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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모자 알맹이 그림책 53
조우영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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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만큼 편하다. 함께 쓴 게 아니라 혼자만 썼다. 모자 쓴 이의 입장이 되어 본다. 결코 편해서 쓴 게 아니다. 이웃들이 짜증보다는 배려한다. 스스로 눌러쓴 부끄러움의 굴레다. 그렇게 큰 부끄러움은 없다. 자신이 만든 거다. 부딪혀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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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가 말이 됐어요 - 반디네 작은아이 동화책방 01
조란 드르벤카 지음, 케어스틴 마이어 그림, 유혜자 옮김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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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웃음이 터진다. 카프카의 딱정벌레로 < 변신>은 심각하고 괴괴하지만 조란 드르벤카의 말로 변신은 쌤통이지만 신난다. 당사자 에디도 처음엔 당황하지만 즐긴다. 주변인들도 모두 잠시 놀랄 뿐이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류랑 전~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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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씹어 먹는 아이 -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1
송미경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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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괴기스런 가족
다른 좋은 동화- 감상적이고 사실적이거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게 많은데 이게 눈에 띈다. 아마 제목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평범하고 소심한 아이는 왜 돌을 씹어 먹는 것일까? 아니 왜 이 가족은 모두 괴물이 되어 흙을 먹고 제 가족의 손톱을 먹고 못을 먹고 지우개와 벌레, 쥐들을 잡아먹는 것일까? 이 황당하고 괴기스런 이야기는 대체 뭔가? 대답할 근거는 이야기를 되짚으면서 찾아야 한다.

줄거리 요약과 질문
아홉살이 되어, 태어난 강가를 떠나 도시 변두리로 이사를 오면서 연수는 집에 혼자 들어가야 한다.열쇠 대신 조약돌을 발견하고 입에 넣게 된 연수는 그 후로 동네 조약돌을 모두 주워 먹고 여름방학 때는 가출하여 산마을에 가서 실컷 돌을 먹고 돌아온다. 가족 앞에서 고백을 하니 모두 비밀을 털어놓는다. 돌보다 더한 것을 먹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였다. 그들은 다음 날 계곡으로 소풍을 가서 행복한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그들이 먹는 것에 주목하자. 흙, 손톱과 발톱, 지우개, 벌레. 이들은 1. 크기가 작은 것들이다 2. 보통 사람은 먹지 못할 것들 3. 그러니까 "먹는다"와 연결하지 않으면 자연스런 것들이다. 황당함과 괴기스러움은 이런 자연스러운 것을 굳이 "먹을 거리"로 삼았기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살펴보고, 못 먹을 거리가 어째서 먹을 거리가 될 수 있는지를 혹은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되는지를 이해해 보자.

'먹는'의 의미
'먹는다'는 행위는 생명활동의 기본이다. (식물 이외의) 생명체는 모두 다른 누군가를 먹이로 삼아 생명을 유지한다. 그 순간, 먹이는 먹힘으로서 먹는 존재가 된다. 먹은 자는 먹이를 소화하여 '내일의 나'로 재생시킨다. 이제 먹은 자(의 살과 뼈)는 먹이(의 살)가 대체한다. 먹이가 곧 먹은 자가 된다. 먹힌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먹은 주체가 된다. 존재의 역전이 이뤄진다. 그러므로 먹고자하는 욕구은 '합일'의 욕망이요, '수용'의 욕망이며, '대체'의 욕망이다. 먹이처럼 싱싱하고자 하고, 먹은 만큼 성장하고자 하며, 먹은 대로 채워지길 원한 것이다. 흰수염 할아버지의 말 - "무엇을 먹으면 어때, 무럭무럭 자라서 신나게 뛰어다니렴."- 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겠다. "무엇을 욕망하면 어때, 너로 살든 나로 살든 모두 생명이야. (어떤 잣대로 구별하고 차별하도록) 길들이는 게 문제지."

괴상한 먹이들은 뭐야?
다음으로 그 먹이들을 보면, 흙과 손톱 그리고 발톱은 생명과 관련한다. 흙은 창조주가 인간을 빚은 재료다. 피부 밖으로 나온 뼈의 일부가 손톱과 발톱이다. 그렇다면 지우개와 못은? 역시 적극적인 이해를 위해 매달려보자. 따지고 보면 자연에서 얻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은 곧 생명의 어머니이다. 지구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지우개와 못이 아닌, 다른 어떤 물건이어도 이 논리는 품을 수 있다. 굳이 지우개에 대해 파고든다면 연필이 잘못 쓴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으로 고치고 제대로 바로잡는다. 비뚤어진 것이나 어그러진 것을 대신할 새로운 것의 자리를 비워 태어나게 한다.
엄마가 먹는 낡고 녹슨 못은 어떠한가? 폐가에서 나온 구부러진 것이 가장 감칠맛이란다. 못은 생명이 드나들던 문의 일부분, 각종 가구의 연결 짓는 용도, 손 때 묻은 것이다. 그것들을 유지하고 지탱해주는 정성과 수고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집의 "생명력"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돌은 연수가 태어난 곳에서 흔히 보던 것이다. 특별히 조약돌인 이유다. 이런 것들보다 벌레와 쥐의 생명성은 쉽게 인정할 것이다. 통념 속에선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러운 것, 따라서 생명보다는 죽음과 연관된 것이나 사물들과 비교하니 어렵지 않다.

결론-라캉의 정신분석적 시도
연수의 고향에는 물이 있고, 물은 생명의 시원 始源이다. 가족이 소풍간 곳이 바로 그런 계곡이다. 소풍을 간 그들은 가장 화려한 옷을 입었으나 이제 고향에서처럼 아무 거리낌없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처럼 - 진실을 숨겨왔던 지난 날들을 부끄러워하고 그것을 용서하며 본 모습을 인정하듯 "함께 울다 뒤엉킨 채 " 잠이 듦으로써-태초의 모습으로 웃을 수 있다. 이중섭의 <가족>처럼. 그러므로 이 동화는 잃어버린 생명성을 되찾는 여정이다. 이들의 활력을 앗아간 것은 도시와 학교로 추정된다. 인간중심 문명과 획일화된 교육이다. 이 글은 "동화 <돌 씹어 먹는 아이>는 기성체제(대타자)가 억압한 원초적 생명력(쥬이상스)를 회복하려는 가족들의 정체성 찾기" 라고 보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해석(의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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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와 눈사람 - 우즈베키스탄 옛이야기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50
캅사르 투르디예바 지음, 정진호 그림, 이미하일 옮김 / 비룡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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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눈사람⛄을 사랑하는 우즈벡 사람들에게 어서 평화가 오기를. 평화란 눈이 오면 눈을 즐기고 논과 밭에 곡식을 키우고 힘들여 가축을 기르고 등짝을 어루만지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그런 평화로운 어느 겨울날을 그립니다. 백학 같은 음악과 노래가 울려퍼지고 그에 맞춰 춤추는 모습으로 연극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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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와 눈사람 - 우즈베키스탄 옛이야기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50
캅사르 투르디예바 지음, 정진호 그림, 이미하일 옮김 / 비룡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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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지만 눈과 눈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나르의 마음입니다. 그는 바로 우즈베키스탄 어린이와 어른들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소중한 가축들이 있으믈 짐작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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