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된 띠를 두르고 은으로 된 잔으로 물을 마신다. 호사는 호사이지만 넓다고는 할 수 없는 숭문관에 갇혀 있는 몸이다. 혹자는 왕의 신세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임금군자를 좌로 보고 우로 보는 것에 따라서 다른 것처럼 왕처럼 호화로워도 빠져나갈 수 없으니 거지라고 할 밖에.
“그대는 참 대단키도 하지.”
왕의 조카가 금강사 저편에서 약을 올렸다.
“나갈 줄도 알고 들어올 줄도 알면서 왜 그렇게 약을 올렸나?”
“......”
숭문관은 왕의 궁궐 중 비밀에 쌓인 궁이다. 크기도 제일 작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어머니 몰래 은가락지를 하고 싶으니 가까운 거 아무거나 집어서 던져보게.”
그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심심한게 풀리셨으면 저쪽에 축국이나 하러 가시죠.”
나도 패설사관일때는 미처 모르던 일이었다. 그리고 패설사관을 떠나서 아우들과 진품찾기를 할 때도 모르던 일이었다. 왕실이 왕실의 물건이 외부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거두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토록 위험한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이곳의 문지기와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나누었더라면...
“형님! 형님! 합격했습니다!”
아버지로 새로 모신 분의 아들이지만 내게 격의없이 대해주었다. 그래서 한참 어린 나이여서 그랬던가 마음을 풀고 그를 대했다.
“오, 잘했구나. 훌륭한 패설사관이 되거라.”
그러던 형님이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툭.
그때 누군가가 내 허리께를 세게 쳤다. 나는 화가 난 나머지 똑바로 보고 다녀!라고 소리를 질렀다.
“뭔가. 이제 들어온 잔챙이 주제에 이 몸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해도 되는 줄 아느냐.”
걸걸한 노인이 관대도 띠지 않고, 관모도 쓰지 않은 채 인상을 썼다.
옷만이라면 호화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아무리 호화스러워도 그건 정복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그런 난잡한 복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졸부티라던가, 어설픈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게 뭔가.”
나는 그 노인에게 고개를 치켜세워보였다.
“자네 앞에 있는 나는 이제 곧 패설사관이 되실 몸이란 말이야.”
“하하하하.”
노인은 호탕하게 웃고는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대답했다. 주름도 하나 없는 것이 묘하게 징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가. 그럼 나도 인사를 하지. 밀궁의 숭문사라고 한다네. 자네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조만간 내게 인사라도 하러 올 날이 있을 걸세. 그 생각 그대로라면 말이야.”
그러고는 잠시 잊어버렸다. 그 말을 듣던 형님의 얼굴에 스친 한자락의 불안은 생각지도 않고.
“그래. 잘했다. 널 양자로 들여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아버님도 크게 칭찬해주셨다.
“네 형도 자질은 있지만 몸이 약해 가업을 이을 수가 없구나. 너라도 우리 가업을 잘 이어주면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패설사관이 되어 정직하게 일을 한 것은 3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 2년은 옛무리들과 다시 뭉쳐 진품들을 수집하고 다녔다. 그리고 화미인도를 찾다가 붙들려 이곳에 갇히게 된 것이 3개월 전이다.
“내 말이 맞았지.”
궁안에 수없이 깔린 금강사 위를 사뿐히 걸어다니면서 전대 숭문사가 말했다.
"그 성질을 못 죽여서 결국 이곳에 갇히지 않았나.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는 곳이라네.”
“......”
“여기에는 장인들과 금강사를 열고 닫는 숭문사만이 있을 수 있네. 자네는 후자지.”
“......”
“실망이 컸나보군. 그러게 누가 마마님들 성격을 건드리랬나?”
“......”
“입만 다물고 있어서는 될 일도 안되네. 내가 떠나면 자네가 여길 관리해야 하니까 짧은 시간안에 잘 듣게.”
“밖으로 떠나는거요?”
