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 모두 내게 특별한 의미를 준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사놓고도 잘 샀네~ 잘 샀네~를 되뇌이며 소중하게 읽었던 책이었다.
파이 이야기의 파괴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읽고 난 후 약 3시간 동안은 책 내용을 반추하느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그 후 며칠 간은 이 책 생각을 머릿 속에서 비워낼 수 없었다. 세상 번뇌를 모두 4차원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의 짜릿함에 마약처럼 중독이 되어!...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멋진 소설이라면 무엇이든 추천 받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 파이 이야기 이후 쓴 책 값만 백만원 가까이 된다. (정말, 나도 미쳤다고 생각한다. 입는 것도 메는 것도 신는 것도 사지 않고 몇 달간 인터넷 서점 화면 앞에서 좀비처럼 마우스만 딸깍 거리다보니 어느새 몇 개의 인터넷서점에서 플레티넘 회원이 됐다는 메일이 오더라)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또 어떻고, 오가와 요코가 내 인생을 들여다본 뒤 소재를 쏙쏙 뽑아가서 책을 썼다고해도 순순히 믿을만큼 내 기억과 맞닿아 있는 스토리다. 1에서 10까지 더하는 방법, 수학이야기... 루트가 받은 사랑. 어떤 사람은 뻔한 감동을 강요하는 소설이라며 폄하했지만 나는 이 책을 10번 보면 10번 울고, 20번 보면 20번 울 수 밖에 없었다. 아마 100번 봐도 또 100번 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인정해준, 뭐시기 상까지 탄 책이지만, 설사 이 책이 지석진의 난 알아요 마냥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해 버려진 책이었을 지라도 나는 얘를 내 인생의 책으로 갖고 있을 걸?.
세상의 온갖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 갖다주어도 눈물을 흘리긴 커녕
운운하는 이 메말라 비틀어진 냉혈한에게도 한 점 약한 구석이 있다웅.
어쨌든 이 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 계기 :
얼마 전 독자가 추천한 책 뭐시기 이벤트 페이지를 클릭해보니 내가 쓴 리뷰 문구들이 책들 밑에 디룽디룽 달려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쓴 문구를 보고 '아 뭐야, 리뷰 알바하는 사람이야? 닭살 돋잖아, 읽어봤는데 안좋기만 해~' 하고 맘 속으로 시비 걸고 있었는데 그 옆에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만큼 닭살돋는 나의 문장이 쓰여있다니... 아 그 충격과 민망함이란! 멋쩍기도 하고 아무데나 시비부터 걸고 보는 나의 공격성에 내가 한 방 맞은 기분이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 든 종로를 떠나 한강에 와서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내려고 여기에 왔다. 저 두 책, 나한테는 정말 괜찮은 책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