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쉽게 넘어가는 답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나의 결론을 내기 위해서 항상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건 내 좌우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

 

갑자기 나타난 6살짜리 딸애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여자친구가 많긴 했지만 한번도 실수해 본적이 없는데...아직까진 직업도 없기 때문에 애를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노력해본다고 1주일 있어봤는데...아닌 건 아닌거다.

애가 물론 울고 심통부리는 건 아니었지만.

애 엄마? 애를 던져놓고 뛰쳐나가버렸다.

 

“여기가 어디야?”

 

그래서 답. 고.아.원. 내지는 보. 육. 원.

그래도 애기를 내버리는 건 아니니까 싶었지만.

 

“보육원이야. 아빠 올때까지 여기 들어가야 하는...”

 

“아빠. 나 버리는 거야?”

 

...조숙하기도 하지.

그래. 바로 고아원으로 데리고 간 게 너무 순진한 방법이었다는 거 인정한다.

그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아빠. 놀이공원 가자.”

 

“어...어. 응.”

 

답을 애가 먼저 내놓으니 할 말도 없다. 그래. 거기가 그래도 좀 낫겠지.

보육원은 너무 쓸쓸하다. 붉은 벽돌이 곧 허물어질 것 같았다.

 

“아빠.”

 

“응?”

 

“저거 타고 싶어.”

 

이거 타고 싶다. 저거 타고 싶다. 등등.

이야기를 듣고 회전목마에서 인형로봇 있는 데, 여기저기...

순한 애인건 맞는데 욕심이 많다. 언제 버리고 튈까 했지만 시간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마감시간때까지 애 손잡고 여기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왔다갔다 해야만 했다.

 

“재미있지?”

 

내 계략이 간파당한 걸까. 나는 씁쓸한 마음에 지갑에 남은 돈을 세보았다.

만원 남았다. 돌아갈 정도의 차비...

 

“응. 아빠는 나 못 버려서 섭섭했겠다.”

 

“......”

 

이것을 조숙하다 해야 할지. 여우같다 해야 할지. 내 딸내미지만 머리가 너무 좋다. 날 안 닮아서 좋은데, 잠깐...

 

“그래도 아빤 착해. 엄마가 아빠 착하다고 했어.”

 

“......”

 

혹시나 하는 생각이 목욕탕의 거품같이 보글보글 솟아오르지만 참았다.

난 아빠지만 이 애 이름도 모른다.

 

어쩌면...

 

“집에 가자.”

 

“응.”

 

집에 가면 먹을 것도 없을 것이다. 교통비 탈탈 털어 가서 남은 돈으로 야채나 몇 개 사서 된장국 끓이면 그걸로 삼시세끼 이틀이면 끝이다.

어떻게 키울까. 보다 어떻게 먹고 살까가 먼저다.

아이를 키우기에 남자는 어쩌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진짜 아버지를 아는 건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운한 경우, 여자도 아이의 아버지를 모를 수 있다.

 

나는 남은 돗대를 피우면서 잠자는 애를 봤다. 관상을 보아하니 지금껏 여러군데를 전전한 모양이다. 물론 데리고 올 때는 땟국물도 빼고 데려왔겠지만 그 어투, 태도 등에서 알 수 있었다. 하루면 모르지만 1주일이지 않은가.

내일이면 정확히 8일째였다.

 

나는 지갑에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야채사고 남은 돈 5천원.

집에서 송금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집에 아이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아니 하기도 전에 결말은 나리라.

 

심사숙고해야 한다. 남의리.

남은 건 의리밖에 없지 않은가. 남자의 의리, 형제의 의리, 애인의 의리, 그리고 아버지의 의리...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진지하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

내 성격, 내 좌우명은 사실을 피하지 말라고 날 공격한다. 평소에 찾던 의리가 이렇게 날 죄어올 줄은 몰랐다.

