다. 그들이 전쟁에 참가한 동기는 여러 가지겠지만, 저자는 그들의 희생을 조선인과 일본이라는 민족의 벽을 넘어서 인류애라는 보편적이고 숭고한 가치가 포함된 행위로 높게 평가하였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자바의 섬으로 갔던 조선인들은 전쟁 과정에서 독립영웅이 되었거나, 혹은 전범이 된 채 쓰러져갔다. 글 내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우선 일본이 일으킨 전쟁 책임을 묻고 그 점을 망각하고 있는 일본사회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군무원들이 일본인 상관들과 겪었던 일상적인 차별이라든가 ‘내선일체’의 허구성을 이야기하며, 전범으로 몰렸던 군무원들도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본뿐만이 아니라 네덜란드나 연합군이 인도네시아에서 행했던 야욕을 드러냄으로써 제국주의 열강들의 폭력성을 고발하였다. 그 야욕의 굴레 속에서 쓰러져 간, 묻혀간 많은 이들을 소환해내고 위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사뭇 깊다.

 

  다음으로 ‘인권’이라는 말은 얘기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폭압적인 상황을 고발함으로써 인류애적 가치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 과정, 인도네시아 각 섬의 비행장 건설 과정에서 포로와 억류자들, 노동자들에게 국제조약과 협약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과정에서 일본인과 조선인, 타이완인 등의 참가는 인종과 민족의 벽을 넘어선 인류애적 연대였다고 저자는 높게 평가하였다. 인류애의 중요성을 저자는 그 열정과 책임감들이 지금은 어디 있는지, 물으면서 글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이 글은 쓰러져간 조선인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호소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네덜란드군에 잡혀 사형당한 아오키, 하세가와, 양칠성 세 사람 중 앞의 두 사람은 일본의 유족 곁으로 유골이 보내졌지만, 양칠성의 유골은 찾아가려는 시도가 없었다. 고려독립청년당원들은 현재도 생존해 계시는 이상문 선생이 16번에 걸친 청원 끝에 2008년,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겨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두 일본인 연구자들이 인도네시아로, 싱가포르로, 일본과 한국으로 발로 뛴 노력 덕분에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이 책에 포함된 이상문 선생의 말에는 저자들이 이상문 선생에게 “세계 방방곡곡을 다녀서라도 반드시 증거 자료를 찾아낼 테니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달라고 했다”고 한다(370쪽). 전쟁 책임을 망각하는 발언을 제기하는 일본사회의 일각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곱씹어볼 부분일 것이다. 역사분쟁에서 한쪽의 잘못만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성숙도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도 한일간 역사분쟁의 해결, 동아시아 연대에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아쉬움을 하나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료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한 것 자체가 곧바로 ‘인류애적 가치’를 실현시켰던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거기에 참여한 분들의 가치를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나, 참여에는 여러 동기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점을 너무 쉽게 ‘민족을 넘어 선 인류애’로 처리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그런 점들은 사실 이후 연구자들이 사실을 발굴하고 해석하면서 넘어서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끝으로 전범으로 사형당한 박성근이 사형 집행 전 불렀던 시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피로 눈물로 얼룩진 조국 강산

순국의 선열들이 나를 부르네

기필코 나는 가리 선열들의 대열로

선열들은 진심으로 나를 맞으리(292쪽)

- 「종전행」이라는 노래에 「이국땅에서 잠들다」라는 제목으로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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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 - 식민지 근대성론 비판
조경달 지음, 정다운 옮김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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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정다운이 아니고, 일본의 한국사연구자 조경달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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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고객센터 2012-08-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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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 러일전쟁에서 한일병합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7
서영희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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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제의 국권 침탈과 민족의 저항’이라는 인식틀이 한국 근대사 연구와 역사 교육에 자리 잡고 있는 점을 거론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 인식 속에서 백 년 전 망국의 기억을 대물림한 채, 망국의 원인을 깊이 있게 따져보지 못했다는 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왜’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는지를 장기 구조사적으로 해명할 것을 제언하면서 우선 일제가 대한제국을 ‘어떻게’ 식민지화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일제의 국권 침탈 과정 속에서 대한제국의 지배 세력이 보여준 정치적 동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일제의 국권 침탈과 민족의 저항’의 틀 속에도 ‘저항’과 ‘동화’의 양 측면이 공존했던 정치사가 진행되었다는 결론이다.

