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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엽을 구해준 후, 이준구는 길준과 죽일엽에서 가져온 차를 마셨다.
길준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법이나 실무에는 약했다. 아무리 그 노인과 토론하고 배운것이 많다고 해도 이제 세상은 그때와 달랐다.
“명의를 제 이름으로 바꾼 건 실수였습니다. 길준씨.”
이준구가 그에게 토지 대장, 등기부등본 등을 펼쳐보이면서 말했다.
“분산한 건 잘되었지만, 어차피 현 주민등록 상태에서 누가 누구인지는 다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 큰 덩이는 제가 맡기로 했지만...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동의해줄지는...”
“그럼...”
가짜 이준구, 아니 길준은 천천히 손으로 등기부등본을 어루만졌다.
“그럼 법인을 만드는 겁니다.”
“썩 나쁜 생각은 아니군요. 다른 사람을 사단법인 이사로 해서요?”
“멀리 갈 거 없지 않습니까.”
길준은 한쪽에 앉아서 컴퓨터로 체스를 두고 있는 요한을 가리켰다.
“가톨릭에서 하는 재활센터로 하면 됩니다.”
“음...”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살짝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저 명의를 빌려줄 수 있는 노숙자와 정체불명의 남자였다.
하지만 이제 길준은 알았다. 그 노숙자는 예전에 중소기업에서 건실하게 일을 배워나가고 독립했던 기업인이었다. 사회에 대해서 경찰과 소설에만 목을 매고 있던 자신보다 더 잘알고 있었다.
“상대는.”
이준구가 천천히 다시 말했다.
“돈은 확실히 많습니다. 그래서 심부름센터라도 동원하면 들통이 날 가능성이 있어요. 더더군다나 금융실명제도 있으니까요.”
“......”
“그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뭔데요?”
길준은 유지로서의 태도는 버리고 솔직하게 물었다.
“종교단체가 하는 재활센터 건드리기를 제일 성가셔합니다. 봉사활동이야말로 건드리기 어려운 일이죠. 정치인들도 점수따려고 종종 하는 일이니까요. 그들에게는 지역민들의 종교활동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음...참고해보죠.”
“그리고 이미 얼굴을 드러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대외행사에는 제가 가는 걸로 하지요. 이준구는 이준구니까요. 대조해보면 진짜인지 아닌지는 금방 나오니까.”
“대신 위탁해줄 종교인들은 좀 아십니까?”
“...좀 압니다.”
이준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 교회에서 밥을 먹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