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깐, 우리는 유언장 건에 대해서 잠깐 넘어가야 한다.
현재 등장한 인물들 중, 은미나 정의에 대한 내용은 축소된 면이 많이 있으므로, 은미 이야기는 나중에 하더라도 정의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유언의 내용은 후에 서서히 밝히기로 하고...
우선은 병률의 손이 닿은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하자.
“누구 맘대로 여길 들락거려?”
사건은 서장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조사는 미제사건으로 돌아가고, 서장은 은밀하게 정의에게만 모종의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당연히 기존 사건을 맡던 형사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치고 들어온 유약한 정의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여긴 네 자리 없어. 당장 꺼져!”
같은 자리에 근무하지 않아도 누가 누구의 입김이 닿은 인물인가 정도는 서로가 잘 아는 이야기였다.
“못 나갑니다.”
정의가 평소의 유약한 표정을 지우면서 대꾸했다.
“서장님이 말씀...”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의자를 정의에게 집어던졌다. 과격한 폭력이었지만 정의는 그 정도에 겁먹지 않았다. 의자는 정의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나가자. 나가서 이야기하자. 정의야. 우선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팀장이 정의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그때 은미가 송정의가 근무하는 경찰서 문 앞에 서 있었다.
“호, 여기가 그 사람이 근무하는 곳이구나.”
그녀는 혼잣말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유학시절이나 사무원으로 근무할때나 주변 사람들과는 항상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 혼자서 혼잣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잣말을 하게 된 자신이 오히려 더 충실감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길준이나 준구에게 업무지시를 받긴 하지만, 업무의 성격상 그들의 지시는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으므로 그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뭐 하시게요?”
민원대의 경찰은 불친절했지만, 은미 자신도 예전에 아르바이트할 때 그런 적이 많았으므로 아르바이트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계급은 잘 모르겠고, 혹시 송정의씨라고 계시는지...”
“아, 정의씨요? 방금 잠깐 나가셨는데요...”
은미는 자신이 길준과 병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병률에게는 길준을 최후에 배반하게 하는 수단이고, 한때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를 닮은 대체품이었다. 길준에게는 역시 아내를 닮은 여자지만, 자기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자에게 마음은 열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아직 길준보다는 병률쪽에 마음이 더 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병률이 그 말실수를 한 후에는 더 이상 사랑해야 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두 남자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아직도 평균대 정도에 불과했다.
그녀가 그들을 돕거나 그들을 위기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단지 언니의 복수만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거나 저렇거나 간에 두 사람의 문제에서 송정의는 굉장히 특별한 인물이었다.
병률은 정의에게 길준을 조사하게 만들 것이고, 길준은 송정의가 일을 진행하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미심쩍어하면서 조사할 게 뻔했다.
“자 이제 됐나?”
팀장은 정의에게 뭔가를 건네고는 서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정의를 기다리고 있는 은미를 보았다. 굉장히 낯이 선 느낌, 하지만 처음 본 건 아닌 것 같은 그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정의가 서 안으로 발을 들이려고 한 순간 은미가 그를 불렀다.
“송정의씨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