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에서 배우자 - 해고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 몬드라곤 시리즈 1
윌리엄 F. 화이트 & 캐서린 K. 화이트 지음, 김성오 옮김 / 역사비평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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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대학교 3학년 때 한 수업에서 원주의 여러 협동조합을 둘러보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협동조합이란 ‘농협’밖에 몰랐고, 농협의 관변단체화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그에 아쉬워했던 필자에게 원주에서의 협동조합들의 존재는 새롭게 다가왔다. 신용협동조합과 의료생협, 사회적 기업, 그리고 그 조합들이 농촌사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파괴적 형태의 자본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이채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형태가 어떻게 다른 지역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러한 협동조합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유지에 대한 우려가 너무 잘 되어가는 기대감을 너무나도 주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에 관한 두 책이 역사비평사에 의해 출판된 것이다.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또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 김성오가 옮기고 직접 쓴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이하 1권), 󰡔몬드라곤의 기적󰡕(이하 2권)이다. 1권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화이트 부부가 몬드라곤이라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이 돈 호세 마리아 신부에 의해 창설된 과정부터 그들이 현지조사를 마지막으로 수행한 1990년 무렵까지 몬드라곤의 발전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미 출판이 되었던 것을 이번에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2권은 그 이후 몬드라곤이 그룹으로 발전하여 다국적 기업집단으로 확대되고 변화를 겪은 것, 또 이러한 몬드라곤의 실험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지를 김성오가 쓴 내용이다. 따라서 두 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협동조합은 다른 기업과 비교하여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성장의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소규모 지역에서만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에 협동조합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협동조합에 대한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많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 몬드라곤을 접하고나면 어느 정도 그러한 편견과 비판이 불식될 수 있다. 몬드라곤은 약 260개 회사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하나의 기업 집단으로 조직되어 있다. 몬드라곤은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을 능가할 정도이며, 해외에 수십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몬드라곤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내부의 조합원, 노동자들은 한국의 여러 대기업과는 다르게 고용 안정을 보장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조합의 이사와 경영진들은 기업과 조합을 누구들처럼 자신들만의 ‘소유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몬드라곤의 성장과 해외로까지의 팽창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기도 한다. 이 역시 협동조합의 탈을 쓴 다국적 자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글을 읽는 내내 그러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2권에서 나오듯이 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의 설문을 보면서 의심이 풀렸다. 135명의 노동자들은 사기업에 일하는 게 더 좋다는 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고, 다른 직장에서 많은 보수를 준다고 해도 모두가 몬드라곤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수익성이 노동자의 만족에 앞서느냐는 질문에도 모두 부정하였다. 의사결정 과정의 발언권이 본인이 버는 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도 모두 동의하였다. 이와 같이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생각, 연대와 협동의 정신, 공동체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몬드라곤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아무리 대다수가 바라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어도 불만이 팽배하고 불안정성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큰 차이이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든다”(1권 357쪽) 창립자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자주 썼던 말, 이후 협동조합의 하나의 모토라고도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몬드라곤은 성장에도 자족하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것이 현재의 몬드라곤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다른 사회주의와 다르게 어떤 특정한 유토피아를 상정하지 않고, 하나의 가치를 옳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여기에 성장과 수익의 창출이라는 가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비와 상술, 협박으로 성장하지 않는 진정한 슘페터리안적인 혁신적 기업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초기 협동조합의 연대와 협동의 원칙은 고수해갔고, 그 방향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몬드라곤은 현대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두 책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몬드라곤의 구조와 성장 과정은 잘 정리되었지만, 정작 초기 몬드라곤의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몬드라곤에 가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설명되지 않았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어떻게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협동조합을 경험하고 그 사상을 공부하게 되었을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설명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협동조합의 씨앗을 어떻게 뿌려나갈 수 있었는지는 현재 한국사회 등 여러 곳의 협동조합 운동에서 실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데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몬드라곤의 존재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대안공동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몬드라곤의 존재가 김성오의 말과 같이 자본주의 문명에 새로운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매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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