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준은 언젠가부터 예전처럼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젠 소설가의 꿈은 버렸는데, 항상 함께해주던 아내는 이제 없는데. 그런데도 자신은 글을 쓰고 있다.
꿈같은 상황이 아닌가. 이젠 더 이상 글로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돈이 있으니 그 돈의 이자로도 충분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어차피, 안 될 일이야.’
글에 대한 욕망으로 더 이상 불타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건, 죽은 문어의 살아있는 신경이 있는 다리를 포크로 꾹 찌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뭘 쓰고 있으십니까.”
이준구가 어느새 들어왔는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얼른 컴퓨터 화면을 손으로 가렸다.
“아, 잠깐 웹서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잠시 맡은 할머니에게 좀 좋은...”
“...그건 제가 알아서 했습니다. 그것 보다 어머님 인상착의와 닮은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만, 별로 찾지를 못하겠더군요...”
“......”
길준은 침묵했다. 아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일시적인 미움으로 어머니를 구할 수 없는 바닥으로 밀어뜨렸따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놈의 유령이 뭐라고, 그 유령의 손가락질 하나에 어머니를 버리다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지만 표시를 하지 않으려고 그는 무척 애를 썼다.
그리고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사실 아내의 유령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아마, 돌아가셨을 겁니다. 상대는 악독하니까요.”
“...그러니 더욱 조심하셔야...”
“준구씨는 어떻습니까.”
길준은 활발해지려고 노력하면서 준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랫사람에게 하는 행동이었고, 길준은 과거에 그런 태도를 보인 상관을 상당히 싫어했었다.
의식하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길준은 그렇게 변했다.
“...잠깐 가족을 만나고 오셔도 될...”
그 말에 준구가 고개를 저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정체를 밝히지 않기로 했으니 끝까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의 복수가 끝나면 난 언제든지 가족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군요.”
“그것보다 법인이 생기면 첫 등록할 노인분인데, 한번 만나보시지 않겠습니까?”
길준은 대답대신 딴 말을 했다.
“법인의 이사는 곧 정해야 할텐데...적임자는 찾으셨습니까?”
준구는 그 말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이 어깨를 빌려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인간성에 실망할 태도였다.
이사가 누가 되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환자조차 외면하는 사람이 세우는 재단이라면 그건 준구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준구는 등을 돌렸고, 길준은 손으로 덮었던 컴퓨터 화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그녀는 몇 시간이나 유린당한 후에야 그 무리들에게서 풀려났다. 그리고 그의 남편은 그 시간 그녀의 적이고, 원수인 상대를 위해서 호스트클럽을 뒤지고 있었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분노였고, 분노 아니, 그 이상의 것이었다.
과거가 그를 돌려세웠고, 이제 그는 적들의 심장에 박아넣을 글들을 쓰고 있었다.
문학상을 받기 위해서, 문학에 고매하게 투신하기 위해서, 문학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심지어는 정의도 아니었다. 다만, 한 영혼만을 위한 복수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