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헐크를.1. 변신하는 괴물이젠 식상해지려한다. 헐크를 만난 지 거의 40년이 되가니까. 데이빗 베너 박사는 실험을 하다 번개를 맞는 바람에 흥분하면 초록 거인으로 변신해서 악당들을 무찔렀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고통과 분노를 참다참다 못 참으면 온몸을 감싸쥐고 괴로워하다가 셔츠 등판이 찢어지고 팔뚝과 어깨 부분이 튀어나오며 마침내 일어나 포효하면서 누더기가 된 셔츠 조각을 집어 던진다. 헐크의 배우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다. 언젠가부터 이상한 의문이 회자했다. 왜 웃도리는 찢어지는데 어랫도리는 짧아지기만 할까? 그랬던 헐크가 슈렉이 되고 히어로가 되어 튀어 다니니 시시해진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변신의 이유와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아서 악당들을 이리저리 패대기치는 액션을 보는 것은 권태롭다. 2. 하늬와 연우도곧 평화롭고 안정되었다. 발각되면 도망치듯 전학하고 이사하여 피했던 하늬네가 연우와 김박사와 시골 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병이 아니고 전염되지 않으며 위험하지 않음을 아는 학교 교사와 친구들이다. 인정까지는 아니어도 대놓고 무시하거나 욕하진 않는다. 연우는 즐기기까지 한다. 비밀을 공유한 그들은 변신도 즐기고 그 힘과 유연함이 주는 놀이도 즐긴다. 자유의 쾌락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괴물은 충동이다. 생명에게 생기를 주고 지켜주는 활력이다. 그걸 이해하고 조절하게 되면 슈퍼 히어로가 된다. 이제 그들은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이 된다. 행복하지만 시시해졌다. 미지의 힘과 통제할 수 없는 헐크가 훨씬 매력적인데 말이다.
나의 배프들- 궁상스런 감상문 1좋은 책이다. 속에 깊이 들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걸 보니. 나는 어릴 적에 항상 서진이였다. 줄 게 없어서 얻어만 먹었다. 내게 그렇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 준 배프들이 있었다는 게 고맙다. 갚지 못하면 이리 오래 남아있다. 쫑이에겐 어쨌든 갚았다. 크게 갚았고 약간의 원망도 남아있긴 하지만 그조차 오래 된 일이다. 쫑이네 어머니는 반찬가게를 하셨다. 마당 넓은 그 애 집에 가서 숙제를 하고 둘이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반찬이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물론 더 좋은 건 티비였다. 넓은 집에 방은 많고 사람은 적었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만난 쫑이는 어릴 적 미소와 웃음소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주름만 깊어졌었다. 수는 지금도 그립다. 언제 소식이 끊겼는지 모르겠다. 거의 매일 자전거를 빌려 타고 놀았다. 4학년 때였고, 용돈 한 번 받은 적 없는 나를 위해 그가 다 비용을 댔고, 그래서 자전거를 배웠으며 나는 겨우 친구로 살았다. 호떡집 엽이에게도 몇 번 호떡을 얻어 먹었다. 그것도 수가 엽이랑 친했던 덕이다. 코미디언 같이 말을 웃기게 하고 표정도 재밌었다. 싸움 젤 잘 할 것 같았던 아이(콩이)와도 복싱글러브를 끼고 맞짱 떴었다. 꽤 큰 운동장 이벤트에서 수를 응원하던 내 가슴도 컸지만 실제 밖으로 목소리를 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해 겨울 나는 화상사고로 일주일 이상 등교하지 못했다. 그렇게 멀어진 것인가. 이 책과 같은 떡볶이는 누구랑 먹었던 건지 전혀 모르겠다. 비가 와서 였을까 학교 앞 분식집, 그러나 제대로 먹을 형편이 아니었다. 찔끔 먹고는 입맛을 다시는 우리의 속마음을 알아챘는지 옆 테이블에 있던 누나가 우리에게 한 접시를 시켜줬다. 저절로 환호성을 올렸다. 누군지 모른다. 이름을 물을 교양도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는 크게 했던 것 같다. 작지만 큰 선물이다. 그 누나는 아직도 천사다. 어찌 그 나이에 다른 이를 챙긴단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달콤한 떡볶이였다. 골뱅이와 홍합을 초장에 찍어 먹어 본 것은 목이 덕분이다. 후문 앞 골목길에 포장마차가 생겼고 거기서 옷핀을 펼친 꼬치로 따끈하게 데친 그 해물을 찍어 먹었다. 국물도 여러 모금 들이켰다. 한 번인지 여러 번인지 알 수 없으나 너무도 생생하다. 조용하지만 약간 높은 목소리를 가진 목이는 키도 크고 예쁘장했다. 아마 그 길로 <용쟁호투>를 보러 갔을 것이다. 이소룡을 만나게 해 준 친구다. 혹시 지금도 그런 아이에게 배프가 되고 싶다. 서울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작은 것도 소중하고 기쁘게 받아 줄, 그리하여 평생의 기억으로 삼고 감사할, 가진 게 없는 아이. 꽃동네나 월드비전을 통해 그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 사진 속의 그 아이들은 나보다 더 순박해 보인다.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 준 배프들을 만나면 좋겠다. 그 시절 각자 떠돌면서 모른 체하고 지낸 우리 남매에게도 배프가 되어야겠다. 그 시절 굶주렸던 노땅들에게 안주 좋은 집에 데려가야겠다.