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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수학책 - 재미와 교양이 펑펑 쏟아지는 일상 속 수학 이야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서현 옮김 / 북라이프 / 2022년 9월
평점 :
"왜요....?" 아이의 반항(?)이 시작되었다. 동글동글 순둥순둥했던 아이가 이제는 좀 컸다고 스스로 이해되지 않으면 엄마의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엄마의 지위를 이용해서, "그냥 시키면 좀 시키는대로 해!" 꽥 하고 소리를 지르면 간단하겠지만, 교육의 목표는 순종이 아니라 자립이다. 더이상 두루뭉술한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납득이 가도록 아이를 설득해야 한다. 나에게는 '수학적 사고법'이 필요하다.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었다. 현재의 상황들을 그래프, 좌표, 공식 등을 통해 그려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합리적인 대화가 되는 것 같다. 수학적 사고법을 이용하니 판단, 비난, 지시, 명령이 튀어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결론 한줄로 끝날 명제를 목아프게 열심히 증명하고 있다. 엄마 말이 틀리면 하나라도 반례를 찾아보시오!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설명을 열심히 했는데도 대화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때가 있다. 난제다.
"막연하고 코 집어 정의하기 어려운 세상사가 수학적 사고를 활용하면 손에 잡힐 듯이 명쾌하게 이해되는 일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있다. _p.008"
<미분>
초등 저학년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체크리스트도 만들어보고 보상물도 이용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를 보며 내 계획대로 된 것 같아서 흐뭇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하는 시간과 분량이 늘어났다. 공부시간의 '평균 변화율'을 보며 이제 공부습관은 잡혔노라고 입방정을 떨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일만 남았다며 '정비례 환상'에 빠져 콧노래를 불렀다. 45도 일직선으로 쭉쭉 뻗어나갈 것 같던 공부는 정체기가 왔다. 모든 일은 '변화'를 거듭한다는 미분적 사고가 부족했다. 기울기의 변화를 알아챘어야 했다. 기울기가 점점 완만해지면서 수평에 가까워 질 무렵, 그 '순간 변화율'을 알았다면, 앞으로의 일에 대한 올바른 예측과 대비가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흔히 '기회를 민첩하게 포착한다'라고 평한다. 바로 순간적인 기울기의 변화를 알아채는 감각이 예민하다는 뜻이다. _p.041"
내 삶의 대략적인 그래프를 그려보니 '증가구간, 감소구간'이 보이고, '극점, 변곡점'이 느껴진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미분적 사고'는 앞으로 좋은 일만 계속 생길 거라는 환상에 빠져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주고, 혹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우울, 비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김미경 학장님 말을 빌리자면 '지적인(수학적인) 힘이 부족하면 스스로의 불행을 크게 해석하게 된다. 공부하라.'
sns 사진들을 보면 나만 뒤쳐진 것 같은 못난 기분이 든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은 꽃이 활짝 피는 찰나이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의 빛나는 순간, 셔터를 누르는 찰칵의 순간이다. 순간의 변화량, '미분계수'를 마냥 부러워하지 않고, 뽐내지도 않는다.
"정비례한다면 700년 걸렸을 인간 게놈 해독 프로젝트가 미래학자 커즈와일의 예언대로 7년 만에 완료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기술 발전이 '지수함수'를 그리기 때문이다. 1, 2, 4, 8, 32 ... 이렇게 곱절로 늘어나며 기울기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커즈와일은 '기술이 무한대의 속도로 발전한다'는 싱귤래리티가 2045년에 일어난다고 예언했다. _p.048 ~ p.049 요약"
기술이 제곱이라더니 진짜 거대한 '가속의 시대'이다. 구석기인들의 필수품 주먹도끼가 스마트폰이 되기까지는 몇천년이 걸렸지만, 20세기 이후 현대 과학 기술의 속도는 눈이 부시다. 코로나 이후 더욱 앞당겨진 변화 속을 살고 있어 어지럽다. 기술의 속도가 무한대에 가까워진다는 커즈와일의 2045년.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같은 상상을 함께 해보았다. 아이는 코로나같은 전염병, 환경오염 같은 문제들이 기술의 가속을 강제적으로 늦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야기거리가 풍성해진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둘 중에 누가 먼저 미분을 발명했는가 하는 분쟁이 있었지만, 미분적 사고가 동시대를 살았던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수학적 사고의 꽃, 미분을 활용한다.
<함수>
y=f(x) 함수는 function 변환이다. f는 스타일, 일관된 변형 작용을 말한다.
<K팝 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때가 있다. 내 귀에는 출연자들이 모두 다 노래를 잘했다. 그 중에서 '악동뮤지션'의 노래가 귀에 꽂혔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래의 기술이 아니라, 악뮤의 f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수현양, 순수하고 건강한 찬혁군의 f에 흠뻑 빠져들었다. 지금까지도 설거지를 할 때 그들의 f를 노동요로 들으며 즐기고 있다.