 

저자가 서술의 방향을 제시한 것처럼 이 책에서는 첫째,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 의한 ‘한일의정서’ 체결, 고문을 통한 내정 간섭, ‘을사늑약’ 체결, 통감부 설치와 내정 장악, 대한제국 병합 등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 과정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각종 조약과 협약의 내용들과 러시아와 미국 등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떻게 대한제국을 점령해갔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둘째, 고종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집권층이 국제법(만국공법) 인식 속에서 밀사외교의 전개와 국제사회에서의 구명을 호소하는 노력과 그 한계가 잘 서술되어 있다. 셋째, 국권 회복의 길목에서도 일제 통감부 세력에 저항했던 세력과 협력했던 세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침탈-저항’과 저항의 이분법적 틀만이 아니라 대한제국 내의 ‘저항’과 ‘동화’의 양 측면도 보여줌으로써 민족 내부의 분열상을 드러내고, 병합으로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넷째, 이와 함께 내용 중간 중간에 스페셜 테마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하거나 그간 논쟁이 되었던 부분을 제시하였다. 특히 ‘을사늑약’의 유무효 논쟁이나 병합조약 무효론 등 강점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인다.

 

끝으로 저자는 근대 정치체제 형성을 둘러싼 민족 내부의 갈등과 일제의 국권 침탈 과정의 의미를 평가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각 정치세력들은 국권 상실의 직전까지도 자신들의 정치 참여 실현에 분주했고, 그들의 역량 미숙 속에 식민지화를 맞게 되었다. 스스로 참정권 획득의 역사적 경험을 갖지 못한 채 민족해방운동이 진행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과제는 근대 ‘민족’국가 수립의 문제로 환치되어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일본 제국주의의 병합과 자발적인 시민 공동체 개념의 미형성이 현대 한국 정치의 미숙성을 낳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 책은 대한제국이 일제의 침략을 받아 멸망해가는 과정을 쉽게 묘사해주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움도 남는다. 우선 병합의 과정을 ‘정치사’에 한정하여 설명하였다는 점이다. 역사문제연구소의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중 대한제국 시기에 정치사 이외에 다른 분야가 고려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제의 침략은 정치·외교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사회경제적·문화적 침투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한 점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면서 병합의 원인과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고종의 생각과 대응만이 지나치게 많이 고려된 것은 아닐까? 특히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외교사, 외교정책의 비중이 큰데, 거기서도 고종의 활동으로 서술되고 있다. 기왕에 정치사에 주목한다면 당시 지배층이나, 지식인들의 인식을 함께 다루면서 국권 침탈의 과정에서 그들의 대응과 한계를 동시에 다루고, 나아가 의병전쟁 등 일반 민중층의 대응도 좀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끝으로 참고문헌이 책 말미에 소개되어 있는데, 본문 중에서 서술의 근거가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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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해고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 몬드라곤 시리즈 1
윌리엄 F. 화이트 & 캐서린 K. 화이트 지음, 김성오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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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대학교 3학년 때 한 수업에서 원주의 여러 협동조합을 둘러보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협동조합이란 ‘농협’밖에 몰랐고, 농협의 관변단체화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그에 아쉬워했던 필자에게 원주에서의 협동조합들의 존재는 새롭게 다가왔다. 신용협동조합과 의료생협, 사회적 기업, 그리고 그 조합들이 농촌사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파괴적 형태의 자본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이채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태가 어떻게 다른 지역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러한 협동조합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유지에 대한 우려가 너무 잘 되어가는 기대감을 너무나도 주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에 관한 두 책이 역사비평사에 의해 출판된 것이다.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또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 김성오가 옮기고 직접 쓴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이하 1권), 󰡔몬드라곤의 기적󰡕(이하 2권)이다. 1권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화이트 부부가 몬드라곤이라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 돈 호세 마리아 신부에 의해 창설된 과정부터 그들이 현지조사를 마지막으로 수행한 1990년 무렵까지 몬드라곤의 발전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미 출판이 되었던 것을 이번에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2권은 그 이후 몬드라곤이 그룹으로 발전하여 다국적 기업집단으로 확대되고 변화를 겪은 것, 또 이러한 몬드라곤의 실험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를 김성오가 쓴 내용이다. 따라서 두 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협동조합은 다른 기업과 비교하여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성장의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소규모 지역에서만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에 협동조합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협동조합에 대한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많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 몬드라곤을 접하고나면 어느 정도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불식될 수 있다. 몬드라곤은 약 260개 회사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몬드라곤은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을 능가할 정도이며, 해외에 수십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몬드라곤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내부의 조합원, 노동자들은 한국의 여러 대기업과는 다르게 고용 안정을 보장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조합의 이사와 경영진들은 기업과 조합을 누구들처럼 자신들만의 ‘소유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몬드라곤의 성장과 해외로까지의 팽창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기도 한다. 이 역시 협동조합의 탈을 쓴 다국적 자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글을 읽는 내내 그러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권에서 나오듯이 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의 설문을 보면서 의심이 풀렸다. 135명의 노동자들은 사기업에 일하는 게 더 좋다는 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고, 다른 직장에서 많은 보수를 준다고 해도 모두가 몬드라곤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수익성이 노동자의 만족에 앞서느냐는 질문에도 모두 부정하였다. 의사결정 과정의 발언권이 본인이 버는 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도 모두 동의하였다. 