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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퐁스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9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고리오 영감", "나귀 가죽", "공놀이 하는 고양이 상점" 을 읽지 않았더라면 100페이지 즈음 책을 덮어버렸을 것만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명성과 개인의 경험을 믿고 독서를 한달에 30-40p 가량 억지로 지속하였으며, 180p 부근 이후로는 잠시도 책을 덮지 않고 완독에 이르렀다.
앞 부분의 이야기는 일종의 빌드업으로, 주인공 퐁스 양반이 누구의 숙소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과 친분이 있고, 어느 정도로 예술에 대해 알고 있는지, 어떤 경위로 기막힌 예술품들을 수집할 수 하였는지 설명한다. 주변을 불필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작가의 특징이긴 하지만 죽기 몇 년 전 노망이라도 들은 것인지(사촌 퐁스와 사촌 베트는 발자크의 유작이다) 옆으로 새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앞 200p에서 한 50p~70p 가량은 날려버리더라도 지장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괴로웠던 부분은 손금에 관한 부분이다. 당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다만 오늘날에는 사이비 돌팔이에 지나지 않는 내용이 거의 10p 가까이 나열되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진짜 스토리는 사촌 퐁스가 몸져 누운 뒤 시작한다. 그의 예술품들은 엄청난 소장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퐁스의 유산을 물려받을 똑똑한 상속인이 없다는 것을 안 주변사람들은 그의 재산을 차지하고자 추악한 음모들을 기획한다. 허접한 대중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플롯이지만 날카로운 관찰력을 갖춘 천재는 이를 순문학의 영역으로 승화 시킨다. 퐁스를 돌보는 수위부터 동네 의사, 치안 판사를 꿈꾸는 변호사, 남편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귀부인, 고물상, 장의사, 예술 수집 경쟁자 , 음식점 여주인, 박제사 등 온갖 낮고 높으신 인간군상들이 모여 시체가 된 퐁스의 유산을 아프리카의 들짐승들 마냥 뜯어먹기 위해 혈안이다. 선량한 사람들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러하듯이 그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인간 혐오자가 되고 만다.
졸라의 등장인물들은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발자크의 인물들과 달리 치밀하게 설계되고 정제되었으며, 그들의 양태는 발자크보다 훨씬 상세하고 리얼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계 문학에서 발자크의 위상은 졸라보다 두 수는 위다. 사실주의를 개척한 공로 덕분 만은 아니다. 파리의 모든 인간군상을 아우르는 그의 폭넓고 날카로운 관찰력은 난잡한 문체라는 거대한 단점을 상쇄하고 그를 세계 최고 레벨의 소설가로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