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독한 아이였습니다.
그의 첫마디로 문장은 시작되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고독한 인형사를 떠올렸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인형을 만들겠지.
그게 구체관절인형인지, 천인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땀한땀 인형옷을 만들고 인형 머리에 머리카락을 심을 거야.
아아, 고독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는 직업이 아닐까...
내 망상에 책상에 앉아서 소설을 쓰고 있던 사촌언니가 비웃었다.
"그건 다 팔아먹기 위해서 하는 거야. 별다른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라고. 더더군다나 인형만 만들고 있다고 누가 밥을 준대니..."
다른 건 몰라도 실행력 하나만은 알아준다는 나인만큼 신문에 실린 그 기사의 주인공을 찾아가기로 했다.
미리 전화를 하고-제자인듯한 사람이 받으면서 곤란하다고 흘리긴 했다.-그 사람에 대한 기사를 모으고-기껏 가서 할말이 떨어지면 안되니까.-거기까지 갈 여비를 계산하고-돈이 모자랄 일은 없지만-하면서 근 열흘을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어느 누구랑 소설을 같이 쓰면서 살다가 머리끄댕이를 잡혀서 온 사촌언니는 여전히 냉소적이었지만 가족들은 내가 정말 대견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손재주는 우리 집에서 알아주는 손재주이고,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진로 탐색하는 중이니, 잘하면 예술가 하나 나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뭐 별건가."
그러는 자기도 밥만 먹으면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주제에...
사촌언니는 빈정거리기를 밥먹듯 했다. 그 열흘동안.
"네가 인형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예술가가 될 것 같니? 아니면 내가 3년동안 내내 글만 쓴다고 해서 소설가가 될 것 같니?"
물론 그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숨어 있었다.
바로 자기가 소설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
보통 말에는 자신의 마음과 미래가 담긴다. 그러니까 언니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열흘 뒤, 나는 경기도 파주에 있다는 그 인형사의 작업실앞에 서 있었다.
보통 고독하리라고 생각되는 작업실이 아니라, 파주 외곽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동네였다.
그리고 그 작업실에서는 떠나갈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왜 그래..."
딩동.
차임벨을 울렸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딩동.
미리 내가 오는 것을 알고 문 열어주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닐까.
딩동.
세번째 울리자 벌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렸다...하는 것은 내가 기다리는 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옆집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지만.
"까르르르...아이. 이러지 마."
소스라칠 정도로 교태 넘치는 목소리에 문을 열고 나온 아주머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쌍년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도대체 그칠 줄을 모른다니까."
"저기, 안녕하세요.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뭘 여쭤봐. 저 소리 못 들었어?"
아주머니는 저것들때문에 집값내려간다면서 투덜거렸다.
"저기, 여기가 소oo 인형사님 댁이 아닌..."
"맞아. 하지만 인형은 1년에 3개 만드나 마나하지. 나도 처음에 몇번 갔었는데 맨날 남자만 끌고 돌아다녀서 실망했어. 요즘도 술에 떡이 되서는 거의 매일 우리 집문을 발로 찬다구. 정말 쌍년이야."
고독하긴 개뿔이...
라고 투덜거리던 사촌언니의 혜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미련을 못 버린 나는 차임벨을 30번 가까이 울렸다.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탈색해서 흰 머리카락을 하고 영구 화장을 해서 모양새 있는 진한 눈썹에, 아침부터 화장을 두텁게 했는지
붉은 입술에 하얀 설화석고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등을 벅벅 긁으면서 문을 열었다. 물론 옆에는 아까 전 웃음소리를 내게 한 주인공이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아이 참 끈질기기도 하지. 잡지 안 봐!"
그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두 사람은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란 나머지 문이 닫기기 전 들고 간 가방을 문 사이에 끼우고 말았다.
"잠깐만요 인형사님을 뵈러 왔어요!"
"...인형사? 너 아직도 인형 만들고 있었냐? 별일이네."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높은 음으로 씨발! 이라고 투덜거리더니 내 가방을 확 밀어버렸다.
"너 당장 돌아가!"
그녀가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가방을 들이대! 너같은 것들이 요즘 얼마나 많이 오는 지 알아? 귀찮아죽겠어. 정말."
그리고 두 사람은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요란한 -무슨 사람들의 비명소리같은-음악이 동네를 가득채웠다.
"그래서 예술가는 찾았니?"
돌아와보니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사촌언니가 담담하게 물었다.
"...아니."
"쫓겨났구나."
"...아니야."
"뭐 보아하니 실망한 것 같은데?내가 너무 김을 뺐나?"
사촌언니가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나랑 살던 언니는 데뷔했는데...그 언니도 예술가스럽진 않았어. 노력만 계속 하고..."
"...천재는 노력 안 해도 되나봐."
사촌언니는 책상에서 일어나 커튼을 다시 쳤다.
"순간의 관심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도 일하고 있으니 네가 못 할 일은 없을 거야...근데 아직 인형사 하고 싶어?"
응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응이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언니는 쿡 하고 웃더니 헐렁한 옷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상자를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
"미니 재봉도구야. 한번 해보라고. 우선은 천인형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첫 시작이 튼튼해야 되니까."
"응. 고마워."
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미술계에서는 조금 이름을 알린 인형사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내 인형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세계를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소oo작가를 사숙했다고들 한다. (그건 그녀의 주장이다.)하지만 내 첫시작은 사촌언니가 준 단순한 재봉도구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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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토모 나라가 남자라는 걸 안 게 최근입니다. 최근 그를 다룬 영화를 보고 있거든요.
인형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표정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굉장히 따분하죠.
이 초쓰기는 창작블로그에 있는 꿈같은 소설의 연작입니다.
저 머리끄댕이를 잡혀서 끌려왔다는 아가씨가 거기에 나오죠.
그러니까 이건 미래 소설입니다 미래소설이에요. 암요.
이것도 오마쥬라고 하면 오마쥬인것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의 타에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세설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재미있으니까요. 타에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