금과 옥과 은으로 범벅이 된 이곳을 이 노인은 이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나는 금강사위에 위태롭게 섰다.
“밖으로? 누가 밖으로 간다고 했나?”
“어....”
“한번 숭문사가 된 자는 빠져나가질 못해. 얼마 뒤면 내가 먹고 죽을 독약이 이리로 올테니까.”
“......”
“왕실은 무서운 곳이군.”
“세상에나. 십몇년을 근무해놓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나오나.”
노인은 익숙한 솜씨로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었다. 왕실에 어울리는 호사품들과 옛 그림들.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행복해할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자유의 몸일때나 가능한 것.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 노인과 소소한 농담따먹기를 하는 것은 좋았으나, 독약이 도착한 후 마신 뒤에도 노인은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를 따라가게나. 정헌.”
“......?”
“오래 전에 이 밀궁에 나만 아는 보물을 숨겨두었지. 영혼을 담는 그릇을. 그것을 찾으러 그녀가 올게야. 꼭 찾으러 올테니...”
뼈도 쉽게 삭지 않았다. 노인은 땅바닥에 녹아들어가면서 계속 그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그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녀에게 계속 조종당하는 것이 싫어서 그 메인 것을 다 떼어버리고, 그릇만 가져왔지.
그 그릇에 사람의 영혼을 담아..컥컥...“
남도 지방의 패설이었다.
사람의 영혼을 그릇에 담아 조종한다는 인형술사.
그런 자가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숭문사가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소년]
붉은 입술에 약간 드러나는 송곳니.
화장은 한 듯 만 듯하고, 흰 소맷자락 여기저기에 붉은 까마귀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그녀가.
[여기서 한 남자를 못 보았느냐?]
[......]
대답을 하면 안된다. 나는 그때 운명적으로 느꼈다. 대답을 하면 그녀는 옛 패설에 나온 대로 날 알 수 없는 세계롤 끌고 가버릴 것 같았다.
[옳지. 잘 하는 구나.]
여자가 내게 사탕을 주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는 착하지. 크게 될 것이다. 허나, 네 마음속에 이걸로 보니 탐심이 있구나. 네것이 아닌 것은 도둑질 하지 말거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그 말을 잘 지키면 너한테 선물을 해주마.]
“그런데 전임자님.”
나는 땅에 녹아들어가 횡설수설하는 숭문사에게 말을 던졌다.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다.
“밖에 못 나온다면서 그때는 어떻게 나온 거요?”
“...그건...”
말을 하기도 전에 숭문사의 숨이 끊어졌다,
나는 시체가 완전히 녹을 때까지 들어오는 밥과 반찬을 먹으면서 무감각하게 지냈다.
그가 알려준 고급품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 나라는 내가 땅을 순례하면서 본 것 이상이란 말인가.
그렇게 앉아서 1년을 있었다. 숭문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가져오는 보물들을 감정하고, 어떨때는 그 감정결과로 인해서 밀궁의 다른 집에서 다리가 잘린 장인을 보기도 했다.
“여기 계속 있었구나. 착한 아기야.”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나랑 같이 가자. 약속은 잘 지켰으니까.”
그녀는 한쪽 팔에 축 늘어진 남자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를 내려놓고는 붉은 딱딱이 같은 것도 밑으로 떨어뜨렸다.
“이제 이 남자와 이 물건은 소용없게 되었으니...”
그녀는 녹아내린 숭문사의 옷에서 동그란 작은 그릇을 꺼내었다.
“가자꾸나. 얘야.”
“......”
“아, 이름을 지어야지.”
“내겐 정헌이라는 이름이...”
“오, 금강사위를 그렇게 부지런히 다닐 수 있으니, 네 이름은 거미가 좋겠구나. 수리보다는 좀 잘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거미?”
“그렇단다. 거미. 거미로 하자꾸나.”
그래서 나는 그녀와 함께 왕실의 지독한 박물관, 숭문관을 떠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후에 듣자하니 패설사관직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파양되어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