나는 그들만의 음악적 감성 f가 몽골의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고 놀면서 생겼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보니 악뮤의 부모님은 여건이 안되서 그렇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다고 하셨다. 다만 아이들의 f 본래부터 지닌 가치를 존중하고 지지해주었으며, 아이들을 '흠 하나 없이 완전무결한 걸작품'으로 바라봐주었다고 했다. 남의 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내 아이만의 f를 대접해준다. 남의 것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f를 찾을 때 빛이 나고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f로 그래프를 그리며 살고 있다.
<좌표>
"좌표축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던 데카르트가 고안했다. 직교좌표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둘 모두 원점이 결정되면 다른 하나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_p.146 요약"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y축 을 '자신감'으로 삼아 평가축으로 설정하면 나의 가치는 형편 없겠지만, '신중함'을 평가축으로 설정하면 큰 가치가 생긴다. 저자는 좌표축을 사용하여 매사를 판단하려면 자신이 준비한 평가축만으로 과연 충분할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애당초 평가축이 다르므로 누가 더 나은지 비교해봐야 의미가 없다_p.041"
제 3사분면 위에 있는 나와 제1사분면 위해 있는 그 사람은 다른 유형의 사람이다. 역시 비교는 금물이다. 게다가 출발점이 다를 수 있고 좌표축도 다르다. 나만의 좌표축을 설정하고 가치를 만들어간다.
<확률>
뉴스를 보니 법원은 로또당첨번호를 알려준다는 업체를 사기죄로 판단했다. 공통수학에 나오는 '확률'과 그에 따른 '기대값'을 계산해보면 사기에 현혹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기대값은 무모한 선택을 막아준다. 내 차선만 유독 다른 차선보다 늦은 것 같은 머피의 법칙, 그 억울함도 '확률'을 통해 풀 수 있다.
<f=ma>
밥을 먹고 나서 치워야 하는데, 설거지가 그렇게 하기 싫다. 관성의 법칙. 그냥 앉아있고 싶다. 엉덩이 떼기가 그렇게 힘들다. 근데 시작이 어렵지 막상 설거지를 하다보면 또 끊고 싶지가 않다. 엄마의 욕심으로 현행보다 어려운 선행 문제집을 골랐다. '질량'이 높으면 '가속도'가 줄어든다. 줄어든 속도에 흥미를 잃어간다. 질량을 줄여서 좀 더 쉽고 가벼운 문제집으로 갈아탔다. 다시 속도가 붙었고 재밌어한다.
TV 앞이든 책상 앞이든 한번 앉은 자리는 일어서기 힘들다. 지금 신고있는 신발이 아무리 낡고 닳았어도, 새로 산 신발보다 편해서 갈아신기 싫다. 변화를 싫어하는 편이라서 한번 익숙해진 것들은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관성의 법칙이 유용할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 관성을 끊어낼 가속도가 필요한 것 같다.
<인수분해>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다. 영어독해 지문이 길어져셔 지문의 구조를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하나의 주어에 여러개의 동사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이해시키기 위해 '인수분해' 공식을 이용했다. 주어와 동사의 수일치 문제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영문법을 수학공식을 활용해 가르친다.
"인수분해적인 사고란 말하자면 '정리.정돈사고'다. 일단 눈앞에 있는 업무를 인수분해해 본다. 인수분해란 공통항으로 묶는 에너지 절약 사고법이다."
<집합>
수능국어 일타강사의 강의에서 벤 다이아그램을 이용해 지문을 분석하는 경우를 봤다. 수학적 사고법이 국어 실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영어 지문 분석법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또는이라고 쓰여 있으면 조건 설정이 느슨하고, 또한은 조건이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평화>
대선 후보 토론을 보면서 답답합을 느꼈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논의를 바랐는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인식 때문인지 고성, 욕설, 비방이 난무했다.
"위대한 철학자인 데카르트조차 꾸준히 연습하고서야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 _p.278"
이 시대의 전쟁을 보면서 이성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았다. 저자는 사회를 '전근대'로 역행시키지 않기 위해, 다각적이고 또한 냉정하며 또한 합리적으로 매사를 판단하기 위한 '수학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선 나부터, 우리 가정에서부터 수학적 훈련을 하려고 한다. 집안의 작은 독재자가 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아이와 함께 이성적인 토론을 하려고 한다. 가정에 평화가. 세상에 평화가.
뼛속까지 문과생이라는 교수님이 쓰신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읽으면서, 주식, 경제, 미술, 철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학적 사고'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요즘의 영재교육원이 원하는 '창의융합사고력'이 아니실까 싶다.
딱 하나 아쉬웠던 점은 내게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일본의 예시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번역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일본의 국민MC라는 예능인 '다모리'의 에피소드를 '유재석'의 에피소드로 대체해서 '관성과 가속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등의 시도를 했더라면 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경계를 허물고 아우르는 문.이과의 융합적 사고는 이 책의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자 대체불능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