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주 특별한 고양이가 있다. 바로 클래식 음악을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종종 텔레비젼에서 노래부르는 고양이를 봤다고, 그 고양이는 음반을 틀어놓으면 음반에 맞춰서 노래를 부른다는데 그저 구분 좀 한다고 해봤자 노래부르는 것 밖에 더 있냐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물론 노래부르는 고양이나 개는 1년에 한두번씩은 꼭 나오지만, 내 고양이는 아주 특별하다.
처음에는 에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똥고양이는 그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자마자 이름이 바뀌고 말았다.

'크라식.'

이건 이름을 바꾸길 주장했던 아버지가 일본식으로 불러준 이름이었다.
이제 이 녀석도 이게 자기 이름인지 알기 때문에 화장실 물 몰래 훔쳐먹던 버릇대신 우아하게 밥그릇에 담긴 물만 마시게 되었다.

"크라식은 특별한 고양이여. 그러니까 우리 텔레비전 고쳐야 한당게!"

도대체 어디 사투리인지도 모를(아버지는 순수 서울 깍쟁이이시다.)사투리를 섞어가며 고장난 텔레비젼을 수리해야한다고 하셨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애초에 크라식을 안고 들어오신 게 이분이시다. 고장난 텔레비전을 혼수로 들고 오신 분도,부부싸움 하느라 브라운관 정중앙에 구멍을 만들어놓으신 분도...)는 레코드는 고쳐도 그놈의 누워서 보는 버릇하는 텔레비젼은 못 고치겠노라고 싸늘하게 대꾸했다.

실직한지 이제 5년.
처음에는 일을 그만두기에는 젊지 않은가...싶은 58세에서 벌써 5년이 지났다.아직 노인이라 부르기엔 이르지만 실직이 아버지의 건강에 미친 영향은 꽤 컸다.
나름 슬림한 몸매를 자랑하던 아버지가 점점 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돈을 버는 가장입네 하는 자세때문인지 항상 딱딱한 어투였는데, 언제부턴가 라디오 쇼프로그램을 자주 듣기 시작하시더니-아마 컬투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점점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것이었다. 유머감각이 아마 어머니와의 사이를 좀 낫게 하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기대탓인지도...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사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연금이 나오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 그동안 크라식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크라식을 데려온 건 어머니이니 결정권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더더군다나 크라식은 이 집에 들어올 당시 아버지에게 엄청난 구박을 받은 사연이 있었다.
이 사연은 물론 아버지가 크라식의 사연을 더 애절하게 보이게 한다고 말한 근거가 되기도 했다. 크라식이 좋아하는 음반이나 크라식이나 소유권은 어머니에게 있으니 그 모든 게 일언지하게 거부되었다.
물론 크라식은 내 고양이이기도 하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는 어머니는 크라식에게 밥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크라식의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고양이의 법칙상 밥주는 사람이 주인...나머지는 동거인.

하여간에 크라식이 어떻게 음반을 듣고 구분하느냐고 하면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비발디의 오페라 중 바자제인데, 비비카 주노가 나는 학대받는 아내라오...를 부르기 시작하면 높은 음(아마 제 딴에는 하이씨인듯한,)을 불러제끼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비발디닷! 이라는 뜻이다.
근데 나는 비발디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클래식 자체도  딱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나는 조수미가 부르는 편안한 팝페라가 좋다.-중간에 조수미로 판을 갈아 끼우는데   이 녀석이 우르르르릉냥캬앗!  을 시전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끝인가? 아니다. 물론  어머니는 팝페라도 좋아하시지만  비발디보다는 피셔 디스카우가 노래하는 슈베르트의 마왕을 좋아하신다.  
킄라식의 취향은 여주인도 조금 닮았는지 이 녀석은 노래는  짜증은 내지 않고 고 어머니곁에 자리 틀고 앉아 졸기 시작한다.
슈베르트의 우울한 취향이 녀석에게는 자장가인지...
하여간 이것도 훈련하면 는다고....
요즘 아버지는 그 소소한 구분법을 체계화시키기 위해서 훈련을 하시기 시작했다.

영재야! 네 엄매 음반  작가 구분을 우예하노?

그 알 수 없는 사투리 구사에는 어떻게든 텔레비젼에 나가 용돈벌이라도 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히 보였다.

"글쌔요..."

쌤통이대 싶지만, 내버려두면 아버지는  곧 나가서 크라식, 아니 에비를 못 살게 굴 것 같아서 얼른 대답했다.

"아버지, 정  구분이 안되시면 제 아이패드에  적혀 있는 것 보고 하시면 돼요. 요즘 웬만한 음반은?"

헉!! 아버지가 어머니의 음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더더군다나 지금 고르고 있는 건  어머니의 고급 레코드판!
크라식이 마침 아버지의 손에서 좋아하는 쥐포를 발견했다.
저 영감님이 마누라 몰래  냉장고에서  크라식 간식으로 있던 쥐포를 입에 물고....
캬앙!

잠깐동안 인간과 묘종 사이에 큰 싸움이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레코드를 예전에 수집했던 수석위로 집어던지면서-겨냥은 크라식을 향해서 했다.-
이노무 자식!을 시전했고 어머니가 애써 소장했던 레코드는 그걸로 아작이 나버렸다.
그 이후 열뻗은 아버지가 크라식을 잡겠다고 소란을 피우다가 고가의 엘피도  박살이 나버렸다.

어머니는 곧 돌아왔고, 화를 내면서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버지는 사나이 체면을 뭐 그런거 가지고 깎냐고 짜증을 내고는 "이노무 집구석 꼴 보기 싫다."고  마지막으로 뱉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어머니도 한동안 속상해가지고 집을 나가서 밤  12시에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그때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때사 어머니가 크라식을 찾기 시작하셨다.
자기 전 -그러니까 크라식이 자기 전-에 틀어놓는 가곡집.
베토벤의 아델라이데를 덜덜 돌아가는 구형 컴퓨터에 넣고 틀기 시작했는데 크라식의 골골거리는 소리가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영재야!

이 집에서 크라식아! 하는 소리보다 더 들리지만 두분 부모님에게 비중이 덜한 소리가 오늘 두번 들렸다.

"크라식 가 어디 갔나?"

설마하니 문 여는 동안 사라졌나 싶었지만 클래식 음반도 구분할 줄 아는 고양이가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할리는 없었다. 당연히 업둥이 고양이 출신이니 바깥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지도 알테니...

"글쎄요?"

크라식이  없어진 것이다. 어머니는 레코드가 박살난  것보다 더 상심했고, 더욱 어머니를 속상하게 한 것은 아버지가 사라져서 한달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한달동안 우리집에서는 고장난 레코드보다, 더 잘돌아가는 구형 컴퓨터가 있는데도 그 좋아하시는 클래식 음악이  울려퍼지지 않았다.

--------------------------------------------------------------------------------------------------------------------------
편의상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이 단편에 나오는 클래식은 라벨,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 근현대의 음악가들을 포함한 것입니다. 물론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가 있지만...편의상...그렇게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