 

아침이 되었다. 된장국을 끓이면서 물을 가늠한다. 송금 올때까지 둘이서 얼마가지고 먹을 수 있을까. 내가 먹고 쟤까지 먹일 수 있을까?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면 난 이렇게 말하고 말리라. 그럴 바에는 지금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아빤, 울 아빠 아냐.”

 

어느새 다가왔는지 애가 뒤에서 말했다. 할렐루야! 인샬라! 나무아미타불! 만세! 하려고 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어...”

 

바보같이 어 소리만 내고 있는데 애가 말했다.

 

“된장국만 먹고 살 순 없잖아. 아빠 잘 있어.”

 

야무지게 옷 입고 운동화끈을 조인 후 아이가 내게 다시 말했다.

 

“아빠. 된장국 끓어.”

 

이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아빠란 소리는 떨어지지 않는다.

 

“야! 너 어디가!”

 

“새 아빠 구하러 가.”

 

“...뭐?”

 

“새 아빠. 돈 많고 잘생긴 우리 아빠.”

 

그리고 아이는 문을 열고 나갔다.

아마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자기를 보면서 계속 걱정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아마 애 생각으로는 자기 아빠는 잘 생기고 돈 많고, 다정한 그런 아빠이리라.

구질구질하게 혼전관계로 제 앞가림도 못하는 그런 아빠가 아니라, 그런 엄마가 아니라.

그나저나 엄마가 오기도 전에 나갔으니...

 

“내버려둬.”

 

전화상으로 들은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왜? 우리 애잖아.”

 

“꼭 키워야 된다는 법 있어?”

 

“그럼 너 나한테 애는 왜 데리고 왔는데?”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줄 몰랐어. 직업도 없는 줄 몰랐고.”

 

아마 그녀도 남은 돗대를 피우고 있으리라.

 

“지금까지 6명 찾아다녔어. 하나는 결혼했고, 하나는 장사하고 있고, 하나는 엘리트가 되긴 됐는데 질겁을 하더라...그래도 제일 무난했던 게 너였는데 애가 나갔다니 뭐...어쩔 수 없지. 나도 더 이상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애 아빠가 누구야!”

 

“어, 왜 그렇게 흥분해. 그게 중요해?”

 

“애가 지금 나갔어! 못 찾는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려면 애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것 아냐.”

 

“걔? 호적 없어. 주민등록도 없구. 그냥 편한대로 불러.”

 

“야!”

 

“어, 난 바빠. 그리고 인연 이걸로 끊어. 애가 찾아오면 그때 다시 연락하구...그거 말곤 너랑 엮일 일 없으니까. 끊는다.”

 

뚝.

 

애 엄마도, 애도, 나도 개념이 없다.

이름도 없는 애를 어떻게 찾으라고.

그나저나 요즘은 소아성애자도 많아져서, 잘못 되면...

끔찍한 상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 기회인지도 모른다. 애가 스스로 나갔으니까.

나는 이 좁은 자취방에서 단 한번도 개나 고양이를 키워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하지만. 내 외로움을 그저 그것들에게 맡기기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책임질 순 없었다.

나 혼자서 먹고 살기도 빠듯한 마당에 개 미용비에, 개 사료에, 개털들을 책임질 순 없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했다.

그런데 이제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햄스터도 아닌 사람을 책임질 순 없었다.

나는 애 엄마의 비정한 말에 상처받았지만, 나 또한 그녀 못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 애가 아니라는 사실이 차라리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내심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내 아이라면 기를 수 있...

아니. 아니다. 결국 키울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9일째 아침까지 악몽을 꾸었다. 진통제를 먹고, 약을 먹었다.

나가야 되는 아르바이트는 없던 걸로 하고, 차가운 방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웠다.

경찰서에 신고하지도 않았고, 애 엄마한테 다시 전화하지도 않았다.

애는 제발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10일째 되는 날,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갔다.

그 어디에도 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파서 흐린 눈을 비볐다.

 

뚝.

 

손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뚝.

 

눈물.

 

아니.

 

빗물.

 

그렇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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