이와 같이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생각, 연대와 협동의 정신, 공동체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몬드라곤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아무리 대다수가 바라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어도 불만이 팽배하고 불안정성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큰 차이이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1권 357쪽) 창립자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자주 썼던 말, 이후 협동조합의 하나의 모토라고도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몬드라곤은 성장에도 자족하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것이 현재의 몬드라곤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다른 사회주의와 다르게 어떤 특정한 유토피아를 상정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를 옳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여기에 성장과 수익의 창출이라는 가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비와 상술, 협박으로 성장하지 않는 진정한 슘페터리안적인 혁신적 기업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초기 협동조합의 연대와 협동의 원칙은 고수해갔고, 그 방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몬드라곤은 현대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두 책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몬드라곤의 구조와 성장 과정은 잘 정리되었지만, 정작 초기 몬드라곤의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에 가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설명되지 않았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어떻게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협동조합을 경험하고 그 사상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협동조합의 씨앗을 어떻게 뿌려나갈 수 있었는지는 현재 한국사회 등 여러 곳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실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데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의 존재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대안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몬드라곤의 존재가 김성오의 말과 같이 자본주의 문명에 새로운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매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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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의 기적 -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 몬드라곤 시리즈 2
김성오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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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학교 3학년 때 한 수업에서 원주의 여러 협동조합을 둘러보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협동조합이란 ‘농협’밖에 몰랐고, 농협의 관변단체화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그에 아쉬워했던 필자에게 원주에서의 협동조합들의 존재는 새롭게 다가왔다. 신용협동조합과 의료생협, 사회적 기업, 그리고 그 조합들이 농촌사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파괴적 형태의 자본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이채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태가 어떻게 다른 지역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러한 협동조합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유지에 대한 우려가 너무 잘 되어가는 기대감을 너무나도 주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에 관한 두 책이 역사비평사에 의해 출판된 것이다.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또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 김성오가 옮기고 직접 쓴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이하 1권), 󰡔몬드라곤의 기적󰡕(이하 2권)이다. 1권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화이트 부부가 몬드라곤이라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 돈 호세 마리아 신부에 의해 창설된 과정부터 그들이 현지조사를 마지막으로 수행한 1990년 무렵까지 몬드라곤의 발전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미 출판이 되었던 것을 이번에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2권은 그 이후 몬드라곤이 그룹으로 발전하여 다국적 기업집단으로 확대되고 변화를 겪은 것, 또 이러한 몬드라곤의 실험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를 김성오가 쓴 내용이다. 따라서 두 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협동조합은 다른 기업과 비교하여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성장의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소규모 지역에서만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에 협동조합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협동조합에 대한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많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 몬드라곤을 접하고나면 어느 정도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불식될 수 있다. 몬드라곤은 약 260개 회사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몬드라곤은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을 능가할 정도이며, 해외에 수십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몬드라곤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내부의 조합원, 노동자들은 한국의 여러 대기업과는 다르게 고용 안정을 보장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조합의 이사와 경영진들은 기업과 조합을 누구들처럼 자신들만의 ‘소유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몬드라곤의 성장과 해외로까지의 팽창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기도 한다. 이 역시 협동조합의 탈을 쓴 다국적 자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글을 읽는 내내 그러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권에서 나오듯이 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의 설문을 보면서 의심이 풀렸다. 135명의 노동자들은 사기업에 일하는 게 더 좋다는 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고, 다른 직장에서 많은 보수를 준다고 해도 모두가 몬드라곤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수익성이 노동자의 만족에 앞서느냐는 질문에도 모두 부정하였다. 의사결정 과정의 발언권이 본인이 버는 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도 모두 동의하였다. 이와 같이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생각, 연대와 협동의 정신, 공동체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몬드라곤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아무리 대다수가 바라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어도 불만이 팽배하고 불안정성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큰 차이이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1권 357쪽) 창립자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자주 썼던 말, 이후 협동조합의 하나의 모토라고도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몬드라곤은 성장에도 자족하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것이 현재의 몬드라곤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다른 사회주의와 다르게 어떤 특정한 유토피아를 상정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를 옳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여기에 성장과 수익의 창출이라는 가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비와 상술, 협박으로 성장하지 않는 진정한 슘페터리안적인 혁신적 기업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초기 협동조합의 연대와 협동의 원칙은 고수해갔고, 그 방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몬드라곤은 현대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두 책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몬드라곤의 구조와 성장 과정은 잘 정리되었지만, 정작 초기 몬드라곤의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에 가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설명되지 않았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어떻게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협동조합을 경험하고 그 사상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협동조합의 씨앗을 어떻게 뿌려나갈 수 있었는지는 현재 한국사회 등 여러 곳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실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데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의 존재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대안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몬드라곤의 존재가 김성오의 말과 같이 자본주의 문명에 새로운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매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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